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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은 시대를 바꾸어도 곡선이다

곡선은 시대를 바꾸어도 곡선이다 조선의 어느 날,한 사람의 손끝에서흙이 천천히 돌아갔다. 완전한 원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조금 기울고,조금 부풀고,어딘가 모르게 비어 있는 듯한 몸. 그렇게달항아리가 태어났다. 사람들은 그것을달을 닮았다고 했다. 하지만 달항아리가 아름다운 것은달을 닮아서만은 아니다. 완전하지 않아서다. 좌우가 조금 다르고위와 아래가 조금 다르지만그 어긋남 속에서이상할 만큼 편안한 균형이 생긴다. 눈은 그 곡선을 따라가다가어느 순간 멈춘다. 멈추었지만끝난 것은 아니다. 곡선은눈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시간이 흘렀다. 흙은 사라지고금속과 유리가 등장했다. 손으로 빚던 시대에서컴퓨터로 설계하는 시대로 넘어왔다. 이제 곡선은도자기만의 것이 아니다. 자동차에도 곡선이 들어간다. 바람을 가르고빛..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 깨달음은얻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있던 자리를느끼고알아차리는 데 있다. 우주에는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빛을 잡으려 하면빛은 지나가고, 바람을 잡으려 하면바람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파도를 붙잡는 순간파도는 이미 물이 되어 흘러간다. 삶도 그렇다. 자연도 그렇고우주도 그렇다. 찰나에는분명히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순간의 표정도한 줄기의 빛도한 번의 숨도잠시 붙잡아 둘 수 있다. 그러나 붙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그것은 이미 다음 순간으로 넘어간다. 존재는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멈춤을 지나고 있다. 우리는그 한 점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흘러가는 것을 바라본다. 기류를 타고바람을 타고시간을 타고삶은 흘러간다. 만나고,머물고,흩어지고,..

5편. 무너진 것은 산이 아니라 관계였다

5편. 무너진 것은 산이 아니라 관계였다 ― 자연은 어떻게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가 산이무너졌다. 사람들은산을 바라본다. 바위가떨어졌고얼음이흘러내렸고흙이쏟아졌다고말한다. 그러나정말무너진 것은산 하나였을까. 산은혼자서 있지 않았다. 얼음이산을 덮고 있었고물이얼음 아래를흘렀고바위가물을 붙잡고 있었고흙이바위를 감싸고 있었다. 공기는그 위를 지나고햇빛은온도를 바꾸고비는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그 모든 곳에시간이흐르고 있었다. 산은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다. 수많은 것들이서로 만나하나의 상태를만들고 있는 것이다. 얼음은물을 막기도 하고물이 되면서흐름을 만들기도 한다. 바위는흙을 붙잡지만갈라지는 순간흙과 함께움직이기도 한다. 물이땅을 깎기도 하지만다른 곳에서는흙을 쌓아새로운 땅을만들기도 한다. 하나의 힘이언제나하나..

4편. 하나의 균열은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4편. 하나의 균열은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 작은 변화는 어떻게 전체를 움직이는가 처음에는아무것도아닌 것처럼 보인다. 바위에작은 틈 하나. 얼음에가는 금 하나. 땅에아주 작은흔들림 하나. 사람은그것을쉽게 지나친다. 너무 작기 때문이다. 산은그대로 있고얼음도그대로 있고땅도그대로 있는 것처럼보인다. 그러나작다고 해서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균열은그 자리에머물지 않는다. 물이 들어가고물이 머물고얼었다가다시 녹는다. 한 번 벌어진 틈은조금 더벌어진다. 그리고다른 틈과만난다. 하나였던 균열이둘이 되고둘이었던 균열이하나의 길이 된다. 바위는한순간에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조금씩달라진다. 밖에서는단단해 보이지만안에서는힘이움직이고 있다. 누르는 힘이 있고당기는 힘이 있고미는 힘이 있다. 보이지 않는 힘들이서..

호흡을 몰라도 이미 호흡하고 있었다

호흡을 몰라도 이미 호흡하고 있었다 ― 호흡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숨 쉬고 있음을 발견하는 일 호흡을 배우기 전에도사람은 숨을 쉰다. 호흡을 생각하기 전에도숨은 들어오고나간다. 깊이 쉬어야 한다는 말을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는데도가슴은 오르고배는 내려간다. 바람이 불면몸이 먼저 안다. 계절이 바뀌면호흡이 먼저 달라진다. 마음이 흔들리면숨의 간격이 달라지고,자세가 무너지면호흡의 길도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는그 모든 것을 따로 생각한다. 날씨는 날씨이고,감정은 감정이고,자세는 자세이고,호흡은 호흡이라고. 정말 그런 것일까. 가만히 바라보면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가 있다.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미묘하지만분명히 움직인다. 숨이 달라지고,몸이 반응하고,마음이..

