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깨달음을 낳는다 – 영롱한 우주에너지의 빛
○○하라 2022. 3. 14. 6:02
04:40~05:40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과거 큰 구업 중 하나가 만신이셨던
어르신께 지었던 업장이었다
어리석은 중생의 구업 하나로
가셔야 할 곳으로 가시지 못하고
머무르셨으니…. 높으신 마음으로
깨달음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셨으니
천도되심에 있어 한 줄기의 빛을
아낌없이 전해드리리다
부디 우주 안에서 평화롭게 진화하십시오
이렇듯 깨달음 속에서
한업장 한업장
우주 속 이끎으로
깨달아가며
해결해나가는 중이다
자신도 알지 못했던 상태로
켜켜이 해묵은 업장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다 보면
영롱한 우주에너지의 빛으로
채워지겠구나!
깨달음 속 깨달음은
또한
깨달음을 낳는구나!
창조주여!
감사합니다”
깨달음의 826째 날 새벽을 적는다
업장은 업장을 낳는다.
깨달음 속 깨달음은 깨달음을 낳는다.
업장을 소멸시키기 위해선 선(善)으로 이어진 영롱한 우주에너지의 빛에 의해 천도되어야 한다.
업장을 소멸시키고 남은 자리엔 온 우주를 밝히는 영롱한 우주에너지의 빛으로 채워져 너와 나의 간격을 없애고 서로가 하나로 연결된 빛으로 화해간다.
그곳은 뜨겁거나 차가운 곳이 아니라 중용의 자리에서 체와 용이 움직이는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져 있는 곳이다.
마음은 우주 공간 안팎에서 움직이며 부처가 되기도 하고 신이 되기도 하고 우주 자체가 되기도 한다.
마음은 자신을 마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깨달음이 스스로 깨달음이라고 말하지 않듯이 마음은 깨달음으로 연결되어지기도 하고 자연으로 연결되어지기도 하고 온 우주 곳곳에서 춤을 추며 영롱한 우주에너지의 빛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손만 닿으면 터져 나오는 우주의 언어로 마음은 우주의 안팎을 휘젓고 다니며 너와 나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가는 것이다.
멈춰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멈추는 것이다.
오고 감에 있어 이처럼 자로 잰 듯이 움직이는 마음이다.
마음을 마음이라 말하지 말자.
우주를 우주라 말하지 말자.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 마음이요, 우주요, 신이자 현세이니 그 무엇인들 이름 지어 따로 부를 것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팔만대장경을 비롯하여 각종 경들이 주문처럼 진을 치고 있지만 단지 이름 부를만한 단어들을 허공에 매달아 놓은 것이다. 하나하나 따다가 풀어 헤쳐보면 결국은 그 하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이보다 더 크고 이보다 더 작은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우주는 따로 이름 불리어질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 속에는 깨달음 속의 깨달음이 매일 알을 낳고 있으며 그 알을 한꺼번에 다 먹는다하여 크게 이로울 것도 없으며 크게 나쁠 것도 없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롱한 우주에너지의 빛 속에서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2022년 3월 24일 목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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