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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가 있어야 참자아를 만날 수 있다

에고가 있어야 참자아를 만날 수 있다 에고는 자기애가 강한 존재이다. 삶의 근원이자 뿌리이기에 늘 바람을 원하고 있다. 참자아는 우주애가 강한 존재이다. 우주의 근원이자 뿌리이기에 늘 고요함을 원하고 있다. 에고는 겉으로 밝고 화려해 보이지만 참자아는 안으로 밝고 고요하다. 참자아는 형체가 있거나 고정된 모습이 아니다. 작게는 너와 나 속에 존재하고 크게는 죽음과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우주 속에 존재한다. 에고가 있어야 참자아와 연결될 수가 있다. 에고를 악의 덩어리 또는 악의 축으로 몰아붙이면 영원히 참자아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지 연결통로가 있어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에고 없이 먹고 자고 입거나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참자아를 만나려면 에고가 있어야 가..

고요의 극점은 빛이자 소립자이다

고요의 극점은 빛이자 소립자이다 고요의 극점은 고요와 평온을 유지하며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어느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금강석과 같다. 고요의 극점은 빛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고요의 극점은 극미한 소립자로 온 우주의 본질로 통하기도 한다. 고요의 극점은 거대한 우주의 본질이자 참나를 뚫고 온 우주로 흩어져 산재하기도 하고 이합집산의 묘를 다하여 진공묘유를 이루기도 하고 공함 속에서 또 다른 공함을 유지하며 고요를 흔들기도 한다. 한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기에 마음을 자유자재로 이동시키거나 머물게 하는 묘한 존재이기도 하다. 참나를 잘게 쪼개거나 썰어서 빛이나 소립자로 변화시키거나 유불선을 하나로 꿰어 천지간의 진리를 한 모금 물처럼 마시기도 한다. 가..

종교의 뒷면

종교의 뒷면 경제를 바탕으로 형성된 종교이기에 사후세계를 들먹이며 숨기고픈 이야기와 드러내고픈 이야기로 얽혀있다. 바람은 늘 분다. 숨겨진 곳에서도 드러난 곳에서도 현실과 이상은 괴리되어 있는 것이 맞다. 그렇다. 종교의 양면성은 선과 악을 논하게 만들고 긍정과 부정을 논하게 만든다. 석상처럼 굳어버린 양심으로 종교를 지켜나가면 된다. 겉으로는 평온하고 고요해 보여도 안으로는 파란만장한 삶으로 요동치고 있다. 삶이 바람 따라 흘러가듯이 종교도 바람 따라 흘러가고 있다. 2022년 6월 18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미로와 화엄일승법계도(법성게)

미로와 화엄일승법계도(법성게) 미로는 깜깜한 밤길을 걷는다면 법계도(법성게)는 환한 대낮을 걷는 것과 같다. 법(法)으로 시작하여 불(佛)로 끝나는 법계도(법성게)이다. 미로처럼 얽히고 얽혀있지만 빛을 따라 걷다보면 약사사 약사전 앞에서 진을 펼치듯이 수인을 달리한 4분의 부처가 사방을 향해 등대고 앉아있다. 스님이 의상대사의 법성게(화엄일승법계도)를 그대로 재현하여 국내 유일하게 빛으로 출발하여 빛으로 끝나는 길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빛은 늘 환한 모습을 보인다. 어둠은 늘 어두운 모습을 보인다. 빛과 어둠은 양면성이 있어 빛이 어둠이 되기도 하고 어둠이 빛이 되기도 한다. 스님이 화엄일승법계도에 물을 뿌리고 있다.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출발지점에서 시작하여 끝지점까지 막힘없이 흘러 통로를 만들며 우주..

고요의 극점인 무극의 세계

고요의 극점인 무극의 세계 잘게 썰어 빛으로 요리를 한다는 것은 고요의 극점인 무극의 세계를 흔들어놓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중심은 흩어지지 않는 무극의 세계이기에 언제 어디서든 조용히 사색에 잠길 수가 있고 폭풍전야 같은 질주본능으로 가없는 끝을 향해 달리기도 한다. 빛을 논하기도 하고 어둠을 논하기도 하고 선과 악을 논하기도 한다. 종교의 큰 흐름은 이분법적 잣대이다. 선과 악을 통해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한다. 천국과 지옥이 가장 대표적인 내세움이다. 이상과 현실은 늘 괴리되어있다. 깨달음을 얻은 자의 말이 옳고 진리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한낱 허공에 떠 있는 말로 비치기도 한다. 깨달음을 얻은 후 또 다른 깨달음에 대해 고민하거나 갈등하는 것도 다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도봉산의 기운이 그..