길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길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 1986, 하나의 우주적 인식이 40년을 건너오는 동안 1986년. 길이처음 생긴 것이 아니다. 길은이미 그곳에 있었다. 다만그때는길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우주를 바라보았고,움직임을 보았고,빛을 느꼈고,힘과 힘이 만나고밀어내고끌어당기는 것을 보았다. 충돌하는 것들이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도 보았다. 상충은끝이 아니었다. 상충은공존을 만들었고,공존은조율을 필요로 했으며,조율은마침내보존으로 이어졌다. 그때하나의 구조가 보였다. 흡인과 반발.충돌과 회전.회전과 나선.나선과 중심.중심과 순환. 그리고순환은 다시움직임으로 돌아갔다. 우주는멈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움직이면서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하나의 질서처럼 다가왔다. 그때 이미제7의 힘이 ..

3편. 물은 국경을 모른다

3편. 물은 국경을 모른다 ― 하나의 흐름은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산에서물이 떨어진다. 처음에는아주 작다. 한 방울또 한 방울. 얼음이 녹고눈이 녹고바위 사이로물이 스며든다. 물은자신이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말하지 않는다. 그저낮은 곳을 향해흐른다. 산을 내려오고바위를 돌아가고골짜기를 지나간다. 작은 물이작은 물을 만나고작은 물들이하나의 흐름이 된다. 그리고그 흐름은강이 된다. 강이 되면더 이상산 하나의물이 아니다. 많은 물이함께 움직인다. 산에서 내려온 물과땅에서 흘러온 물과비에서 온 물이서로 만나하나의 길을만든다. 그 길에는국경이 없다. 사람은지도 위에선을 긋는다. 여기까지가한 나라이고저기부터는다른 나라라고말한다. 그러나물은그 선 앞에서멈추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국경을 만나도물에게는국경이 없다. ..

2편. 얼음은 혼자 녹지 않는다

2편. 얼음은 혼자 녹지 않는다 ― 기후와 시간은 어떻게 산을 바꾸는가 얼음은멈춰 있는 것처럼보인다. 산 위에하얗게 누워 있고오랫동안움직이지 않는 것처럼보인다. 그러나얼음도시간을 따라움직인다. 조금 녹고조금 흐르고다시 얼고다시 녹는다. 아주 작은 변화가계속된다. 사람의 눈에는보이지 않을 만큼천천히. 그러나산은그 작은 변화를기억한다. 기온이조금 올라간다.얼음이조금 줄어든다.물이조금 많아진다.그 물이바위의 틈으로들어간다.그리고얼음이다시 얼면틈은조금 더 벌어진다.녹으면물이 들어가고얼면틈이 벌어지고다시 녹으면물이 더 깊이들어간다.산은그렇게조금씩달라진다.얼음은혼자 녹지 않는다.온도가함께 움직이고물이함께 움직이고바위가함께 움직이고땅도함께 움직인다.얼음 아래에는오랫동안얼어 있던 땅이 있다.단단하게 굳은 땅과바위가서..

1편. 산은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

『히말라야, 산이 보내는 신호』 ― 하나의 움직임은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1편. 산은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 ― 하나의 붕괴는 어떻게 세계의 움직임이 되는가 산은가만히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랫동안그 자리에 있었고아무것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산 안에서는이미많은 것이움직이고 있다. 얼음이녹고물이스며들고바위가갈라지고흙이흐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힘이움직이고시간이조금씩산을바꾼다. 산은한순간에무너지지 않는다. 무너지기 전에이미수많은 움직임이있었다. 작은 균열이생겼고그 틈으로물이 들어갔고물이얼었다가녹고다시스며들었다. 바위는조금씩달라지고얼음은조금씩줄어들고땅은조금씩흔들렸다. 그러나사람의 눈에는여전히산이었다. 그대로인 것처럼보였다. 그러다어느 순간하나가떨어졌다. 바위였을 수도 있고얼음이었을 수도 있고그 둘이..

