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 2095

청심공과 기본자세 잡기

청심공과 기본자세 잡기 청심공 : 앞목과 뒷목 경혈 누르기 : http://blog.daum.net/yhedang/13629086?category=1722423 전후굴신운동 : http://blog.daum.net/yhedang/13629095?category=1722429 횡격막 누르기 : http://blog.daum.net/yhedang/13629096?category=1722430 하단전 두드리기 : http://blog.daum.net/yhedang/13629097?category=1722431 심호흡 : http://blog.daum.net/yhedang/13629102?category=1722435 먼저 가볍게 청심공을 행합니다. 청심공 중에서 5가지만 행합니다. 숙달이 되고 나면 차츰 늘려..

기본이 바로 서야 중심이 잡힌다

기본이 바로 서야 중심이 잡힌다 초행길은 설레는 길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길이도 하다. 호흡이 깊어질 때마다 새로운 현상에 대해 낯설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경락을 타고 흐르다 보니 생겨난 일이기도 하다. 경락은 기의 통로이다. 기가 내부에 쌓이다 보면 기의 통로인 경락을 타고 흐르려는 본성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초보 수행자의 어려움이 나타난다. 기의 속성은 전기성과 자기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강한 데서 약한 데로 움직이려는 성질이 강하다. 또한 기체이다 보니 위로 상승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신단을 하다가 상기현상을 경험하거나 기의 축적으로 인해 주화입마를 입는 경우는 위의 원리를 모르고 행하는 수련자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더구나 극도로 상기된 일반인에게 천문을 열어..

깃털처럼 가볍게

깃털처럼 가볍게 바람이 잘 통하는 길목에 서 있으면 달려오는 바람에 의해 시원함을 느낀다. 추위가 엄습하는 엄동설한에 갇혀 있으면 스며드는 한파에 의해 추위를 느낀다. 둘 다 인위적인 행위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느끼는 것들이다. 명상과 호흡은 같은 의미로 쓰일 때도 있지만 엄격하게 분리되어져 있다. 명상은 자연스러움에 가까운 내면 탐구용이라면 호흡은 인위적인 기법이 동원된 내면 탐구용이기 때문이다. 명상은 자연스러움이 최고이다. 호흡은 기법을 통해 자연스러움에 이르는 최고의 경지이다. 둘 다 함께 걸어 다니는 바람과 길과 같지만 어떤 때는 분리되기도 하고 합치되면서 바다가 산을 그리워하거나 산이 바다를 그리워하듯이 하나로 움직이기도 한다. 바라보는 시점과 관점에 따라 명상이 되기도 하고 호흡이..

바람이 길을 찾아 떠나듯이

바람이 길을 찾아 떠나듯이 한 호흡 깊게 들이쉬다 보면 가슴속이 시원해지고 복부까지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호흡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수련에서 추구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일일 것이다. 호흡을 통해 보다 깊은 경지에 이르는 길은 목적의식을 갖고 절실함이 동반돼야 한다는 점이다. 한번 해보고 안되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도에 의해 건축물이 올라가듯이 호흡도 접근하는 방식과 디자인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호흡법은 과거의 전통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다양한 방법들로 인해 수백 수천 가지의 호흡법이 있다. 이러한 호흡법을 모두 다 섭렵하거나 시도해보려고 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이 있듯이 자신에게 편하고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마음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마음처럼 바람이 불 때마다 그물에 걸리는 바람이 있다. 바람을 한곳으로 몰아 그물에 걸리게 만든 것이다. 일상에서의 노폐물은 여과기라는 정화 장치를 통해 깨끗하게 만들 수 있지만 마음에 낀 노폐물은 심신을 정화시키는 우주에너지를 통해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 마음을 정화시킨다는 것은 단순히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1급수 계곡물처럼 아무리 맑고 깨끗하다 할지라도 노폐물은 자석처럼 따라붙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마음을 정화시키는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보니 마음을 정화시키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스트레스받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어 전원생활을 추구하거나 산속을 찾아 헤매겠는가? 하지만 사람..

비움과 채움의 미학

비움과 채움의 미학 채운다는 것은 비움에서 출발하고 있다. 비운다는 것은 채움에서 출발하고 있다. 채우고 싶어 채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비우고 싶어 비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채우고 싶어도 채울 수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비우고 싶어도 비울 수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채우고 또 채워도 늘 비우고 있으며 비우고 또 비워도 늘 채우고 있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다. 진정으로 채우고 비우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하늘도 자연도 그렇게 할 수 없어 인간의 손을 빌리고 있는데 진정으로 채우고 비웠다고 자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만하고 교만한 행동이리라. 소유하지 말라고 해서 소유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며 소유하라고 해서 소유하는 사람이 얼마나..

나선형 소용돌이는 우주의 중심이다

나선형 소용돌이는 우주의 중심이다 한파가 매섭게 분다. 살갗을 뚫고 달려드는 바람이다.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곧게 선다. 오고 감에 있어 무엇이라도 하나 던져주고 간다는 것이 기특해 보인다. 반 바퀴 돌 때는 몰라도 한 바퀴만 돌아봐도 알 수 있는 것이 전체적인 윤곽이다. 입자나 물체가 회전한다는 것은 본래의 모습을 보존하려는 목적보다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쉽게 말하면 먼지에서 출발하여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나선형 소용돌이가 우주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거대한 성운이 나선형으로 회전하고 있는 것도 거대한 블랙홀이 나선형으로 회전하고 있는 것도 이 모두가 우주의 중심을 지탱해주고 있는 나선형 소용돌이 덕분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노크도 없이 떨어지는 무소음의 함박눈이다

노크도 없이 떨어지는 무소음의 함박눈이다 하늘과 땅이 모두 하얗게 변해버렸다. 지붕과 정원에 내린 함박눈으로 온 세상이 순백이다. 새겨진 발자국이 한 살 더 먹은 세월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월이다. 지금껏 달려온 세월을 담아 “순백의 영토”에 뿌려놓는다. 노크도 없이 떨어지는 무소음의 함박눈이다. 고요가 홀로 달려 나와 반기는 순간이기도 하다. 2021년 1월 7일 목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1년 전과 1년 후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숨쉬기가 불편해졌다. 마음 놓고 숨을 쉴 수가 없다. 숨뿐만이 아니다. 경제를 비롯하여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를 만큼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 훔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더는 갈 수 없는 길을 향해 도전하기도 한다. 꿈이 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험난하고 극한의 고통일지라도 견뎌내던 그런 용기가 사라져가고 있다. 분명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그전에 보았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천지 차이다. 한숨과 함께 꿈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친다. 가야 할 길이 멀고 도전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손을 놓아버린다. 아니다. 숨은 곳에서 부단히 연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언택트(..

자연은 소중한 것을 오래 남기지 않는다

자연은 소중한 것을 오래 남기지 않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직선과 바다에서 선을 긋고 달려가는 수평선과의 만남이 자연이다. 일생을 되돌아보면 생사의 갈림길에서 험난한 과정을 겪게 되어있다. 유난히 굴곡이 심한 인생이 있는가 하면 순탄한 인생도 있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자연의 흐름 때문이다. 지금껏 달려온 모든 생이 한곳을 향하는 것은 오직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이는 행위들 때문이다. 분명 함께 걷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옆이 허전한 것을 느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먼저 가려는 생성소멸 때문이다. 자연은 순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자연은 소중한 것을 오래 남기지 않는다. 언제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고 있다. 바람결에 스치는 것도 세파에 시달리는 것도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