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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

『산은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 프롤로그 ― 산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 하나의 붕괴는 어떻게 세계의 움직임이 되는가 산은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산 안에서는얼음이 움직이고물이 움직이고바위가 움직이고시간이 움직인다. 보이지 않을 뿐모든 것은이미 움직이고 있다. 1부 ― 산 1. 높이 높이 올라갈수록하늘에 가까워진다.그러나높아질수록산은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더 많은 힘을견뎌야 한다. 2. 얼음 얼음은멈춰 있는 물이 아니다.산 위에 머물던 물은기온을 만나고시간을 만나고다시움직인다. 3. 바위 바위는단단해 보인다.그러나단단한 것에도틈은 있다.아주 작은 틈 하나가아주 긴 시간 뒤에는산 전체의길이 될 수 있다. 4. 사이 얼음과 바위 사이물과 땅 사이산과 계곡 사이보이지 않는사이가 있다.변화는언제나그..

13편. 파동

13편. 파동 ― 하나의 움직임은 어떻게 멀리 퍼지는가 작은 움직임이생겼다. 처음에는그 움직임이아주 작았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금방 사라질 것처럼보였다. 그런데이상한 일이일어난다. 움직임은혼자 머물지 않는다. 주변으로퍼져나간다. 물 위에작은 돌 하나가떨어진다. 처음에는작은 물결 하나가생긴다. 그러나그 물결은그 자리에머물지 않는다. 동그랗게퍼져나간다. 한 겹이다음 겹을 만들고다음 겹이그다음 겹으로이어진다. 처음의 움직임은이미 지나갔는데그 움직임이 만든 흔적은계속해서멀리 나아간다. 파동은그렇게 시작된다. 무언가가움직였다는 사실이주변을 움직이고주변의 변화가다시 그 주변으로이어지는 것이다.처음의 움직임은작았다.하지만작다고 해서영향까지작은 것은 아니다.바람도그렇다.한곳에서바람이 불기 시작하면나뭇잎이 흔들린다..

12편. 경계

12편. 경계 ― 나와 너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틈이있다. 서로 다른 것이마주할 때언제나작은 사이가생긴다. 가까워도완전히 같아지지는 않고멀어도완전히 끊어지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는무언가가흐른다. 말이 흐르고시선이 흐르고바람이 흐르고물이 흐른다. 그런데한 가지더 생각해볼 것이 있다. 무엇과무엇 사이에틈이 생기는가. 무엇이나와 너를구분하는가. 나는여기에 있고너는저기에 있다. 나는내 생각을 하고너는너의 생각을 한다. 나는내 몸을 느끼고너는너의 몸을 느낀다. 우리는서로 가까이 있을 수 있지만서로의 자리를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그 사이에는경계가 있다. 경계는벽과는 다르다.벽은막는다.그러나경계는구분하면서도이어준다.집에는안과 밖이 있다.문이 있고창문이 있다.문을 닫으면안과 밖이구분된다.그러나문을 열면사람이 오..

11편. 틈

11편. 틈 ― 떨어져 있는 사이에는 무엇이 흐르는가 서로 다른 것이만난다고 해서언제나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가까워졌다가멀어지고다가갔다가다시 물러난다. 서로를 바라보면서도각자의 자리에머물기도 한다. 그 사이에는작은 공간이 생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거리.말과 말 사이의잠시 멈춤.손과 손 사이의작은 간격.사람과 사람 사이의조심스러운 거리. 그곳을틈이라고부를 수 있다. 틈은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아무것도없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가만히 바라보면그곳에는무언가가 흐르고 있다.빛이 지나가고바람이 지나가고소리가 지나간다.물도틈을 따라 흐르고시선도그 사이를 오간다.말하지 않은 마음도때로는그 틈에머문다.그래서틈은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다.서로 다른 것이서로에게 닿을 수 있도록남겨진 자리다.벽을 생각해보자.벽이 완..

