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신을 대할 때는 경건해야 한다

청아당 2018. 11. 24. 10:07

신을 대할 때는 경건해야 한다

 

묵산님

()을 대할 때는 경건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저것 부탁하고 구구절절하게 하소연 하는 것이 아니다. 신은 심부름꾼이 아닌 것이다.

가만히 묵상하면 그만이다.

여기서 자신의 생활을 뒤돌아보고 반성을 하고 그것을 바로 잡아가면 더욱 좋은 것이다.

 

어차피 들어줄 일은 들어주고, 들어주지 않을 것은 절대로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치의 불공평도 없고, 누가 더 예쁘거나 누가 더 밉고 그런 것도 없다. 철저하게 공평하다.

일견 냉정해 보이지만 신의 자비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편애라는 것을 모른다.

편애를 하면 조화가 깨져서 불평불만이 생겨난다. 자비는 곧 조화라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하늘을 감동시킬 줄 안다면 기적 같은 일도 이루어 준다.

다만, 기적이라는 것은 미리 월급을 가불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해서 너무 좋아할 필요는 없다.

 

때문에 신() 앞에서는 그저 고요히 있으면 족하다.

 

어차피 될 일은 될 것이고, 되지 않아야 되는 일이라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 철저히 당신을 위한 배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난 목적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는 욕망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돈도 명예도 죽어서는 가지고 갈 수가 없다.

 

삶을 통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은 오직 삶을 통한 경험뿐이라는 사실이다.

 

이것 하나로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앞에서는 그저 고요히 있으면 족하다.

 

어차피 될 일은 될 것이고, 되지 않아야 되는 일이라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 철저히 당신을 위한 배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삶을 통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은 오직 삶을 통한 경험뿐이라는 사실이다.

 

이것 하나로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 앞에서는 그저 고요히 있으면 족하고

삶을 통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삶을 통한 경험뿐이라는 점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신을 대할 때는 경건해야 한다는 점 또한 좋은 말씀입니다.

 

 

그동안 큰 것을 들고 온 것 같습니다.

 

간결할수록 말이 필요 없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다면

이미 초월자의 의사소통방식일 것입니다.

 

특히 기복신앙을 빌미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될 일은 어차피 되고

안 될 일은 어차피 안 되는 일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다 때가 있고

기도를 한다고 다 들어준다면

그것은 신이 아니라 잡동사니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미신하고 철학은 구분해야할 것 같습니다.

 

미신은 점을 통해 혹세무민하는 경우이고

철학은 오랜 세월을 통해 검증받아온

건전한 학문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것을 악용하여

혹세무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아마도 그리 보여졌을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사주명리학은

상대방의 생년월일시를 물어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물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방법은 있지만

정확하게는 묻는 것이 정례화 되어 있습니다.

 

묻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은

관상이나 손금 등입니다.

 

또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점도 어느 정도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쪽으로 너무 관심을 기울이다보면

자꾸 의지하게 되고

삶의 방향도 그쪽으로 쏠리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 시대에 뒤떨어진 삶을 산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런 차원에서 생각하면

진취적인 생각이나 활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철학의 본질에 맡겨둔 채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항상 전체적인 큰 틀에서 보고 생각하면

지엽적인 일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기복신앙은 알게 모르게 신경 쓰게 되어 있습니다.

 

좀 더 잘 살아보려는 욕심이나 욕망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잘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보니

삶의 질에 신경써야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고요하고 또 고요하다보면

그 속에서 모든 것은 투명하게 나타난다고 봅니다.

 

삶의 목적이나 방향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20181124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