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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 – 빛의 근원으로 존재하는 영혼들

사후세계 – 빛의 근원으로 존재하는 영혼들 우주는 넓고도 넓다. 자연계의 우주가 있는가 하면 영계의 우주가 있다. 자연계의 우주가 서로 연결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면 영계의 우주 또한 서로 연결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자연계의 우주와 영계의 우주 또한 서로 연결성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이 얼마나 정교하고 치밀한 조합인가? 자연계와 영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또는 육신을 벗어던지거나 영계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놓은 절대자의 배려는 참으로 그 깊이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할 수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견해는 서로가 다 다르다. 임사체험이나 근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영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렇지만 체험이나 영계의 모습에 대해..

고요의 극점 – 무위자연, 무아, 색즉시공 공즉시색, 진공묘유

고요의 극점 – 무위자연, 무아, 색즉시공 공즉시색, 진공묘유 무위자연은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형이하학적으로 말하면 실존하고 있는 현상계를 말하며 형이상학적으로 말하면 무극의 상태인 본래의 면목을 말한다. 위대한 깨달음이나 영원한 깨달음을 위해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수행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이 모든 현상을 경험하거나 깨우치고 싶어 하는 데 있다. 스승은 본래 가르칠 것이 없다. 다만 길잡이 역할은 할 수 있다. 깨닫는 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며 스스로 있는 자가 공 속에 존재하는 실존을 깨닫는 것이며 실존 속에서 공함을 깨닫는 것이다. 무아사상은 고요의 극점과 일맥상통한다. 한마디로 무극사상이다. 형체 이전의 상태는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그렇지만 우주가..

고요의 극점은 포맷된 우주 공간이다

고요의 극점은 포맷된 우주 공간이다 그냥 있음으로써 깨달음을 얻듯이 우주로부터 탈출하는 법이기에 포맷된 우주 공간이야말로 고요의 극점이다. 본원지를 찾아 포맷화 시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자신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모든 접속을 끊어버리는 것 무아(無我) 상태 고요의 극점은 무극의 본원지이기에 우주의 모든 정보로부터 차단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2022년 1월 1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참나의 정의가 잘못 내려지면 홀로 지구 위에 서 있는 꼴이다

참나의 정의가 잘못 내려지면 홀로 지구 위에 서 있는 꼴이다 수행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참나의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게 된다. 참나는 나로부터 비롯되어지는가 아니면 본래의 면목에서 비롯되어지는가? 그것도 아니면 허상의 참나를 가지고 놀다가 유희로 끝나는가이기 때문이다. 에고와 짝을 이루며 참나를 찾아가거나 허상의 참나를 만나 마치 참나를 만난 것처럼 견성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참나를 만나기는 쉽지만 참나의 진면목을 함께 누리기는 어렵다. 참나가 아닌 참나를 만나기에 그렇고 설령 참나를 만난다고 하여도 참나의 알맹이들을 손으로 만져보지 못한 채 허상을 가지고 놀다가 착각하는 경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분명 상이 그려진 나뭇잎을 바라보며 손으로 만졌지만 흐물흐물해지면서 상이 찌그러들며 본래의 나뭇잎으로 변..

하나님은 태극과 고요의 극점에 걸터앉아있다

하나님은 태극과 고요의 극점에 걸터앉아있다 절대자이자 창조주인 하나님은 참나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성령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형체를 갖춘 태극의 자리에 있는가 하면 형체 이전의 상태인 무극의 자리인 고요의 극점에 상존하기도 한다. 태극은 유형의 원형을 말한다면 무극은 무형의 원형을 말한다. 양극에 발을 담글 수 있는 하나님은 무소부재의 존재자이기에 태극과 무극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며 경영의 묘를 다하는 황극에 임하기도 한다. 우주를 주관하며 안팎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 끝과 시작이 없으며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평면이 입체가 되어 우주의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형국과 같다 할 수 있다. 2021년 12월 29일 수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인체전자석이 견성이다

인체전자석이 견성이다 바람과 바람이 만나면 바람길이 생겨난다. 바람길은 온 우주를 환하게 밝히기도 하고 숲속을 다니기도 하고 바다를 향해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태풍으로 지상의 나무들을 뿌리채 흔들어 눕히기도 한다. 견성은 이론이 아니다. 실전이다. 길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실전이다. 길은 한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길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이것이라고 하나만을 꼬집어 말할 수 없다. 인체전자석은 에너지체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에너지체가 형성되면 견성으로 가는 지름길을 만들어준다. 단순히 경락을 타고 경혈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피부기공호흡을 하게 하고 하단전에 중심을 건 후 중단전과 상단전을 튼튼하게 하여 인체를 중심으로 지구와 달을 향해 손짓하며 강렬한 태양의 전자기력을 끌어당기는 역할..

