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의 미학
채운다는 것은 비움에서 출발하고 있다.
비운다는 것은 채움에서 출발하고 있다.
채우고 싶어 채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비우고 싶어 비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채우고 싶어도 채울 수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비우고 싶어도 비울 수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채우고 또 채워도 늘 비우고 있으며
비우고 또 비워도 늘 채우고 있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다.
진정으로 채우고 비우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하늘도 자연도 그렇게 할 수 없어 인간의 손을 빌리고 있는데
진정으로 채우고 비웠다고 자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만하고 교만한 행동이리라.
소유하지 말라고 해서 소유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며
소유하라고 해서 소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낮과 밤이 자연의 섭리이듯이
해가 뜨면 달이 지고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인위적인 행위는 인간이 만들어낸 작품이기에
그에 휘둘리거나 그에 동조하여
채울 수 없는 것을 채우려 한다거나
비울 수 없는 것을 비우려 한다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러고 보면
채우고 또 채우다 보면 심신이 먼저 지쳐 쓰러지고
비우고 또 비우다 보면 영혼이 먼저 지쳐 쓰러진다.
모든 것은 공정성과 형평성이 요구되듯이
음양의 조화와 적절한 융합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수련의 깊이가 깊어질 때
채움과 비움에 대한 미학을 배울 수는 있다.
온 우주와 연결력을 팽팽하게 가진 후
전자기장이 온몸을 휘감고 영혼까지 감싸고 있을 때
우주의 기운에 맞춰 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채움과 비움에 대해 경험을 하게 된다.
말로 하는 채움과 비움이 아니라
하늘과 대화를 나누며
자연과 영감을 주고받으며
조용히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느껴지는
가득함과 비워냄의 묘미를 느낄 수는 있다.
가득 채우고자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가득 채워지고
비우고자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홀가분하게 비워지게 된다.
수행자가 말하는 채움과 비움이란
아마도 수련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채움과 비움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을 뜬 순간 채움과 비움은 더 이상 공유할 수 없기에
채움과 비움은 하늘에다 맡기게 되고 자연에다 보관하게 된다.
그렇다고 채움과 비움을 눈을 뜬 채
공유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순간순간 채움과 비움의 빈틈을 이용하여
채우기도 하고 비우기도 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비움과 채움의 미학이라 말하기도 한다.
2021년 1월 9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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