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남이 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청아당 2008. 1. 3. 11:55

남이 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홀로 걸어보아라!

길 없는 길을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된다.

선각자들이 지나가든

선구자가 지나가든

반드시

그 뒤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있다.

길은 선명하게 나있지만

수족을 움직여

걸어야만 하는 일이 남아있다.

가다보면

수없이 많은 길에 혼란을 느낄 수도 있고

외길로 잘못 들어 낭패를 보는 일도 있을 것이다.

길은 닦으라고 있는 것이고

길은 걸으라고 있는 것이다.

걷지 않은 길은

폐허처럼

잡초만 우거질 뿐이다.

남이 간 길을 똑같이 걷다보면

편할 것 같지만

하늘은 결코

똑같이 걷도록 놓아두지를 않는다.

선각자들의 깨달음은

하나같이 다르다.

언뜻 보기에는

똑같이 보이지만

그 과정은 천차만별인 것이다.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길 중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 누가 대신해서 찾아줄 수가 없다.

대체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연령대는

20~30대가 많다.

가장 예민한 나이이기도 하지만

꿈과 열정이 가장 왕성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신이 가장 잘 발달된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손만 닿아도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찾으려면 촉각이 서있어야 한다.

모든 영성이 눈을 뜨고

모세혈관까지도 눈을 뜨고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빛의 소립자까지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의 감성이 필요하다.

아니 우주의 원초적 감각까지도 끌어낼 수 있는

감성이 필요하다.

손만 대어도

터질 것만 같은

환한 보름달처럼

감성이 살아 있어야한다.

사는 것은 움직임이지만

깨달음은 느낌이다.

정중동

동중정의 깊이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한다.

침묵 속에서조차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를 들어야한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내적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한다.

크고 넓고

우주보다 더 넓은

고요의 극점 속으로 파고들어야한다.

우주를 한 꼬챙이로 꿰어야한다.

드나듦이 없는 세계로 진입하여

생성소멸의 근원을 느껴야한다.

남이 간 길을 똑같이 걷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먼저 간 사람이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이것처럼 매력 없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주나 사람이나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원하는 습성이 있다.

한시도 제자리에서 멈출 줄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달려야만 직성이 풀리고

변화를 주어야만 삶의 생동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깨달음은 마음을 깨우치는 일이다.

그리고 우주의 현상을 낱낱이 보는 일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가운데

다가오는 원초적 느낌이 있다면

그것을 붙잡아야한다.

깨달음은 잡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마음을 잡을 수 없는 것과 같이

깨달음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잡는 것에 집착하면

하나도 잡을 수가 없다.

놓아야 잡을 수가 있다.

분명 잡고 있지만 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깨달음은 다가와 안부를 물을 것이다.

규칙적이고 틀에 얽매어 있으면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의 틀을 깨고

우주를 박차고 뛰쳐나오라고 하는 것이다.

틀에 갇힌다는 것은

관습과 습관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혁명은 기존의 관습을 깨뜨리는 것이다.

불후의 거장들은

기존의 틀을 깬 사람들이다.

남이 한 것처럼

똑같이 따라한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낯설음으로 심금을 울리는 사람들이다.

신비는 딱 한번이면 족하다.

평범은 신비의 무덤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그래서 좋다.

교만과 오만을 잠재우는 약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갖다놓으면

신기할 것이 없다.

딱 한 번 보는 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신비롭지가 않은 것이다.

신비를 수없이 대하다보면

평범해지기 때문이다.

하늘은 그래서 공평하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하늘이 내린 시련을 극복한 사람에게만

보여주겠다는 강한의지가

조금은 얄밉기는 하지만

인과응보에 따라 그만큼씩만 주겠다는 하늘의 뜻이

어떤 때는 고마울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게 살라는 뜻이다.

깨달은 사람이든

깨닫지 못한 사람이든

자신이 노력한 만큼만 살다 오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공평한 처사인가?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들처럼

남이 간 길을 똑같이 걸어야만 한다.

하지만

같은 감정으로 같은 느낌으로 걷는 것은 아니다.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전혀 새로운 감성으로

걸어야만 한다.

시대가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그렇게 원하고 있고

우리들의 마음이 그렇게 원하기 때문이다.

 

200813일 목요일

 

남이 간 길을 따라 걸을 때 색다른 느낌이 들어야한다.

 

청아당 엄 상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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