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사후세계 – 빛의 근원으로 존재하는 영혼들

청아당 2022. 1. 16. 11:32

사후세계 빛의 근원으로 존재하는 영혼들

 

우주는 넓고도 넓다.

 

자연계의 우주가 있는가 하면 영계의 우주가 있다.

 

자연계의 우주가 서로 연결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면 영계의 우주 또한 서로 연결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자연계의 우주와 영계의 우주 또한 서로 연결성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이 얼마나 정교하고 치밀한 조합인가? 자연계와 영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또는 육신을 벗어던지거나 영계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놓은 절대자의 배려는 참으로 그 깊이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할 수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견해는 서로가 다 다르다.

임사체험이나 근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영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렇지만 체험이나 영계의 모습에 대해서는 본질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전체를 보지 못하는 눈도 있겠지만 우주는 넓고도 넓어서 그 깊이를 다 알 수 없는 탓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영원 불멸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기에 별도로 간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영의 지위나 영격에 의해 천국으로 인도되는 영이 있는가 하면 천국과 격이 맞지 않으면 스스로 머리를 거꾸로 하여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천국에서는 그 빛을 감당하지 못하여 스스로 자신의 빛에 맞는 곳으로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그러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자기완성체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윤회라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아 그 상태에서 상태에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절대자의 현명한 처사라고 볼 수도 있지만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자살한 영은 지박령이라하여 자살한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영원히 그곳에서 떠도는 유혼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불교는 불교적인 입장에서 인과 및 카르마()와 윤회를 말한다.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며 단계별로 심판을 받아 가며 자신이 처할 지옥에 떨어지거나 극락으로 간다는 것이다.

불교는 유연성을 발휘하여 자살한 영일지라도 다시 인간세계에 돌아와 윤회의 과정을 거치며 숱한 생을 경험한다고 한다. 물론 또다시 자살할 확률이 높다고도 한다. 문제는 지구나 외계인이 존재하는 행성에 태어나 자기완성을 위해 육신을 입고 수행이나 삶에서 완성체를 이루어나가기 위해 반복한다는 점이다.

 

결국, 영은 육신을 통해 자기수행이나 자기완성을 위해 태어난다는 점이다. 숱한 윤회를 통해 자기완성을 이루는 고급령이 있는가 하면 수천 년을 방황하며 똑같은 어리석음을 계속해서 저지르는 저급령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육신을 잠시 빌려 입었을 때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못하고 기회를 놓치게 되면 또다시 윤회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숱한 생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공통적인 점은 시대에 따라 영이 생각한 방식대로 심판자에게 가는 방식이 다 다르다는 점이다. 배나 차를 타고 갈 수도 있고 엘리베이터나 UFO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영계에 이동한다는 점이다. 또는 어둠의 터널이나 빛의 터널을 통과하여 영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원로회의에서 심판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영이 휴가를 가고 싶으면 지구에서 지냈던 한적한 시골 마을이나 휴양지를 영계에 만들어 그곳에서 편히 쉬기도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천국과 지옥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생각한 대로 영계가 펼쳐진다고 한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육신을 벗어던지면 귀신이 된다. 아니 영혼이 빠져나온다. 영혼은 불멸성을 지닌 에너지체로서 자기완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나가는 빛의 근원체이자 우주 절대자의 뜻에 의해 우주와 결합 관계가 최적화됐을 때 바로 천국으로 인도되거나 고급령이 머무르기 좋은 곳인 보다 높은 영계의 행성에 머문다고 한다.

 

영혼은 참자아와 통한다. 참자아의 진화 정도에 따라 영격이 결정되고 그 영격에 따라 영이 머물 수 있는 곳이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지구나 다른 행성에 육신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참자아를 진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자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연인관계나 부부가 함께 영격이 상승하여 동격이 되어 영계로 회귀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인연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육신을 입었을 때 최선을 다해 고요히 명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남을 위해 최선의 선을 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명상과 선한 행동을 통해 영격이 진화된다고 한다. 이는 사후세계에서 중요한 척도로 사용되기에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결론은 직접 죽어봐야만 알 수 있는 곳이 영계의 우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모든 의문이 다 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늘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늘 부분을 보고 판단하기에 자연계나 영계의 모든 부분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부분이다. 자연계에서나 영계에서 바라보는 것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는 점이다.

 

우주는 완벽한 질서를 유지하며 운행되어져 가지만 인간이나 영혼은 완벽하지 못한 채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이 둘의 차이점 때문에 사후세계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돕고 서로 이롭게 하기 위해 이 지구에 왔다는 사실이다.

 

악한 행동보다는 선한 행동을 더 선호하기 위해 이 지구에 왔다는 사실이다.

 

2022116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