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채워야 비울 수 있다

청아당 2008. 1. 9. 11:14

채워야 비울 수 있다

 

비워있는 것을 비워봐야

비울 수가 없다.

조금씩 차있는 것을

비운다는 것은

시간 낭비다.

꽉 차있을 때

비워야

비워지는 맛이 느껴진다.

조금씩 찰 때마다

비우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한번 따른

찻잔이 다 비워졌을 때 채워야

꽉 찬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채워야 비울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10년 주기로 버리는 사람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버리는데 주저하게 된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버리기가 아까운 것이다.

젊어서는

버려도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아낌없이 버렸지만

늙어서는

버리면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버리고

또 버렸지만

항상 버려야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버리면 채워지지만

버리는 일은 한두 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끝없이

버리고 또 버려도

또 버릴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얼만큼 버려야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버리는 일에

집착하게 된다는 뜻이다.

버린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채운다는 뜻과 같다.

이사를 가고나면

빈집으로 남지만

새로 사들인 살림살이들이

꽉 채워지는 것과 같다.

버리는 일은

자신을 뒤돌아보는 일이다.

채우는 일은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모습이다.

버리고 채우는 일은

일상의 일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버리고 채우는 일을 반복해야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비우지 못했다고

자책하거나

너무 채우는 일에만 열중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비우고 채우는 일은

우주역사이래로

한시도 멈춘 일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비우고 채우는 일에

얽매어 있는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지를 깨닫게 된다.

자연이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주어진 데로

사는 것이

비우고 채우는 일임을 알게 된다.

굳이 비우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저절로 비우고 채워지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세상사는 일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길로 인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명상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다반사이듯이

진정으로 자신을 비우며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씩 우리들이 정해 논 틀에 얽매어 살 때가 많다.

엄격한 규율을 중요시 여기는 종교가

대표적이라 말할 수 있다.

종교적인 삶에서 보면

분명 옳고 훌륭한 삶 같지만

그것은 종교적인 틀에서만 효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들에게는

우리들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 있고

인간 상품처럼

누구나 똑같은 삶을 요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수만큼이나

개성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개성대로 사는 것이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남의 단점은

잘 보이지만

자신의 단점은

잘 안 보이는 이치와 같다할 수 있다.

자신에게는 그것이 옳고

거역할 수 없는

진리 같지만

생각을 바꾸어보면

한낱

말장난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삶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실은

우리가 생각한 데로

이루어지는 공간이지만

그만큼 벽도 높을 수밖에 없다.

산에서 사는 사람들은

산이 좋다고 말할 수 있고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은

시골이 좋다고 말할 수 있고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도시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은

우리들의 감성으로 느끼며

사는 공간이 좋은 것이다.

그런 공간을

그런 감성을 멀리한다면

우리들에게 남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크고 높고

고상하고

위대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소박한 삶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한 삶인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말장난이 아닌

진정으로 피부에 와 닿는

감성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비울 수 없는 것을

비울 수 없다 말하고

채울 수 있는 것을

채울 수 있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현실에 맞는 진실일 뿐이다.

손에 닿지 않는

깨달음의 세계보다는

손에 닿는

치열한 삶이 더 중요한 것이다.

비워도 비워도

또 비워야한다면

사람들은

지쳐 쓰러질 것이다.

비우지 않아도

채워지는 자연처럼

채워도 저절로 비워지는

자연처럼

그렇게 앞만 보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이

어쩌면 더 소중한 삶인지도 모른다.

아니

핸드폰을 통해 날아온 문자메시지

대출금 만기일이 129일이오니 확인바랍니다. -○○은행-” 이라는 멘트가

더 생동감 있고

현실감 있는 삶인지도 모른다.

비우는 일은

자신을 뒤돌아보는 일이자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러 비우며 살려고 노력하지는 말자는 뜻이다.

비우지 않아도

꽉 채워지면 저절로 비워지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

비워도 비워도

또 비워야 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나무가 바람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처럼

그냥

손을 흔들며 살자는 것이다.

 

200819일 수요일

 

채워야 비울 수 있다를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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