10편. 긴장

10편. 긴장 ― 당기고 밀어내는 힘은 왜 필요한가 균형이생겼다고 해서모든 움직임이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힘은여전히서로를 당기고밀어낸다. 다가가려는 힘이 있고멀어지려는 힘이 있다. 붙잡으려는 힘이 있고놓으려는 힘이 있다. 움직이려는 힘이 있고머물려는 힘이 있다. 서로 다른 힘은같은 방향으로만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서로 반대쪽으로향한다. 그런데이상하다.서로 다른 방향으로움직인다고 해서언제나모든 것이무너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그 사이에서움직임이생겨난다.그것을긴장이라고부를 수 있다.긴장은단순히불편한 상태가 아니다.서로 다른 힘이서로를 느끼고 있다는하나의 신호이기도 하다.아무런 힘도작용하지 않는다면당길 필요도 없고밀어낼 필요도 없다.움직임도달라질 이유가 없다.차이가 있기 때문에힘이 생기고힘이 있기..

2부 9편. 균형

2부 ― 사이에서 생기는 질서 서로 다른 것들은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 9편. 균형 ― 서로 다른 힘은 어떻게 함께 머무는가 조율이시작되었다고 해서모든 움직임이곧바로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알아차리고서로의 속도를 살피고조금씩 움직임을맞추어도여전히차이는 남아 있다. 빠른 것과느린 것.가벼운 것과무거운 것.다가가는 힘과물러나는 힘.밀어내는 힘과끌어당기는 힘. 서로 다른 움직임은계속해서서로를 건드린다. 그런데이상한 일이 있다.서로 다르다고 해서언제나무너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다르기 때문에하나의 상태가유지되기도 한다.그것을균형이라고부를 수 있다.균형은모든 것이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힘이같아지는 것도 아니다.움직임이멈추는 것도 아니다.서로 다른 힘이서로를 없애지 않은 채함께 머무는 것이다.한쪽으로완전..

8편. 조율

8편. 조율 ― 서로 다른 움직임은 어떻게 하나의 흐름이 되는가 서로를알아차렸다고 해서바로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변화를느낀다고 해서내 움직임과상대의 움직임이곧바로같아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속도가 다르고생각이 다르고감정이 다르다. 바라보는 방향도다르고움직이는 방식도다르다. 그래서관계가 깊어질수록또 하나의 일이필요해진다. 서로의 움직임을맞추는 일이다. 그것을조율이라고부를 수 있다. 조율은상대를내 방식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내가상대에게무조건 맞추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차이를없애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움직임을살펴보면서함께 갈 수 있는길을 찾는 것이다. 빠른 사람은조금 기다리고느린 사람은조금 서두른다. 한 사람이다가오면다른 사람도조금 가까이 간다. 한 사람이잠시 멈추면다른 사람도기다려준다. ..

7편. 교감

7편. 교감 ― 서로는 어떻게 서로를 알아차리는가 관계가생겼다. 서로 다른 존재가만나고영향을 주고받으며하나의 흐름을만들었다. 그런데관계가 있다고 해서서로를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가까워질수록아주 작은 차이가보이기 시작한다. 평소와 다른표정 하나. 조금 늦어진대답 하나. 잠시 멈춘시선 하나. 평소보다조금 낮아진목소리. 말은같은데느낌이 다르다. 아무것도말하지 않았는데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느낀다. 그때교감이시작된다. 교감은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전부 읽는 것도 아니다. 미래를 아는 것도 아니고말하지 않은 모든 것을알아내는 것도 아니다. 그저평소와 다른작은 변화를알아차리는 것이다. 사람은생각보다 많은 것을말하지 않는다. 말보다표정이 먼저 움직이고표정보다시선이 먼저 달라지기도 한다. 목소리는같..

