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깨달음에 대한 허실

청아당 2007. 12. 24. 10:59

깨달음에 대한 허실

 

명상을 통해

호흡을 통해

고요의 극점에 다다르면

그 모든 것이 끝이 난다.

하지만 깨달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본래부터 있던 자리를 잠시 보았을 뿐이다.

이미 숱한 선각자들이 보았던 그 자리를 뒤늦게 보았을 뿐이다.

뒤늦게 본래의 자리를 보았다고

자연이 그 한사람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거나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삶은 행동이요, 실천이다.

실천 없는 삶은 살 가치를 느끼지 못하듯이

허구적인 현상에 대해 너무 몰입해 들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삶을 뒤돌아보면

모두가 깨달음의 세계임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놓쳤던 숱한 현상들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어오는 것이다.

알고 나면 깨달을 것이 없는 것이다.

이미 모두가 깨닫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깨달음의 보고이자

삶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아니 무엇 때문에 깨달으려고 하는가?

땅을 밟고 서있는 곳이 깨달음의 장이자

삶의 진수인 것을

깨달음을 얻어 정신적인 고통을 벗어나려고 하는가?

삶의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가?

아니면 사후에 편안하게 지내려고 하는가?

깨달음은 단지 본래의 자리를 엿보는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는 삶의 가치가 상승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허무주의에 빠져

현실을 무시한 채 삶이 무상하다느니

침묵으로 일관하려는 좋지 못한 관습을 즐기려할 뿐이다.

홀로 서있어 보아라!

다가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요의 극점에 다다르고 나면

그 다음은 무엇인지를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움직여야한다.

깨달음을 얻었던 얻지 못했던

고통의 깊이로 서있던 환희의 즐거움으로 서있던

삶은 진행되어져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로 가는 삶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잘 살던 못 살던

앞으로 달리는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현실을 무시하고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선만을 강조하거나

선만을 고집하며 살다보면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은

깊은 산중에 묻혀 홀로 사는 일밖에 없다.

먹는 일은 생명을 먹는 일이다.

깊은 산중인들 악을 행하지 않고 지낼 수는 없는 일이다.

동물만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식물도 생명이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저것 다 따지다보면

해야 할 일이 없어진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해지면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난한 나라가 그러하지 않은가?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인도가 그렇고

한국과 중국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모두가 함께 잘사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낙후된 나라는 강대국들한테 천대받고

무시당하지 않은가?

천대하고 무시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비쳐지지 않던가?

한국보다 못한 나라들을 보면 측은지심부터 일어나듯이 말이다.

생각으로 풍요로운 것은

좋은 점도 많지만

그만큼 게으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경제가 발전되지 않은 만큼 환경파괴는 일어나지 않지만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함께 살다가 다함께 이 지구를 떠나더라도

생사를 함께 하는 일이기에

후회 없는 삶을 살다 가는 것이다.

깨달음은 허구적인 세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냉정한 삶의 현장을 함께 겪는 일이다.

성자들이 주장한 삶의 이상향으로

현실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주도해나가는 강대국들의 청사진으로

현실을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보아라!

밑도 닦을 수 없는 깨달음만으로는

배고파 살 수 없는 현실이 기가 막히지 않은가?

무엇이 그토록 위대한가?

깨달음은 단지 수많은 학문 중에 하나의 장으로 분류되어져 있을 뿐이다.

마치 전문분야의 한 분야처럼

정신적인 사유를 즐기는 하나의 전문분야일 뿐이다.

그동안 숱한 사람들이 환상에 젖어

깨달음만 얻으면 마치 천지를 개벽할 것 같은 논리에 놀아나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수많은 수행자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하늘은 만인에게 공평하다.

깨달음을 얻었던 얻지 못했던

삶의 현장에서는 누구나 다 같이 노동의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이 얼마나 공평한 처사인가?

삶은 살아가는 것이다.

가장 높고

가장 험난하고

가장 아름다운 길

*차마고도의 사람들처럼

그 어떠한 악조건일지라도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며

미래를 준비해나가는 것이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낫기에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일이 없는 세상은 끔찍하기에

꿈을 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가 아닌가?

자신의 발자취를 남겨둔다는 것은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에

남겨두지 않은가?

삶은 기록으로 시작되어져 기록으로 끝나지 않은가?

기록을 통해 새로운 삶의 장을 여는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깨달음이 되었던 삶이 되었던

땅을 밟고 서있는 현실을 무시하면

한낱 꿈밖에 더 되겠는가?

우리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에 놓여있는 것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전쟁터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자신에게 던져진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밖에 그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스님은 스님답게

목사는 목사답게

세속인은 세속인답게 사는 일이야말로

참 삶이 아니겠는가?

 

20071224일 월요일

 

깨달음에 대한 허실을 바라보며

 

청아당 엄 상 호

 

 

* 차마고도(http://www.kbs.co.kr/1tv/sisa/insightasia/chama/) : 세상에서 가장 높고 오래되고 아름다운 길, 차마고도

 

인간과 문화에 관한 아시아 문명기획 다큐멘터리인사이트아시아시리즈. KBS가 아시아 국가들과 공동제작한 핵심전략사업으로, 아시아 관련 아이템을 선택하여 세계적 수준의 고품격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방송과 함께 책으로도 동시 출간할 예정이다. 아시아적 문화가치의 키워드를 각 장르별로 세부화하고 보다 깊이 있는 탐구와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함으로써 '아시아의 힘'의 원천을 살펴본다.

 

2<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200년 앞선 문명 교역로 '차마고도' 전구간을 세계 최초로 답사 촬영한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를 옮긴 책이다.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오고 갔던 문명문화경제 교역로 차마고도는 가장 높고, 가장 험하고, 가장 아름다운 길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그 험난하고 아름다운 길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차마고도의 역사와 풍경을 전하는 의미 있는 기록이다. 중국의 윈난, 쓰촨에서 티베트 고원을 지나고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네팔로 이어지는 5000km의 대장정이 펼쳐진다. 또한 그 길을 걷고 그 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차마고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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