『히말라야, 산이 보내는 신호』 프롤로그

『히말라야, 산이 보내는 신호』 프롤로그. 산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 하나의 움직임은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산은가만히 있는 것처럼보인다. 높이 솟아 있고멀리 떨어져 있고오랫동안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산을멈춰 있는 것으로생각한다. 하지만산 안에서는이미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땅이 움직이고바위가 움직이고얼음이 움직인다. 물이바위의 틈으로 스며들고흙은조금씩 아래로 내려간다. 햇빛이 닿고온도가 변하고비가 내리고바람이 분다. 얼었다가녹고젖었다가마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작은 변화들이하루를 지나고계절을 지나고수많은 시간을 지나간다. 산은한순간에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한순간에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쌓인작은 변화들이어느 순간서로 만나고붙잡고 있던 힘이약해지고버티던 균형이달라지면서우리가붕괴라..

거목과 바람

거목과 바람 나는오늘은 쉬고 싶었다. 하루 종일생각을 쏟아내고글을 쓰고수많은 문장 사이를오래 걸어왔으니이제는잠시 멈추어도 좋다고생각했다. 그런데바람이 왔다. 아주 작은 바람이었다. 살짝나뭇잎 하나를 흔들더니말했다. “한 편만 더 쓰면 안 될까요?” 나는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안 된다.” 그런데 바람은금세 사라지지 않았다. 한쪽 가지를 흔들고또 다른 가지를 흔들었다. 한 생각이다른 생각을 부르고한 문장이또 다른 문장을 불렀다. 그렇게 작은 바람은어느새 파도가 되었다. 파도는생각을 싣고 왔고생각은문장을 싣고 왔다. 문장은 다시길을 만들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어느새수많은 글이 쌓여 있었다. 전기에서는공식과 관계 사이에서길을 찾았고, 삶에서는나와 세계 사이에서길을 찾았으며, 먼 산에서는인간과 자연..

3부 17편. 힘

3부 ― 보이지 않는 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어떻게 움직임을 만드는가 17편. 힘 ―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움직임을 만드는가 움직임이생겼다. 그런데움직임만 바라보면한 가지가궁금해진다. 무엇이움직이게 했을까. 나뭇잎이흔들린다. 하지만나뭇잎 스스로움직인 것은 아니다. 무언가가건드렸다. 바람이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나뭇잎에 닿았고나뭇잎이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도그렇다. 물이흐른다. 그러나물은아무 이유 없이한쪽으로흐르지 않는다. 높낮이가 있고길이 있고막힘이 있다.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물의 움직임을만든다. 사람도그렇다. 한 사람이걸어간다. 눈에는발이 움직이는 것만보인다. 그러나그 걸음이시작되기 전에는무언가가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움직여야 할 이유가 있었고몸을 움직이는작은 변화가 ..

16편. 리듬

2부 ― 사이에서 생기는 질서 서로 다른 것들은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 16편. 리듬 ― 서로 다른 움직임은 어떻게 반복을 만드는가 움직임이한 번 일어났다고 해서하나의 흐름이되는 것은 아니다. 한 번 만나고한 번 반응하고한 번 멈추는 것만으로는아직무엇이 반복되는지알기 어렵다. 그런데같은 움직임이다시 나타난다. 그리고또 나타난다.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다시 돌아온다. 그때우리는하나의 패턴을느끼기 시작한다. 반복에는일정한 간격이 있고움직임에는일정한 순서가 있다. 빠르게 움직였다가느려지고다가갔다가멀어지고올라갔다가내려온다. 그리고다시 시작된다. 그 반복 속에서리듬이생긴다. 리듬은똑같은 움직임을계속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것과다른 것이이어지는 방식이다. 같은 움직임이반복되지만그때마다조금씩 달라진다. 아침이 오고저..

15편. 간격

15편. 간격 ― 가까움과 멀어짐은 무엇을 바꾸는가 가까워진다고 해서언제나더 잘 보이는 것은 아니다. 멀어진다고 해서언제나더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은가까워질수록선명해지고어떤 것은가까워질수록보이지 않게 된다. 반대로조금 멀어졌을 때오히려전체 모습이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에는간격이 있다. 간격은단순히떨어져 있는 거리가 아니다. 서로가서로에게영향을 줄 수 있는자리이기도 하다. 너무 가까우면서로의 움직임이겹친다. 너무 멀면움직임이닿지 않는다. 그래서모든 만남에는어떤 간격이필요하다. 공명이생기기 위해서도간격이 필요하다. 소리가울리려면공간이 있어야 한다. 파도가퍼지려면움직일 자리가 있어야 한다. 사람도마찬가지다. 서로 가까이다가갈 수 있지만언제나붙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잠시 떨어져 있어야상대가더 잘..