6편. 관계

6편. 관계 ―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서로를 움직이는가 중심에서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작은 움직임은회전이 되었고회전은축을 드러냈다. 축을 따라움직임은멀리 나아갔다. 그리고시간을 지나다시 돌아왔다. 귀환한 자리에서빛이 드러났다. 빛은새로운 것을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미 있던 것을보게 했다. 그렇다면이제한 걸음 더나아갈 수 있다. 보게 된 것들은서로에게무엇을 하고 있는가. 바로관계다. 세상에는혼자 존재하는 것처럼보이는 것이 많다. 나무 한 그루.사람 한 명.돌 하나.별 하나. 그러나조금만 가까이바라보면아무것도완전히 혼자 있지 않다. 나무는햇빛을 받고물을 마시고바람을 맞는다. 흙과 만나고공기와 만나고다른 생명과만난다. 사람도그렇다. 혼자 태어나지 않고혼자 자라지 않으며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

『사이에서 길을 발견하다』 프롤로그

『사이에서 길을 발견하다』 프롤로그 ―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따라, 다시 중심으로 우리는세상을보면서 살아간다. 눈앞에 있는 것.손에 잡히는 것.소리가 나는 것.움직이는 것. 그것들을 보며세상을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나무가 흔들린다.바람이 분다.물이 흐른다.사람이 걷는다. 눈에 보이는 움직임을 따라가면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는알 수 있다. 그런데한 걸음더 가까이 가보면이상한 일이 생긴다. 나뭇잎은왜 흔들리는가. 물은왜 그 방향으로 흐르는가. 사람은왜 그곳으로 걸어가는가. 그리고눈에 보이는 움직임을움직이게 하는 것은무엇인가. 움직임 뒤에는언제나또 다른 움직임이 있다. 보이는 것 뒤에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드러난 것 뒤에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다. 우리는대부분결과를 본다. 하지만결과가 나타나기 전에는작은 변화..

5편. 빛

5편. 빛 ― 모든 움직임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중심에서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작은 움직임은회전이 되었고회전은축을 드러냈다. 축을 따라움직임은멀리 나아갔다. 그리고시간을 지나다시 돌아왔다. 귀환이다. 그런데돌아온 뒤에야이상한 일이일어난다. 처음에는보이지 않던 것이조금씩보이기 시작한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세상이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다. 움직임이없었던 것도 아니다. 관계가새로 생긴 것도 아니다. 이미그곳에 있었다. 다만이제야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빛이라고부를 수 있을까. 빛은무언가를새로 만드는 것처럼보인다. 어두운 방에불을 켜면사물이 나타난다. 벽이 보이고의자가 보이고창문이 보인다. 그러나빛이그것들을만든 것은 아니다. 이미그곳에 있었다. 빛은다만보이지 않던 것을드러냈다. 어둠이없애버린 것이 아니라..

4편. 귀환

4편. 귀환 ― 멀리 간 것은 어떻게 돌아오는가 회전은계속된다. 한 바퀴를 돌고다시 돌아온다. 그러나돌아온다고 해서처음과같은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렀고움직임이 있었고그 사이에수많은 일이지나갔다. 그래서귀환은단순한 복귀가 아니다. 멀리 갔던 것이자신이 지나온 시간을품은 채다시 관계를 맺는 일이다. 축을 따라계속 움직이던 것이어느 순간자신이 시작된 곳을돌아본다. 처음에는멀어지는 것만보인다. 한 걸음이두 걸음이 되고두 걸음이거리가 된다. 사람도그렇다. 가까웠던 사람이어느 날멀어진다. 함께 걷던 길이혼자 걷는 길이 되고함께 듣던 목소리가기억 속의 목소리가 된다. 그러나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사람은 멀어졌는데그 사람이 남긴 움직임은마음속에서계속 움직인다. 한때의 말이문득 떠오르고한 장소를 지나면그때의 시간이다..

