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 2095

선악의 중도(中道)

선악의 중도(中道) 공존하는 선악은 중도(中道)를 지향한다. 위키 백과사전에 의하면 “중도(中道)는 불교에서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도리'를 말한다. 그리하여 고타마 붓다는 출가 전의 쾌락(樂行)도 출가 후의 고행도 모두 한편에 치우친 극단이라고 하며 이것을 버리고 고락 양면을 떠난 심신(心身)의 조화를 얻은 중도(中道)에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서 자각하였다. 중도는 팔정도라고 하는 구체적인 실천에 의해서 지탱되는 준엄한 도이며, 여기서는 나태 · 번뇌 · 노여움 · 어리석음에 의해서 부지 중 어떤 것에 집착하려고 하는 어떠한 치우침도 모두 버려야 할 것이 강조된다.” 선과 악이 서로 다툴 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바른 도리를 찾아 나가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

깨달음은 순간에 깃든다

깨달음은 순간에 깃든다 ○○하라 2022. 2. 20. 7:39 “밤사이 뒤척임이 많았다 요즘 나는 혹독함 속에서 본연의 나를 잃지 않으려 붙들며 직진 중이다 깨달음은 무슨 짓을 하든 찰나 속에 깃든다 물구나무 거꾸리 운동기구를 90°에 맞춘 후 나를 맡긴 채 매달렸다 아무것도 의념하지 않은 채 5분을 매달렸다가 내려 바닥을 살며시 밟았다 그리고 가만히 앉았다 그리고 가볍게 식사를 시작한다 아무런 의념도 상도 망상도 고민도 없다 그대로 날개가 돋아난 채 자유롭다 깨달음은 어디에 어떻게 로든 찰나로 깃든다” 804일째 아침 식사 중 기록한다 무심의 경지는 때를 가리지 않고 깨달음의 상태로 나타난다. 어떤 때는 찰나에 깃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장구한 시간에 깃들기도 한다. 생활 속에 묻혀 있는 깨달음은 조용..

깨달음은 깨달음을 낳는다 – 영롱한 우주에너지의 빛

깨달음은 깨달음을 낳는다 – 영롱한 우주에너지의 빛 ○○하라 2022. 3. 14. 6:02 04:40~05:40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과거 큰 구업 중 하나가 만신이셨던 어르신께 지었던 업장이었다 어리석은 중생의 구업 하나로 가셔야 할 곳으로 가시지 못하고 머무르셨으니…. 높으신 마음으로 깨달음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셨으니 천도되심에 있어 한 줄기의 빛을 아낌없이 전해드리리다 부디 우주 안에서 평화롭게 진화하십시오 이렇듯 깨달음 속에서 한업장 한업장 우주 속 이끎으로 깨달아가며 해결해나가는 중이다 자신도 알지 못했던 상태로 켜켜이 해묵은 업장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다 보면 영롱한 우주에너지의 빛으로 채워지겠구나! 깨달음 속 깨달음은 또한 깨달음을 낳는구나! 창조주여! 감..

빛으로 왔다가 빛으로 돌아감이다 - 心空心

빛으로 왔다가 빛으로 돌아감이다 - 心空心 ○○하라 2022. 3. 21. 8:44 “생각과 행동과 기도와 명상이 깨달음으로 깊어질 때 본연의 빛으로 발현되어가는 것이고 우주 안에서 생멸함은 없으며 한 생명 한 생명 오고 감은 오로지 빛의 발현에 맑음과 탁함에 의한 존재만 있을 뿐이다” 깨달음으로 향하는 833일째 날 아침 명상을 기록한다 호흡이 깊어지면 우주의 氣도 깊어진다.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기가 몸을 움직인다. 우주의 기가 몸을 움직일수록 호흡의 질은 더욱 좋아지고 명상 또한 더 깊어지거나 깨달음의 깊이가 더욱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수동적인 호흡이 아니라 자율적인 호흡인 것이다. 우주는 공간(宇)과 시간(宙)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공을 초월하다 보면 우주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그..