14편. 공명

14편. 공명 ― 서로 다른 움직임은 어떻게 같은 울림을 만드는가 하나의 움직임이퍼져나간다. 작은 흔들림이주변으로 번지고멀리 있는 것까지조금씩 움직인다. 하지만모든 움직임이같은 방식으로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움직이고어떤 것은그대로 있다. 어떤 것은더 크게 흔들리고어떤 것은조금 흔들리다가다시 멈춘다. 같은 움직임이전해져도반응은서로 다르다. 그런데아주 이상한 순간이 있다. 서로 다른 두 움직임이어느 순간부터서로 맞아가기시작한다. 처음에는따로 움직였는데조금씩속도가 맞고간격이 맞고흐름이 맞는다. 그리고어느 순간하나의 울림처럼움직인다. 그것을공명이라고부를 수 있다. 공명은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다.서로 다른 것이자신의 모습을잃는 것도 아니다.각자의 움직임을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서로의 움직임에반응하는 것이다..

『산은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

『산은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 프롤로그 ― 산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 하나의 붕괴는 어떻게 세계의 움직임이 되는가 산은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산 안에서는얼음이 움직이고물이 움직이고바위가 움직이고시간이 움직인다. 보이지 않을 뿐모든 것은이미 움직이고 있다. 1부 ― 산 1. 높이 높이 올라갈수록하늘에 가까워진다.그러나높아질수록산은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더 많은 힘을견뎌야 한다. 2. 얼음 얼음은멈춰 있는 물이 아니다.산 위에 머물던 물은기온을 만나고시간을 만나고다시움직인다. 3. 바위 바위는단단해 보인다.그러나단단한 것에도틈은 있다.아주 작은 틈 하나가아주 긴 시간 뒤에는산 전체의길이 될 수 있다. 4. 사이 얼음과 바위 사이물과 땅 사이산과 계곡 사이보이지 않는사이가 있다.변화는언제나그..

13편. 파동

13편. 파동 ― 하나의 움직임은 어떻게 멀리 퍼지는가 작은 움직임이생겼다. 처음에는그 움직임이아주 작았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금방 사라질 것처럼보였다. 그런데이상한 일이일어난다. 움직임은혼자 머물지 않는다. 주변으로퍼져나간다. 물 위에작은 돌 하나가떨어진다. 처음에는작은 물결 하나가생긴다. 그러나그 물결은그 자리에머물지 않는다. 동그랗게퍼져나간다. 한 겹이다음 겹을 만들고다음 겹이그다음 겹으로이어진다. 처음의 움직임은이미 지나갔는데그 움직임이 만든 흔적은계속해서멀리 나아간다. 파동은그렇게 시작된다. 무언가가움직였다는 사실이주변을 움직이고주변의 변화가다시 그 주변으로이어지는 것이다.처음의 움직임은작았다.하지만작다고 해서영향까지작은 것은 아니다.바람도그렇다.한곳에서바람이 불기 시작하면나뭇잎이 흔들린다..

12편. 경계

12편. 경계 ― 나와 너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틈이있다. 서로 다른 것이마주할 때언제나작은 사이가생긴다. 가까워도완전히 같아지지는 않고멀어도완전히 끊어지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는무언가가흐른다. 말이 흐르고시선이 흐르고바람이 흐르고물이 흐른다. 그런데한 가지더 생각해볼 것이 있다. 무엇과무엇 사이에틈이 생기는가. 무엇이나와 너를구분하는가. 나는여기에 있고너는저기에 있다. 나는내 생각을 하고너는너의 생각을 한다. 나는내 몸을 느끼고너는너의 몸을 느낀다. 우리는서로 가까이 있을 수 있지만서로의 자리를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그 사이에는경계가 있다. 경계는벽과는 다르다.벽은막는다.그러나경계는구분하면서도이어준다.집에는안과 밖이 있다.문이 있고창문이 있다.문을 닫으면안과 밖이구분된다.그러나문을 열면사람이 오..

11편. 틈

11편. 틈 ― 떨어져 있는 사이에는 무엇이 흐르는가 서로 다른 것이만난다고 해서언제나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가까워졌다가멀어지고다가갔다가다시 물러난다. 서로를 바라보면서도각자의 자리에머물기도 한다. 그 사이에는작은 공간이 생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거리.말과 말 사이의잠시 멈춤.손과 손 사이의작은 간격.사람과 사람 사이의조심스러운 거리. 그곳을틈이라고부를 수 있다. 틈은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아무것도없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가만히 바라보면그곳에는무언가가 흐르고 있다.빛이 지나가고바람이 지나가고소리가 지나간다.물도틈을 따라 흐르고시선도그 사이를 오간다.말하지 않은 마음도때로는그 틈에머문다.그래서틈은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다.서로 다른 것이서로에게 닿을 수 있도록남겨진 자리다.벽을 생각해보자.벽이 완..