고인을 찾아뵙는다는 것은 그 또한 우주의 순서인 것을

고인을 찾아뵙는다는 것은 그 또한 우주의 순서인 것을 조상에 대한 예의이자 신성한 우주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믿음은 쉬지 않고 이루어져야 하듯이 조상에 대한 생각 또한 쉬지 않고 이루어져야 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부이듯이 조상 또한 우주의 일부이니 그 또한 우주이기 때문이다. 늘 찾아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꿈이다. 고인이 자주 꿈에 나타난다는 것은 우주의 메시지이자 고인에 대해 예의를 지켜야 할 순서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며느리가 고인의 기일을 기억하여 챙기는 경우로 시작된다. 며느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며느리라도 고인의 기일을 까맣게 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같은 며느리라도 고인의 기일을 가슴속에 새겨놓는 경우가 있다. 고인은 직접 찾아와 함..

과거 현재 미래의 그날들

과거 현재 미래의 그날들 탁 트인 푸른 들판을 달리다가 넘실대는 꿈의 장소로 이어져 온 현생입니다. 천년을 기다려온 내 전생 내 남자가 그날처럼 스르륵 잠이 들었습니다. 푸른 풀잎이 가득한 들판을 달려온 야생마처럼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벗어던진 채 잘 가꾸어진 벚나무 아래에서 지극한 깊이의 사랑으로 만났습니다. 숨김없는 꾸밈없는 전생, 현생, 내생으로 이어지고 있기에 그 길은 우주에서 내어준 길이기도 합니다. 꿈길처럼 펼쳐진 꽃길이기에 함께 호흡하며 하나의 에너지로 동화되어져 품속에서 꽃과 함께 눈을 감았습니다. 가없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가는 길이기에 사방에서 꽃을 피우며 앞만 보며 달리라고 합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행복이 넘칩니다. 맹꽁맹꽁한 눈빛만 보아도..

무극의 나를 본다

무극의 나를 본다 드러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혼돈의 상태인 무극에서 음양이 탄생되니 그것을 태극이라 말한다. 공은 텅 빈 우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아(無我)는 비아(非我)를 말하며 공과 시간을 합쳐 우주의 안팎을 설명하고 있다. 0이 공간이라면 1은 시간이다. 0과 1의 조합은 우주 탄생의 비밀이자 빛으로 우주를 뒤덮은 화엄계의 세계이다. 1차원이 평면(가로)이라면 2차원은 수평(가로)과 수직(세로)이고 3차원은 입체적인(가로, 세로, 높이) 형상을 말한다. 4차원은 암울하고 불평불만이 많은 지하세계를 말한다면 5차원은 상승된 빛의 차원이요 6차원, 7차원, 8차원, 9차원으로 상승할수록 빛의 밝기는 더욱 밝아지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차원은 인위적인 구분이라고 말할 ..

명상의 장 - 고요의 극점

명상의 장 - 고요의 극점 깨달음이 순간 빛으로 쏟아질 때는 그저 감사함으로 눈물을 쏟는 게야 빛으로 똘똘 뭉쳐진 투명한 액체인 것이야 근본적, 원초적 환희라고 해 우주의 질서에 의해 행할 것이다 지혜도 어리석음도 그 마음 그대로 가치가 있을 것이야 어떠한 선택도 때에 따른 것일 뿐인 거야 취함도 놓음도 바라봄도 그냥 그때에 따른 것일 뿐인 거야 네가 빛나지 않는 것이 아니야 잠시 방향을 혼동하고 있는 것뿐이란다 눈을 감고 너를 봐 너의 손을 잡아주는 너를 봐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은 죽음이나 이별은 결코 아니야 그저 우주의 정해진 질서일 뿐이야 슬픈 것은 아니야 약속함이 없는 약속이야 너의 때 묻지 않은 속살을 볼 줄 알아야 해 순수로 빛나고 있는 너의 속살을 깨달아 볼 수 있어야 해 그것에 대해 두려..

빛과 시간

빛과 시간 빛은 밝음과 어둠을 말한다. 같은 밝음 속에서도 어둠이 존재한다. 같은 어둠 속에서도 밝음이 존재한다. 빛은 밤낮으로 바뀐다. 빛은 공간이요 밤과 낮은 시간이다. 빛은 잘게 썰어 요리를 즐기기도 하고 빛은 빛 속에서 헤엄쳐 다니며 빛을 더 추가하기도 하고 덜어내기도 한다. 빛은 풍성하게 하여 건축물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예술적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섬세하면서도 미묘하여 건축물 속에서 철근으로 기둥을 세우기도 하고 인테리어로 빛의 세계를 맘껏 펼쳐내기도 한다. 작품은 예술혼을 불어넣는다. 빛이 없으면 어둠도 없다. 빛이 있어야 사물이 움직이고 멈춘다. 낮의 시간대에 움직이는 생명체의 활동과 밤의 시간대에 움직이는 생명체의 활동이 다르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땅 위에서 밤의 적막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