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순간에 깃든다
○○하라 2022. 2. 20. 7:39
“밤사이 뒤척임이 많았다
요즘 나는 혹독함 속에서 본연의 나를
잃지 않으려 붙들며 직진 중이다
깨달음은 무슨 짓을 하든
찰나 속에 깃든다
물구나무 거꾸리 운동기구를 90°에
맞춘 후 나를 맡긴 채 매달렸다
아무것도 의념하지 않은 채 5분을 매달렸다가
내려 바닥을 살며시 밟았다
그리고 가만히 앉았다
그리고 가볍게 식사를 시작한다
아무런 의념도 상도 망상도 고민도 없다
그대로 날개가 돋아난 채 자유롭다
깨달음은 어디에 어떻게 로든 찰나로 깃든다”
804일째 아침 식사 중 기록한다
무심의 경지는 때를 가리지 않고 깨달음의 상태로 나타난다.
어떤 때는 찰나에 깃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장구한 시간에 깃들기도 한다.
생활 속에 묻혀 있는 깨달음은 조용히 흔드는 순간 터져 나온다.
본래부터 있던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깨달음이기에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굳이 수선을 떨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문리가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깨달음도 함께 터져 나온다.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아름다운 감성을 느낀다.
나쁜 장면을 보면 나쁜 감성이 작용한다.
선악에도 중도가 있듯이 깨달음에도 중도를 통해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듯이 선악도 둘이요, 깨달음도 둘로 이루어져 있다. 아니 모든 만물은 선과 악의 관계처럼 둘로 이루어져 있다.
천지부터 시작하여 군신간의 관계, 부모 간의 관계, 자식 간의 관계, 부부간의 관계 등 둘이 짝을 이루며 음양의 조화를 펼쳐나가고 있다.
깨달음은 순간에 깃든다.
자연의 대우주를 그대로 축소해놓은 것이 소우주인 인체이다.
실제로 깊은 명상에 들다 보면 자연의 대우주를 인체 내에서 거의 다 겪게 되어 있다. 참으로 황홀하고 경이로운 순간들이다. 자연의 위력은 가히 그 무엇으로도 대적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고 크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자연의 위력은 생각보다 크고 무섭다.
깨달음은 걷는 와중에 나타날 수도 있고
깨달음은 명상 속에 나타날 수도 있고
깨달음은 화두 속에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깨달음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있는 것을 손으로 잡아 느낄 뿐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점이 깨달음의 경지이다. 본래부터 있던 것을 보는 것이자, 느끼는 것이자, 손끝에 잡아보는 것이다.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경지이자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경지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3월 26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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