10편. 긴장

10편. 긴장 ― 당기고 밀어내는 힘은 왜 필요한가 균형이생겼다고 해서모든 움직임이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힘은여전히서로를 당기고밀어낸다. 다가가려는 힘이 있고멀어지려는 힘이 있다. 붙잡으려는 힘이 있고놓으려는 힘이 있다. 움직이려는 힘이 있고머물려는 힘이 있다. 서로 다른 힘은같은 방향으로만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서로 반대쪽으로향한다. 그런데이상하다.서로 다른 방향으로움직인다고 해서언제나모든 것이무너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그 사이에서움직임이생겨난다.그것을긴장이라고부를 수 있다.긴장은단순히불편한 상태가 아니다.서로 다른 힘이서로를 느끼고 있다는하나의 신호이기도 하다.아무런 힘도작용하지 않는다면당길 필요도 없고밀어낼 필요도 없다.움직임도달라질 이유가 없다.차이가 있기 때문에힘이 생기고힘이 있기..

2부 9편. 균형

2부 ― 사이에서 생기는 질서 서로 다른 것들은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 9편. 균형 ― 서로 다른 힘은 어떻게 함께 머무는가 조율이시작되었다고 해서모든 움직임이곧바로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알아차리고서로의 속도를 살피고조금씩 움직임을맞추어도여전히차이는 남아 있다. 빠른 것과느린 것.가벼운 것과무거운 것.다가가는 힘과물러나는 힘.밀어내는 힘과끌어당기는 힘. 서로 다른 움직임은계속해서서로를 건드린다. 그런데이상한 일이 있다.서로 다르다고 해서언제나무너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다르기 때문에하나의 상태가유지되기도 한다.그것을균형이라고부를 수 있다.균형은모든 것이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힘이같아지는 것도 아니다.움직임이멈추는 것도 아니다.서로 다른 힘이서로를 없애지 않은 채함께 머무는 것이다.한쪽으로완전..

8편. 조율

8편. 조율 ― 서로 다른 움직임은 어떻게 하나의 흐름이 되는가 서로를알아차렸다고 해서바로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변화를느낀다고 해서내 움직임과상대의 움직임이곧바로같아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속도가 다르고생각이 다르고감정이 다르다. 바라보는 방향도다르고움직이는 방식도다르다. 그래서관계가 깊어질수록또 하나의 일이필요해진다. 서로의 움직임을맞추는 일이다. 그것을조율이라고부를 수 있다. 조율은상대를내 방식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내가상대에게무조건 맞추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차이를없애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움직임을살펴보면서함께 갈 수 있는길을 찾는 것이다. 빠른 사람은조금 기다리고느린 사람은조금 서두른다. 한 사람이다가오면다른 사람도조금 가까이 간다. 한 사람이잠시 멈추면다른 사람도기다려준다. ..

7편. 교감

7편. 교감 ― 서로는 어떻게 서로를 알아차리는가 관계가생겼다. 서로 다른 존재가만나고영향을 주고받으며하나의 흐름을만들었다. 그런데관계가 있다고 해서서로를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가까워질수록아주 작은 차이가보이기 시작한다. 평소와 다른표정 하나. 조금 늦어진대답 하나. 잠시 멈춘시선 하나. 평소보다조금 낮아진목소리. 말은같은데느낌이 다르다. 아무것도말하지 않았는데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느낀다. 그때교감이시작된다. 교감은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전부 읽는 것도 아니다. 미래를 아는 것도 아니고말하지 않은 모든 것을알아내는 것도 아니다. 그저평소와 다른작은 변화를알아차리는 것이다. 사람은생각보다 많은 것을말하지 않는다. 말보다표정이 먼저 움직이고표정보다시선이 먼저 달라지기도 한다. 목소리는같..