3편. 축

3편. 축 ― 움직임은 무엇을 중심으로 이어지는가 회전이계속된다. 한 바퀴를 돌고다시 돌아온다. 그러나회전하는 것만으로는아직질서가 완성되지 않는다. 움직임은계속되지만그 움직임이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보이지 않는다. 원을 그리는 것처럼 보여도그 원을 관통하는무언가가 있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없다고 할 수도 없다. 회전이계속되는 동안그것은한자리를 지킨다. 축이다. 축은회전하는 물체처럼눈에 띄지 않는다. 바퀴가 빠르게 돌 때사람의 눈에는바깥쪽이 먼저 들어온다. 가장자리의 속도.원의 움직임.빠르게 지나가는선과 면. 그러나바퀴를 움직이는 것은가장자리가 아니다. 한가운데를관통하는 축이 있다. 바깥은끊임없이 돌지만축은그 회전이무너지지 않도록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축은움직임의 반대편에있는 것이 아니다. 움직임을가..

2편. 회전

2편. 회전 ― 중심은 어떻게 움직임을 만드는가 중심이 있다고 해서모든 것이곧바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고요한 중심은그대로 있다. 그런데어느 순간그 주변에서작은 움직임이 생긴다. 한쪽으로조금 기울고다른 쪽에서다시 밀어온다. 가까워졌다가멀어지고멀어졌다가다시 가까워진다. 그 작은 차이가방향을 만든다. 방향이 생기면움직임은한쪽으로만흘러가지 않는다. 돌기 시작한다. 회전이다. 회전은단순히원을 그리는 운동이 아니다. 중심과 주변이서로 관계를 맺으면서만들어내는하나의 질서다. 직선은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회전은나아가면서다시 돌아본다.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도처음의 자리와계속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회전에는이상한 성질이 있다. 움직이고 있지만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계속 변하고 있지만자기의 중심을잃지 않는다. 팽이를 ..

1편. 중심

1편. 중심 ― 모든 움직임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움직임을바라보면가장 먼저움직이는 것을 본다. 새가 날아가고바람이 지나가고물이 흐르고별이 돈다. 사람도 움직인다. 다가가고멀어지고만나고헤어진다. 생각도 움직인다. 기억이 떠오르고감정이 흔들리고마음이 한곳에서다른 곳으로 건너간다. 그런데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움직임은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움직이는 것을아무리 따라가도시작점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물결은물결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그보다 먼저작은 떨림이 있었다. 바람은나뭇잎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그보다 먼저공기의 움직임이 있었다. 사람이한 걸음 내딛기 전에도이미 마음속에서는수많은 움직임이지나가고 있다. 행동보다먼저미세한 변화가 있다. 그 변화보다더 먼저무언가가 있다. 그것을중심이라고부를 수 있을까. 중심..

미세한 끌림

미세한 끌림 ― 가장 작은 움직임이 관계를 만드는 법 사람과 사람이처음 만날 때거대한 사건은 없다. 말 한마디.눈빛 하나.잠시 머문 시선.알아차리지 못한작은 망설임. 그런데무언가가 움직인다. 보이지 않을 만큼미세한 움직임.다가갈까.멈출까.말을 걸까.그냥 지나칠까. 그 작은 차이가두 사람의 거리를 바꾼다. 그리고거리가 달라지는 순간관계가 시작된다. 끌림은잡아당기는 힘만이 아니다. 다가가면서도머뭇거리고다가선 만큼다시 물러난다. 손을 내밀면서도끝내 닿지 않고닿은 뒤에는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움직인다. 이상한 일이다. 가까워질수록하나가 되는 것 같지만완전히 하나가 되면더 이상서로를 끌어당길거리가 남지 않는다. 그래서가장 가까운 곳에도아주 작은 간격은 남는다. 그 간격에서다시 끌림이 생긴다. 당김과 밀어냄.접근과..