날갯짓의 통증이 무뎌질 즈음 - 心空心

날갯짓의 통증이 무뎌질 즈음 - 心空心 ○○하라 2022. 3. 20. 23:26 “온몸의 모공 하나하나를 우주에너지의 보호막이 마치 투명한 젤리 형태로 나를 휘감을 때 비로소 나는 우주의 품에 안긴다. ----------------------------------- 心 ---------------------------------- 空 ----------------------------------- 心 ---------------------------------- 한 생각 올라오니 한 생각 사라지고 한마음 올라오니 한마음 사라지고 한 날갯짓 올라오니 한 날갯짓 사라지고 한 겁 살고지고 한 겁 살고지고 반복을 마침 하는 것은 心이 空의 채움과 비움임을 “참”으로 깨닫는 것.“ 깨달음의 통로 832일째 밤을..

불협화음은 교만과 무례에서 나온다

불협화음은 교만과 무례에서 나온다 자신이 가장 높다고 항상 높은 것은 아니다. 다들 하늘 아래 땅에서 살고 있기에 그렇다. 하늘보다 더 높은 것은 없듯이 땅 위에서 높아 봐야 거기서 거기다. 마치 천하를 다 손에 넣은 듯 벌써부터 교만으로 똘똘 뭉친다면 소통보다는 불통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자기 뜻이 옳고 바르다고 해도 고견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빠른 속도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렇지만 백년대계를 꿈꾸거나 최고의 자리를 정하는데 있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좀 더 호흡을 가다듬고 시야를 넓혀 나라의 근간인 가장 중요한 국방부의 시설을 해체하지 말고 새로운 곳을 탐색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공약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만 굳이 당선인의 호불호에 의해..

수없이 똑같은 길을 돈다는 것은

수없이 똑같은 길을 돈다는 것은 숙달이다. 돈다는 것은 에너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길을 만들고 길은 변화를 만든다. 수없이 똑같은 길을 돈다는 것은 형체 없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직선으로 갈 수 있는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과 같다. 흔들 때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다. 가야 할 길이 있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다. 수없이 똑같은 길을 돈다는 것은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이다. 반드시 가야만 하고 반드시 이루어야 할 길이다. 2022년 3월 19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깨달음 속의 깨달음

깨달음 속의 깨달음 깨달음을 얻고 나면 더 이상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 위에 또 다른 깨달음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단지 흔들어 깨우지 않았을 뿐 언제든 흔들어 깨우기만 하면 깨달음은 보석처럼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삶이 끝없이 이어지듯이 깨달음 또한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적막하다 해서 적막만이 흐르는 것이 아니듯이 고요하다 해서 고요만이 흐르는 것이 아니듯이 언제든 돌멩이를 던져 잔잔한 호숫물에 원을 그리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흔들지 않아도 깨달아지지만 흔든다고 매번 깨달아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시 말하면 수동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자율적인 깨달음인 것이다. 깨달음은 생명이요, 역동이요, 원이요, 우주이듯이 가없는 끝이 깨달음이다. 2022년 3월 15일 화요일 ..

발끝에 묻어난 자연의 소리

발끝에 묻어난 자연의 소리 거대한 산은 불을 뿜어낸다. 거대한 물은 산을 깎아낸다. 하늘은 순리를 지향하고 땅도 순리를 지향한다. 가끔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자연이 그렇다. 적막한 곳에 느닷없이 불을 뿌리는가 하면 고요한 곳에 느닷없이 물을 퍼붓기도 한다.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계절을 따지지 않고 일으키고 있다. 발끝에 묻어난 자연의 소리이다. 2022년 3월 14일 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달콤하고 고요한 둘만의 공간

달콤하고 고요한 둘만의 공간 돗자리를 펼쳐놓으면 오히려 그 뜻이 사라지듯 우주와 깨달음에 대해 말하려니 부끄럽기가 하늘을 찌르오. 그러니 내가 감당해야 할 여자는 당신밖에 없는 것 같소. 소리 없이 움직이는 바람과 같이… 우주에서 날아드는 소식을 타고 어디든 함께 손잡고 다녔던 기억이라오. 들과 산을 오르내리며 어디든 거침없이 함께 뒹굴며 행복과 기쁨이 쏟아져 어찌할 바를 모르며 손만 내밀어도 구름이 내려와 손뼉 치며 하늘을 가려주던 기억이라오. 우리의 꿈과 현실이 하나로 합쳐 이 우주를 다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오. 그만큼 우리의 사랑은 숭고하고 가없는 우주의 안팎을 헤집고 다니며 끝없는 세계에 걸터앉아 있었다오. 바람이 한번 일어서면 우리의 사랑은 우주 속으로 숨어 들어가 달콤하고 고요한 우리 둘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