6편. 관계

6편. 관계 ―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서로를 움직이는가 중심에서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작은 움직임은회전이 되었고회전은축을 드러냈다. 축을 따라움직임은멀리 나아갔다. 그리고시간을 지나다시 돌아왔다. 귀환한 자리에서빛이 드러났다. 빛은새로운 것을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미 있던 것을보게 했다. 그렇다면이제한 걸음 더나아갈 수 있다. 보게 된 것들은서로에게무엇을 하고 있는가. 바로관계다. 세상에는혼자 존재하는 것처럼보이는 것이 많다. 나무 한 그루.사람 한 명.돌 하나.별 하나. 그러나조금만 가까이바라보면아무것도완전히 혼자 있지 않다. 나무는햇빛을 받고물을 마시고바람을 맞는다. 흙과 만나고공기와 만나고다른 생명과만난다. 사람도그렇다. 혼자 태어나지 않고혼자 자라지 않으며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

『사이에서 길을 발견하다』 프롤로그

『사이에서 길을 발견하다』 프롤로그 ―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따라, 다시 중심으로 우리는세상을보면서 살아간다. 눈앞에 있는 것.손에 잡히는 것.소리가 나는 것.움직이는 것. 그것들을 보며세상을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나무가 흔들린다.바람이 분다.물이 흐른다.사람이 걷는다. 눈에 보이는 움직임을 따라가면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는알 수 있다. 그런데한 걸음더 가까이 가보면이상한 일이 생긴다. 나뭇잎은왜 흔들리는가. 물은왜 그 방향으로 흐르는가. 사람은왜 그곳으로 걸어가는가. 그리고눈에 보이는 움직임을움직이게 하는 것은무엇인가. 움직임 뒤에는언제나또 다른 움직임이 있다. 보이는 것 뒤에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드러난 것 뒤에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다. 우리는대부분결과를 본다. 하지만결과가 나타나기 전에는작은 변화..

5편. 빛

5편. 빛 ― 모든 움직임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중심에서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작은 움직임은회전이 되었고회전은축을 드러냈다. 축을 따라움직임은멀리 나아갔다. 그리고시간을 지나다시 돌아왔다. 귀환이다. 그런데돌아온 뒤에야이상한 일이일어난다. 처음에는보이지 않던 것이조금씩보이기 시작한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세상이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다. 움직임이없었던 것도 아니다. 관계가새로 생긴 것도 아니다. 이미그곳에 있었다. 다만이제야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빛이라고부를 수 있을까. 빛은무언가를새로 만드는 것처럼보인다. 어두운 방에불을 켜면사물이 나타난다. 벽이 보이고의자가 보이고창문이 보인다. 그러나빛이그것들을만든 것은 아니다. 이미그곳에 있었다. 빛은다만보이지 않던 것을드러냈다. 어둠이없애버린 것이 아니라..

4편. 귀환

4편. 귀환 ― 멀리 간 것은 어떻게 돌아오는가 회전은계속된다. 한 바퀴를 돌고다시 돌아온다. 그러나돌아온다고 해서처음과같은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렀고움직임이 있었고그 사이에수많은 일이지나갔다. 그래서귀환은단순한 복귀가 아니다. 멀리 갔던 것이자신이 지나온 시간을품은 채다시 관계를 맺는 일이다. 축을 따라계속 움직이던 것이어느 순간자신이 시작된 곳을돌아본다. 처음에는멀어지는 것만보인다. 한 걸음이두 걸음이 되고두 걸음이거리가 된다. 사람도그렇다. 가까웠던 사람이어느 날멀어진다. 함께 걷던 길이혼자 걷는 길이 되고함께 듣던 목소리가기억 속의 목소리가 된다. 그러나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사람은 멀어졌는데그 사람이 남긴 움직임은마음속에서계속 움직인다. 한때의 말이문득 떠오르고한 장소를 지나면그때의 시간이다..

3편. 축

3편. 축 ― 움직임은 무엇을 중심으로 이어지는가 회전이계속된다. 한 바퀴를 돌고다시 돌아온다. 그러나회전하는 것만으로는아직질서가 완성되지 않는다. 움직임은계속되지만그 움직임이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보이지 않는다. 원을 그리는 것처럼 보여도그 원을 관통하는무언가가 있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없다고 할 수도 없다. 회전이계속되는 동안그것은한자리를 지킨다. 축이다. 축은회전하는 물체처럼눈에 띄지 않는다. 바퀴가 빠르게 돌 때사람의 눈에는바깥쪽이 먼저 들어온다. 가장자리의 속도.원의 움직임.빠르게 지나가는선과 면. 그러나바퀴를 움직이는 것은가장자리가 아니다. 한가운데를관통하는 축이 있다. 바깥은끊임없이 돌지만축은그 회전이무너지지 않도록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축은움직임의 반대편에있는 것이 아니다. 움직임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