고요의 극점은 무극이다

고요의 극점은 무극이다 태초 이전의 세계가 무극이다. 태극 이전의 세계가 무극이다. 음양 이전의 세계가 무극이다. 모든 것을 다 털어낸 채 홀로 고요히 있는 곳 그곳에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며 잡고자 하여도 잡을 수 없는 곳이다. 고요의 극점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극의 세계이다. 그곳은 더 이상 나아갈 데도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현상과 비현상을 초월하여 한곳을 향해 달려가는 우주의 가장 안쪽이 고요의 극점이다. 그곳은 칠정과 오욕이 없는 곳이며 발로 밟을 수 없는 곳이며 손으로 흔들 수 없는 곳이다. 그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하는 곳이자 하나로 집결되는 곳이기도 하다. 언제든 뛰쳐나올 수 있는 곳이자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요의 극점은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곳이 ..

공존하는 선악은 우주의 기본속성이다

공존하는 선악은 우주의 기본속성이다 음과 양이 존재하듯이 공존하는 선악은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한쪽으로 중심을 잡기도 한다. 음과 양은 무극에서 태극으로 뛰쳐나올 때 발생한다. 우주를 한 바퀴 빙빙 돌다 보면 서로 뒤엉키게 되어 있다. 서로 뒤엉키다 보면 음과 양이 하나로 합체될 수밖에 없다. 공존하는 선악은 이 둘이 엉킬 때 발생한다. 분명 선인데 악으로 작용하고 분명 악인데 선으로 작용한다. 이 둘의 관계는 음과 양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관점에서 발생한다. 아니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발생하기도 한다. 선한 행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악한 행동을 한 것처럼 비춰지게 된다. 악한 행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선한 행동을 한 것처럼 비춰지게 된다. 무슨 일인가? 선을 선이라 못하고 악을 악이라 못하니 이를..

기의 퇴적층은 우주를 대변한다

기의 퇴적층은 우주를 대변한다 기의 퇴적층은 심장을 감싸고 있는 심포락을 자극하여 우주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마음처럼 굳건하게 자리를 잡는다. 기의 퇴적층은 촉감이 부드러운 진흙처럼 퇴적층을 이루기도 하고 암석처럼 단단한 바위로 퇴적층을 이루기도 하고 주상절리처럼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치솟으며 퇴적층을 이루기도 한다. 기의 퇴적층은 상단전을 거쳐 중단전을 중심으로 하단전으로 내려와 중심을 잡기도 한다. 그 중심에 서 있는 하단전은 바위에 앉아있는 것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어져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가도 꿈쩍하지 않는 자세로 버티고 서 있다. 그만큼 우주의 기는 다양한 변화를 꾀하며 변화무쌍한 기의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깨달음의 길은 우주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우주의 품은 그 모든 것을 품는다. 일상에..

대상 없는 대상과의 하나 됨

대상 없는 대상과의 하나 됨 ○○ 2021. 08. 21. “대상 없는 대상 속에서 나툼없이 태초 생명체의 맑은 영성을 복원해가는 것이 대상 없는 대상과의 진정한 하나 됨이리라 진정한 연결이다” 조용한 비와 바람의 조화 속 아침 명상을 기록한다 - 깨달음 길 621일째 우주본원지와 소우주인 내가 주파수로 만날 때 대상 없는 대상과 하나 됨을 느끼게 된다. 조용하면서도 광대한 영역이 펼쳐지는 우주의 세계는 거대한 천체가 회전하는 것과 같고 웅장함과 장쾌함이 서로 어울려 하나로 연결됨은 대상 없는 대상과 무로 응답하며 침묵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진정한 하나 됨은 진정한 연결로 이어진다. 신경과 혈관으로 온몸에 연결되어져 있듯이 우주는 입체적인 선으로 연결되어져 있다. 한마디로 숨으로 연결되어져 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