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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글) - 자율호흡법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글) - 자율호흡법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 순간 태양 빛에 감사하고, 달빛에 감사하고, 바람에 감사하고, 나무들의 기(목기)에 감사하고, 지기에 감사하고, 수기에 감사하고, 맑은 소리를 내는 새들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며 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함으로 끝을 맺는다. “우주의 지혜, 태양의 지혜, 자연의 지혜를 닮아가겠습니다.” 생각을 하며 명상에 들어갔다. 우주의 법이자 태양의 법이자 자연의 법으로 호흡을 한다. 일정한 패턴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 아니라 흡과 호로 시작하여 우주의 이끌림에 의해 호흡을 한다. 1시간 동안 호수공원을 돌 때 빠른 걸음으로 들숨(흡)과 날숨(호)을 하며 걷기명상을 통해 준비운동을 마친다. 적당한..

이미 고수였다 - 체계도와 방향성 잡아나가기

이미 고수였다 - 체계도와 방향성 잡아나가기 투명한 우주캡슐에 갇혀있는 듯 전자기막이 쳐지거나 두꺼운 기층이 형성되어지거나 우주에너지가 바람이 되어 몸체를 흔들거나 비몽사몽간에 자신의 몸이 붕 뜨면서 천장에 닿거나 심신이 정화되어져 제독행공의 끝마무리로 개운하게 끝내거나 걸을 때 깃털처럼 가볍게 걷거나 고층 아파트 계단을 평지처럼 걷거나 전철을 탔을 때 사람 몸에서 악취가 너무 심해 칸을 이동해가며 피해 다니거나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명상 중 시험에 드는 현상들이 나타나거나 명상이나 호흡 중 시체 썩는 냄새가 나거나 명상 중 얼굴 반쪽 귀신이 나타나 확 달려들면서 죽이겠다고 협박할 때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고 명상했더니 바로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명상 중 살찐 고양이 한 마리가 왼쪽 허벅지로 올라와..

공(空)과 자유 – 고요의 극점

공(空)과 자유 – 고요의 극점 공(空) 어리석었다. 욕심이었다 집착하였다 ​ 진정 하단전의 축기는 의념으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 "空" 이었다 ​ "空" 함이 채움이고 비움이었다 ​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었다 자유 숨이 자유를 원한다고 했다 ​ 틀 속에 가두지 말아 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찰나의 순간에 듣게 되었다 ​ 자유를 만끽하다 돌아갈 수 있는 지점만 설정해달라고 부드럽게 청하는 숨의 움직임을 받아들인 채 자유를 주었다 ​ 숨의 자유는 아름답다 못해 신비에 가까운 자유를 누렸다 ​ 하단전의 마심과 중단전의 뱉음의 숨을 순간 동시에 분리하는 자유의 호흡을 바라보는 순간 놀라움과 경이로움 속에서 그저 놓아버렸다 한 몸 한순간에 호와 흡을 동시에 주다니…. 왼쪽, 오른쪽…. 하에서 상으로…. ​ 때..

숨 – 깨우침의 노래

숨 – 깨우침의 노래 새벽 명상 중 호흡이 어느 순간 자율호흡이 되어짐을 알아차림 하였다 ​ 인위적으로 조절하려 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자니 복부에 머무르다 심장에 머무르다 등을 지나 위로 위로 향하고자 한다 ​ 가끔 알 수 없는 틱 현상도 일어났으나 무심히 두었다 ​ 때론 나의 몸이 안쪽에서부터 풍선처럼 부풀어 오름을 감지하였다 ​ 그 또한 무심히 관망하자니 어느 순간 또다시 숨이 평화롭다 ​ 나의 하단전에서 내 안의 소우주를 만들어가고 있다 ​ 마음이 스승이구나 깨우침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습니다. 내면을 깨우는 소리이기에 더욱 아름다운지도 모릅니다. 숨을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세계는 가히 천상의 소리요 참 자아를 통해 소우주를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깨우침의 소리이기에 더구나 마음이 스승이..

문의 열고 닫힘을 보라 - 오도송(悟道頌)

문의 열고 닫힘을 보라 - 오도송(悟道頌) 문이라는 것도 몰랐다 문을 연다는 것도 몰랐다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문이 열린 것도 몰랐다 문은 열림과 닫힘이 자유로운 것이란 것도 몰랐다 문이 열리면 정·기·신의 연결로 하나 됨을 몰랐다 틀에서 자유로운 생명체가 된다는 것은 자아의 황홀 속으로 빨려드는 것이리라 깨달음의 관문인 오도송은 깨달음의 세계에 한발 진입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고요의 극점을 향해 더 깊이 들어갈수록 깨달음의 세계는 더 활짝 팔을 벌릴 것이다. 어서 오라고…. 그동안 수고 많이 했다며 아낌없이 모든 것을 보여줄 준비를 할 것이다. 더 강하게, 더 깊이, 더 넓게 품을 수 있는 우주적인 현상들을 뛰어넘어 고요의 극점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2021년 2월 25일 목요일 청아..

