『淸雅堂 수필시집 詩선집』/청아당 칼럼

깨닫기 위해서는 임계온도가 필요하다

청아당 2006. 5. 22. 20:34
   청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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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닫기 위해서는 임계온도가 필요하다

 

 

 

깨닫기 위해서는 임계온도가 필요하다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내면의 세계를 통해서 무언가 발견하고자한다.

내면의 세계에 어떤 매력적인 것이 있기에 그토록 갈망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분명 내면의 깊은 곳에는 밖에서는 바라볼 수 없는 커다란 매력이 숨겨져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우리는 가끔씩 꿈을 꿀 때가 많다.

그것도 손에 잡히지 않은 곳에 걸터앉아 허공을 향해 손을 내젓는 경우가 많다.

생각만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손쉬운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적인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으려는 안이한 생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앉아서 명상에 든다고 모든 것이 정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고요함속에서조차 동적인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역동적이고 활발한 현상들이 일어나야만 그 속에서 무언가를 얻어낼 수가 있다.

깨달음은 부대낌 속에서 얻는 결정체이다.

한마디로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어떤 우주적인 강렬한 현상을 경험해보지 못한다면 큰 깨달음은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말로 깨달음을 얻으려고 시도하지만 좋은 말은 찌꺼기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은 한낱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말로 깨달을 수 있다면 세상사는 것도 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살면서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가는 일상이지만 밖에서 깨닫는 것 말고 본질적인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임계온도(임계 상태에서의 온도. 곧 일정한 압력에서 기체가 액화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온도.)에 도달하려는 강렬한 의지가 있어야한다.

전동차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33000V의 강력한 전력이 필요하듯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기본적으로 요구되어지는 임계온도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대부분 많은 수련자는 임계온도에 도달되기도 전에 포기하거나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 곳을 파고드는 전문적인 노력이 필요하듯이 임계온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압력이 가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임계온도는 기가 빛으로 빛이 단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기체가 액체화 되어가는 플라스마현상을 경험해야만 가능하는 경우가 많다.

빛의 폭풍 속을 지나 액체화된 플라스마현상 속에서 헤엄쳐 다니다보면 모든 근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어져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밖에서 바라보는 빛의 세계와 안에서 바라보는 빛의 세계는 분명 같은 개념이지만 여과장치를 통과한 물과 그렇지 않은 물과의 차이로 확연하게 구분되어지게 된다.

 

고요의 극점에 도달하여 모든 것을 원래의 위치로 놓고 살펴보면 모든 말장난에서 벗어날 수가 있고 수백만 권의 진리가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자연 앞에 서서 자랑을 하려고하면 자랑하기도 전에 손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되듯이 고요의 극점에 들어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된다.

 

사실 깨달음도 깨닫기 위해 존재할 뿐이지 깨닫고 나면 밑도 닦을 수 없는 것이 깨달음이다.

본래부터 있던 자리를 안다고 누가 반겨주거나 따로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는 한 깨달음은 깨달음으로 홀로 서있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깨달음도 홀로 서있기가 외로워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깨달음으로 오기를 바라는지는 몰라도 그 모든 것은 손에 잡히기 전까지만 유효기간을 보장받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단 자신의 손에 들어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많은 것들을 자신의 손에 넣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깨달음도 그 요구중의 하나로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깨닫고 나면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는 제자리에 서있을 수 없는 탓도 있겠지만 현실은 미래를 기다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변화를 꿈꾸며 새로운 영역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60522

 

청아당 엄 상 호 글

 

 

진아의삶

무슨 일이건 충분하면서도 넘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2004/10/26
청아당

하재철님께서도 이미 좋은 경험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특히 '청아당호흡강좌'란에 나와있는 '들어가기에 앞서...'라는 글의 내용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쓸 수 없는 상당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편안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원래가 얽매이지않고 자유롭게 지내는 것이 수련의 기본입니다.
초월뒤에는 자유스러움이 존재하는 것은 자신을 세우면서도 자신을 얽매이게하지않는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200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