율려

율려 ― 우주는 리듬으로 자신을 조율한다 우주는침묵하지 않는다. 별이 돌고빛이 흐르고파도가 움직이고바람이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무언가는끊임없이움직인다. 그러나무질서하게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움직임 사이에하나의 리듬이 있다. 밀고당기고.열고닫고. 나아가고돌아온다. 수축하고이완하고.올라가고내려온다. 우주는그 반복 속에서자신의 질서를만든다. 그 질서에는자와 같은 눈금이 없다. 고정된 선도 없다. 매 순간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면서도전체는무너지지 않는다. 그 미세한 조율. 그것이율려다. 율려는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음악보다깊은 곳에 있다. 소리가 생기기 전에도있고소리가 사라진 뒤에도남는다. 한 음과다음 음 사이. 한 박자와다음 박자 사이. 움직임과멈춤 사이. 그 사이를이어주는보이지 않는 질서..

공명

공명 ― 서로 다른 울림이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순간 혼자 울리는 소리는소리일 뿐이다. 그러나다른 소리가그 소리에응답하는 순간공간이 달라진다. 하나의 울림이또 하나의 울림을 깨우고깨어난 울림이다시처음의 울림을 밀어 올린다. 그때소리는공명이 된다. 공명은같아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채서로에게응답하는 것이다. 낮은 소리는낮은 자리에서. 높은 소리는높은 자리에서. 서로의 자리를 빼앗지 않고자신의 진동을 지키면서하나의 울림을 만든다. 다름은공명의 장애가 아니다. 다름은공명의 시작이다. 두 개의 진자가나란히 매달려 있다. 처음에는제멋대로 흔들린다. 빠르기도 하고느리기도 하다. 그러나서로에게 전달되는아주 작은 힘이반복되면움직임이 달라진다. 어느 순간서로의 리듬을 받아들인다. 그리고함께 흔들린다. 강제로 맞춘..

파동

파동 ― 하나의 떨림이 우주를 건너는 법 처음에는작은 떨림이었다.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미세한 움직임. 그러나정지해 있던 것에작은 변화 하나가 생기자고요는더 이상완전한 고요가 아니었다. 한 점이흔들렸다. 그리고그 흔들림이밖으로 번졌다. 파동은움직이는 힘이다.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시작된 곳을 떠나주변으로 퍼지고멀리 건너가다른 것을 흔든다. 물결 하나가호수 전체를 건드리듯작은 떨림 하나도공간 전체에흔적을 남긴다. 돌 하나가물에 떨어진다. 찰나의 충격. 그리고동그란 물결. 하나.둘.셋. 점점 넓어진다. 돌은이미 가라앉았지만파동은계속 간다. 원인은사라졌는데움직임은남아 있다. 그것이파동이다. 소리도그렇다. 한 번의 울림이공기를 흔들고공기가다시 공간을 흔든다. 목소리는입에서 끝나지 않는다..

간격

간격 ― 우주는 그 사이에서 움직인다 힘과 힘 사이.소리와 침묵 사이.숨과 숨 사이.사람과 사람 사이. 우주는언제나그 사이에 있다. 너무 가까우면충돌하고너무 멀면끊어진다. 붙지도 않고떨어지지도 않는그 미세한 거리. 그곳에서힘은서로를 느낀다. 간격은빈자리가 아니다. 기다림이다. 다음 힘을 위한자리.다음 숨을 위한자리.다음 소리를 위한자리. 움직임은멈춤 속에서준비된다. 파도는밀려오는 힘과물러가는 힘 사이에서파도가 된다. 바람은불어오는 순간과멎는 순간 사이에서길을 만든다. 심장은수축과 이완 사이에서생명을 잇는다. 우주도그렇다. 상충한다. 그러나무너지지 않는다. 당긴다.그러나끊지 않는다. 밀어낸다.그러나버리지 않는다. 상충공존. 그 사이를조율하는 힘. 통합조절력. 조금 더.조금 덜.조금 빠르게.조금 천천히. ..

