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공존하는 선악은 우주의 기본속성이다

청아당 2021. 11. 30. 09:33

공존하는 선악은 우주의 기본속성이다

 

음과 양이 존재하듯이

공존하는 선악은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한쪽으로 중심을 잡기도 한다.

 

음과 양은 무극에서 태극으로 뛰쳐나올 때 발생한다.

 

우주를 한 바퀴 빙빙 돌다 보면 서로 뒤엉키게 되어 있다.

 

서로 뒤엉키다 보면

음과 양이 하나로 합체될 수밖에 없다.

공존하는 선악은 이 둘이 엉킬 때 발생한다.

 

분명 선인데 악으로 작용하고

분명 악인데 선으로 작용한다.

 

이 둘의 관계는

음과 양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관점에서 발생한다.

아니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발생하기도 한다.

 

선한 행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악한 행동을 한 것처럼 비춰지게 된다.

 

악한 행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선한 행동을 한 것처럼 비춰지게 된다.

 

무슨 일인가?

선을 선이라 못하고

악을 악이라 못하니

이를 두고 공존하는 선악이라 말한다.

 

공존하는 선악의 궁극적 목표는

선한 행동을 더 선호한다.

 

선한 마음은 우주의 중심을 잡아주기에 참나와도 같고

악한 마음은 우주의 궤도를 도는 에고와도 같기 때문이다.

 

물론 참나 속에는

모든 종교와 철학이 녹아있기에

선악이 함께 존재하지만

분리시키면

이러한 형태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선이다.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악이다.

 

문제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악이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선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 둘의 관계가 혼재하는 까닭에

공존하는 선악이 탄생한다.

 

공존하는 선악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선을 더 선호하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오고 감에 있어 공존하는 선악은

한곳을 고집하지 않는다.

 

우주의 근본원리이자 우주의 기본속성으로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눈을 뜬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공존하는 선악은 한시도 멈춘 적이 없다.

 

끝없이 우주의 안팎을 휘젓고 다니며

시의적절한 순간에 공존하는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며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명쾌하게 판단해주기도 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흐려놓기도 한다.

 

하지만 공존하는 선악은

늘 함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기에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선이 작용하던?

악이 작용하던?

동시에 움직이기에

심신과 우주의 기가 하나가 되어

영육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주 자체가 공존하는 선악을

가장 안쪽에 품고 있기도 하다.

 

공존하는 선악의 숙명적 운명이자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20211130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