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길을 찾아 떠나듯이
한 호흡 깊게 들이쉬다 보면 가슴속이 시원해지고 복부까지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호흡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수련에서 추구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일일 것이다.
호흡을 통해 보다 깊은 경지에 이르는 길은 목적의식을 갖고 절실함이 동반돼야 한다는 점이다.
한번 해보고 안되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도에 의해 건축물이 올라가듯이 호흡도 접근하는 방식과 디자인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호흡법은 과거의 전통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다양한 방법들로 인해 수백 수천 가지의 호흡법이 있다.
이러한 호흡법을 모두 다 섭렵하거나 시도해보려고 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이 있듯이 자신에게 편하고 접근하기 쉬운 호흡법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도전해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호흡법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꼭 필요한 호흡법이라면 접근하기 어렵고 힘든 호흡법일지라도 한 번쯤은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
대부분 쉽고 편안한 호흡법일수록 얕은 수준에서 머물 확률이 높기에 보다 큰 목표를 갖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고자 하는 수련자가 있다면 쉬운 호흡법보다는 접근하기 어려운 호흡법에 대해 강구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물론 쉽고 편안한 호흡법이라고 해서 깨달음에 이르지 말라는 법은 없다. 쉽고 편안한 호흡법일지라도 그에 부수되는 과정에서 혹독한 과정을 거친 후 접하게 되는 호흡법이라면 권장해볼 만하다.
혹독하면서도 체계적인 수련법일수록 자신과의 싸움을 요구하고 있고 또 그에 맞는 인내심과 사선을 넘나드는 경지를 요구하기에 험난한 과정은 높은 경지를 바라보는 수련자에게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하나의 관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호흡은 리듬이 가장 중요하다.
호흡에서 리듬을 놓치게 되면 더 이상의 호흡이 안 되기 때문에 리듬을 타는 일이 선행되어져야만 한다.
리듬은 우주의 기운이 조금씩 밀려들면서 하단전을 중심으로 전자기장이 생겨나고 회전력과 丹 융합반응을 거침으로써 폭발적인 에너지를 구축하게 된다.
에너지가 충만할수록 하단전의 중심은 더욱 팽팽하게 차오르며 안정감을 유지해준다.
이를 바탕으로 우주에너지를 통해 영적인 세계와 연결됨으로써 새로운 통로가 열리게 되고 각종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경험하면서 병행되어 나타나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론적인 깨달음이나 학문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만나게 되는 우주 본원의 본체와 합치되는 신인합일의 경지를 말하기도 한다.
물론 깨달음의 세계는 천편일률적인 현상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질병을 놓고 의사마다 처방이 다 다르듯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강사마다 강의하는 방식이 다 다르듯이 깨달음의 세계도 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똑같은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차원에서 말하고 있는 깨달음이라면 그것은 복사본에 불과할 뿐 진정 자신이 깨달은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독특한 개성이 그대로 노출되어져 나타나야 하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손으로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마음으로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다. 그냥 그 상태로 보고 느끼는 것이다. 깨달음을 잡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잡은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보고 느끼는 것이지 자신의 소유물로 보관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가 안부를 묻고 있는 깨달음이기에 어느 한 사람의 전유물로 소유할 수 없는 것은 깨달음은 단단한 고체 덩어리의 유형이 아니라 유연한 기체 덩어리의 무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해서 특별대우를 해주는 법도 없다. 본래부터 있던 자리를 발견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자연의 섭리나 오묘한 법칙은 일맥상통하기에 바람이 한번 스쳐 지나간 자리라고 생각하면 딱 맞는 말이다.
바람이 길을 찾아 떠나듯이 그렇게 찾아가는 것이 호흡이자 깨달음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생에서 만나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수없이 돌고 돌다 보면 언젠가는 그러한 경지에 들 날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11일 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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