믿음의 그릇은 커야 한다

믿음의 그릇은 커야 한다 소박할수록 좋은 것도 있지만 믿음의 그릇은 클수록 좋다. 그릇이 작으면 큰 것을 담을 수가 없지만 그릇이 크면 더 큰 것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란다는 것은 간절해야 하고 처절해야 하고 애절해야 하고 절절해야만 한다. 절실함이 묻어나지 않거나 순수함이 묻어나지 않는다면 믿음 그 자체는 힘을 쓰지 못한다. 믿음은 순응에서 비롯되어지고 믿음은 고해 속에서 시작되어지고 믿음은 준비된 그릇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2월 7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여백에 채울 수 있는 것은 많다

여백에 채울 수 있는 것은 많다 잔설이 녹지 않은 채 하얗게 덮인 청량산 숲속바위쉼터! 병풍바위로 바람은 막아도 눈은 막지 못하여 생겨난 일이다. 여백은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단어다. 채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아서이다. 여백은 말 그대로 여백 속에서도 빛이 나야 하기에 여백의 미를 남겨두어야 하는 큰 과제가 남아있다. 여백은 품을 수 있는 것이 많아야 하며 여백은 배려해야 할 것이 많아야 하며 여백은 하늘과 땅을 가른 후 하나로 합해야 하며 여백은 치유의 뜻으로도 쓰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백은 무한한 공간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좋아하며 여백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여백은 순백의 미를 좋아하기도 한다. 한 호흡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수없이 많다. 눈 한 번 감았다 떠보면 일 년이 지나가 있거나..

삼일신고(三一神誥)

삼일신고(三一神誥) 天無形質 無端倪 無上下四方 虛虛空空 無不在 無不容 하늘은 형체도 내용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으며, 위아래도 네 방향도 없고 텅 비고 공허하며, 있지 않은 곳이 없고 품지 않는 것이 없다. [출처] 삼일신고(三一神誥) 원문과 풀이|작성자 씨올 유래 1906년 1월 24일 오후 11시, 당시 헌신적으로 구국운동을 하던 나철이 서대문역에서 세종로 방향으로 걸어갈 때 한 노인이 다가와 "그대가 나철인가?"라고 묻고는 "내 이름은 백전으로 나이는 90일세. 나는 백두산에 계신 백봉선사의 제자인데 백봉선사가 그대에게 이것을 전하라고 해서 왔노라."고 하며 백지에 싼 무엇인가를 주고 총총히 사라졌다. 나철이 나중에 풀어보니 『삼일신고』와 『신사기』가 한 권씩 들어 있었다고 한다. ​삼일신고는 6..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은 무시의 일에 관한 것으로 언어 이전, 사유 이전이며 무언의 가르침이므로 이 글은 해석할 수 없다.” 가고자 하나 갈 수 없는 곳이 있으며 잡고자 하나 잡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언어 이전의 세계 사유 이전의 세계이자 무언의 가르침은 해석하기가 난감할 수밖에 없다. 분명 있다고 말하는데 잡으려고 하면 없으니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분명 없다고 말하는데 놓으려고 하면 나타나니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있고 없음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천지인을 하나로 묶어 본체로 삼고 그 본을 바탕으로 줄기와 가지로 뻗어나가니 비로소 생명이 싹트고 호흡을 얻는다. 호흡은 무에서 시작되어 유에서 완성된다. 호흡은 유에서 시작되어 무에서 완성된다. 이 둘의 관계에서 생로병사가 생겨나며 윤회의 끝자..

무(無)

무(無) 無는 모든 것을 품을 줄 알아야 하고 無는 모든 것을 비울 줄 알아야 하고 無는 모든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하고 無는 모든 것을 가질 줄 알아야 하고 無는 모든 것을 처음과 끝으로 되돌릴 줄 알아야 한다. 無는 형체 없는 有요 有는 형체 있는 無다. 오고 감에 있어 有無의 다리를 건너지 않은 이가 없으며 파격의 미를 깨닫지 않은 이가 없다. 無는 찾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며 보는 것이며 잡는 것이며 버리는 것이다. 보고 잡고 느끼고 버려도 손끝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눈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잡으면 사라지고 놓으면 다가오는 형체 없는 마음과 같으니 無를 형체로 잡으려거나 형체 없음으로 잡으려면 영원히 잡을 수가 없다. 無는 여백으로 남겨두는 것이며 有를 벗 삼아 바람으로 맞이하거나 자연과 우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