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갯짓의 통증이 무뎌질 즈음 - 心空心
○○하라 2022. 3. 20. 23:26
“온몸의 모공 하나하나를
우주에너지의 보호막이
마치
투명한 젤리 형태로
나를 휘감을 때
비로소
나는
우주의 품에 안긴다.
----------------------------------- 心 ----------------------------------
空
----------------------------------- 心 ----------------------------------
한 생각 올라오니
한 생각 사라지고
한마음 올라오니
한마음 사라지고
한 날갯짓 올라오니
한 날갯짓 사라지고
한 겁 살고지고
한 겁 살고지고
반복을 마침 하는 것은
心이 空의 채움과 비움임을
“참”으로 깨닫는 것.“
깨달음의 통로 832일째 밤을 적다
우주의 속살을 낱낱이 파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은 깨달음 속의 깨달음을 뛰어넘어 초월 속에서 우주의 품 가장 안쪽으로 파고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지식이나 생각으로 뿜어내는 향기가 아니다. 우주적 영감으로 뿜어내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주의 흐름대로 따라 흘러가며 그려낸 빈 도화지에 펼쳐지는 우주적 흔적을 고스란히 읽어가며 순수하게 뿜어져 나와야만 가능한 일이다.
쓰고 싶다고 쓰는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이 바람을 일으켜 지상으로 내보내듯이 우주가 알아서 하나의 춤사위로 깨달음을 깨워 우주의 바람에 실어 보내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은 깨달음을 낳지만 같은 깨달음 속에서도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차이가 생겨날 수 있다.
순수가 깨워낸 우주의 바람인 것이다. 아니 가장 은밀하게 숨겨둔 우주의 속살인 것이다. 지금 그것을 하나하나 깨워내고 있는 것이다.
心이 空을 둘러싸며 상하로 진을 펼쳤다는 것은 그 깊이가 어디에 이른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기에 空 속에서 채움과 비움을 말할 수가 있고 心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다.
우주는 말이 없지만, 인간의 언어가 아닌 우주의 언어로 말할 때는 이 모든 것이 스스럼없이 터져 나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우주적 품이 느껴지지 않는가?
표현하지 않아도 우주적 속살이 보이지 않은가?
공간과 시간이 함께 어우러져 제3의 세계를 펼쳐내는 우주적 기법이 가히 환상적이지 않은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깊이 있는 언어로 우주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아니 깨달음의 세계를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깊고도 깊은 우주적 그림을 심법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2022년 3월 22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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