보이지 않는 손

보이지 않는 손 ― 우주의 율려가 세상을 움직이는 법 우주는힘으로 움직인다. 거대한 힘이다. 눈으로는보이지 않는다. 그러나분명히움직이고 있다. 밀고당기고끌어당기고밀어내며가까워졌다가멀어지고붙었다가떨어지고충돌하면서도사라지지 않는다. 상충하면서공존한다. 공존하면서다시움직인다. 그 움직임의한가운데에는미묘한 손길이 있다. 잡아당기되부러뜨리지 않고놓아주되흩어지게 하지 않는다. 강하게 쥐었다가조금 풀어주고다시 당겼다가한순간놓아준다. 그 손은보이지 않는다. 그러나모든 곳에흔적을 남긴다. 별의 움직임에흔적을 남기고바람의 방향에흔적을 남기고파도의 높낮이에흔적을 남기고나뭇가지가흔들리는 순간에도흔적을 남긴다. 그리고사람의 삶에도손을 댄다. 만남을열어주었다가이별을허락하고다가오게 했다가떠나게 하고넘어뜨렸다가다시일으킨다. 삶은마..

전기기사 실기, 숲부터 보자 - 프롤로그

전기기사 실기, 숲부터 보자 프롤로그 ― 2027~2029 출제기준을 바라보며, 근본원리에서 한 번에 합격하는 길 전기기사 실기 책을처음 펼치면누구나 한 번쯤벽을 느낀다. 필기에서 공부했던전기자기학,전력공학,전기기기,회로이론과 제어공학,전기설비기술기준이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필기와는 다르다. 이번에는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직접 답을 만들어야 한다. 수변전설비를 만나고,단선결선도를 읽고,변압기 용량을 계산하고,차단기와 보호계전기를 살피고,단락전류를 구하고,전압강하를 계산한다. 전선 굵기를 선정하고,조명설비를 계산하고,시퀀스를 해석하고,KEC를 적용하고,감리와 관련된 사항을 답안으로 써야 한다. 그리고그 사이사이에수많은 단답형이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모든 것이 따로 보인다. 계산문제는 계산문제,단답..

금요일 밤, 성령의 예배

금요일 밤, 성령의 예배 ― 예열에서 기도로, 기도에서 고요로 금요일 밤일곱 시 삼십 분. 주안장로교회주안성전에 들어선다. 아직예배는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이미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자리에 앉는다. 하나둘사람들이 들어온다. 말없이 앉는 사람도 있고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앞에서는제43교구장이신김찬성 목사님이기타를 목에 걸고줄을 고른다. 옆과 뒤에서는5인조 밴드부가 자리를 잡고남자 싱어 한 명과여자 싱어 네 명이목소리를 맞춘다. 아직 본예배는 아니다. 그러나예배는이미예열되고 있었다. 기타 한 줄.드럼 한 박자.낮게 깔리는 소리. 그리고다섯 개의 목소리. 서로 다른 소리가하나의 음을 향해조금씩 맞춰진다. 마치전기의 회로가아직 힘을 다 쓰기 전서로의 결을 맞추는 것처럼. 칠 시 오십 분. 리..

외점·교차점·내점

외점·교차점·내점 ― 고요의 극점으로 가는 길 처음에는바람이었다. 보이지 않는데분명히 지나가고잡히지 않는데온몸이 먼저 알아차리는그 무엇이었다. 눈을 감으면어둠이어야 할 곳에대낮보다 더 밝은빛이 가득했다. 그리고우주는거대한 압력으로온몸에 쏟아졌다. 손바닥으로 받고양팔로 받고머리로 받고마침내온몸으로 받았다. 밀려오는 것을밀어내지 않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다시 내쉬면서그 거대한 힘 속으로더 깊이 들어갔다. 그때 알게 된다. 강한 힘과고요는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힘이 커질수록중심은더 고요해질 수 있다는 것을. 태풍을 보라. 바깥은미친 듯이 회전한다. 바람이 몰아치고구름이 뒤엉키고하늘이 흔들린다. 그런데그 한가운데에는눈이 있다. 고요다. 그러나멈춰 있는 고요가 아니다. 거대한 회전 속..

