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인연1

청아당 2008. 1. 4. 11:19

인연1

 

나무를 산에 심으면

산에서 자란다.

나무를 정원에 심으면

정원에서 자란다.

그리고 가로수는

매연을 마시며 자란다.

똑같은 나무라도

환경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불교가 좋은 사람들은

산에서 수행을 즐기고

기독교가 좋은 사람들은

세속에서 수행을 즐긴다.

산에서 수행을 즐기든

세속에서 수행을 즐기든

다 인연에 따라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누가 더 옳고 그르다고 할 수가 없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마음에 의해

선택할 권리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누가 간섭할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마음이 불교에 끌리면

그렇게 하면 되고

자신의 마음이 기독교에 끌리면

그렇게 하면 된다.

어차피 크게 보면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나로 이 우주를 대변하지 못하다 보니

인간이 만들어낸

아니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를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며

수행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지금도 숱한 신흥종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마음만 먹는다면

또 다른 종교가 생겨날 수 있는

이 마당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선택한 종교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면

그리고 기복신앙을 얻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의지할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너도나도

남들이 효과를 보았다는 말에 쉽게

유혹 당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절대자의 존재가치보다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기복신앙에

더 매력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불교는 자신을 깨우치는 일에 열중하지만

기독교는 절대자에 대해 복종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둘 다 확연한 개성으로 출발한 종교이지만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둘 다 터득하고 있다.

먼저 인간을 생각하고

희생하는 정신이

저변에 깔려있다.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는 것이다.

역사가 깊은 종교일수록

희생으로 서 있지 않은 것이 없다.

희생으로 서 있는 것은

그만큼 역사가 길 수밖에 없다.

자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서 해결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이 겪어야 할 고통은

자신이 겪어야만 한다.

깨달음에 이른 선각자들도

하늘이 내린

자신의 고통만큼은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깨달음은 단지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삶은 행동하는 것이고

현실이다.

깨달음만으로는 배고파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숱한 수행자들이

깨달음만 얻으면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할 것 같은

환상에 젖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꿈만 꿀 수 없는 곳이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이 냉혹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깨달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현실인지도 모른다.

현실은 피부에 와 닿는 삶의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이구동성으로

한눈팔 시간이 없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사는 곳이

세상이다.

맞춤형 상품처럼

성자들이 말한 데로 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좁은 것도 있지만

똑같은 사물을 놓고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사는 곳이 현실이기도 하다.

인연은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다.

자신의 발길이 닿는 곳이

곧 자신의 삶터인 것이다.

비록 불만으로 가득한 곳일지라도

자신의 힘으로

다른 세상을 찾지 않는 한

그곳에서

지내야만 하는 악연 같은 인연인 것이다.

살다 보면

운명 같은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크게 보면

자신의 성격이 그렇게 만들었고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만들었다.

종교의 힘은

성격과 행동을 순화시키는 데에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욕구를 잠재우는데 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연은 발길 닿는 데로 움직이는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 것처럼

삶 자체가 인연으로 뭉쳐진 것이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모두 다 만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며 사는 것이다.

천년만년 영원히 볼 것 같은 사람들도

내일이면 헤어지고

모레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사는 것이다.

인연은 아름다운 것 같으면서도

냉정하다.

평소에 주고받는 연습에 서투를까 봐

강제로라도

회자정리(會者定離) 시키며

살아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200814일 금요일

 

인연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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