맞춤형 임계점

맞춤형 임계점 물이 끓는다고곧바로계란이 익는 것은 아니다. 냄비에 물을 붓고불을 올린다. 팔팔 끓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비로소시간이 들어간다. 5분을 기다려야 하는 계란은4분만으로반숙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6분,7분,8분을무작정 늘린다고더 맛있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는익는 것이 아니라지나쳐 버린다. 그래서임계점이 필요하다. 그런데임계점은모두에게똑같지 않다. 누군가는조금 덜 익은 것을 좋아하고,누군가는단단한 것을 좋아한다. 같은 계란이라도먹는 사람에 따라멈춰야 할 시간이 다르다. 삶도 그렇다. 사람도 그렇고,관계도 그렇고,힘도 그렇다. 무엇이든힘을 가한다고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힘이 부족하면움직이지 않고,힘이 지나치면부서진다. 중요한 것은얼마나 세게 미느냐가 아니라언제 멈추느냐이다...

벽을 뚫는 공부

벽을 뚫는 공부 ― 전기기사, 수천 쪽의 책을 지나며 처음에는벽이었다. 전기기사 필기 책. 수천 쪽에 이르는두꺼운 책이었다. 전기자기학,전력공학,전기기기,회로이론과 제어공학,전기설비. 처음부터끝까지 보려고 하면책은더 두꺼워졌다. 공식은 많았고,문제는 더 많았다. 아는 것 같은데막상 문제를 만나면손이 멈췄다. 그때는 몰랐다. 공부는벽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벽을 뚫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부터벽을 한꺼번에 뚫을 수는 없다. 하나를 보고,하나를 묻고,하나를 확인한다. 다시 보고,다시 묻고,다시 확인한다. 그러다 보면어느 순간벽에 작은 틈이 생긴다. 그 틈을 조금 더 파고들면구멍이 되고,구멍이 이어지면길이 된다. 한자를 배울 때도그랬다. 길을 걷다가눈에 들어온 한자의 모양을통째로 기억해 온다. 집에 돌아와한자자..

전기기사와 관계의 미학

전기기사와 관계의 미학 『곡선을 이해하는 순간,전기 공식은 길이 된다』는하나의 질문에서시작했다. 공식은왜 외워야만 하는가. 공식과 공식 사이에는무엇이 있는가. 그리고전기는왜 끊임없이움직이는가. 그 질문을 따라가며전기기사의과목들을 만났다. 전기자기학을 쓰고,전력공학을 쓰고,전기기기를 쓰고,회로이론과 제어공학을 쓰고,전기설비를 썼다. 처음에는각각 다른 과목이었다. 그러나하나씩 들여다볼수록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전기는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하나가 변하면다른 것이 반응했고,하나의 조건이 바뀌면전체의 흐름도 달라졌다. 그때 알았다. **공식보다 먼저관계가 있었다.** 글을 쓰는 일도공부가 되었다. 공부한 것을글로 다시 바라보고,글로 정리한 것을다시 문제 속에서 확인했다. 그렇게전기기사에 관한 글이쌓여갔다. 그런데..

일곱 날, 전기기사

일곱 날, 전기기사 ― 글을 멈추지 않고 합격까지 한 달이었다.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공부만 할 수는 없었다. 글이 먼저였다. 서울 이야기를 쓰고,동인천 이야기를 쓰고,전기기사 이야기를 썼다. 하루에두 편,세 편,어떤 날은 다섯 편씩독자에게 글을 건넸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어느새시험이 코앞에 와 있었다. 남은 시간은일주일. 딱 일곱 날이었다. 그때부터공부를 시작했다. 기출을 풀고,다시 풀고,또 풀었다. 14개년을 붙잡았다. 어제 보았던 문제가오늘 다시 낯설었고,알았던 공식도다시 물었다. 그래도계속 갔다. 전기설비를 보고,전력공학을 보고,전기자기학을 보고,전기기기를 보고,회로이론과 제어공학까지하나씩 붙잡았다. 시간은 없었다. 그러나시간이 없다는 이유로멈출 수도 없었다. 일곱 날. 짧았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