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청아당 2016. 2. 23. 15:47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엄마가 부르셔도 대답이 없다고 합니다.

아버지!

언제 또 다시 불러볼 수 있는 이름이겠습니까?

 

그 슬픔은 땅을 흔들고

그 아픔은 온 우주를 흔들고 있습니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슬픔에서 멀어질 것이고

듣지 않는 것이 아픔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젊은 사람 못지않은

슬픔과 아픔은

견디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무주공산이 따로 없다고 합니다.

그 적막함이 숨을 막히게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홀로 견디기 힘드셨으면

자식에게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슬픔과 아픔은

견디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보는 것이 배우는 것이고

듣는 것이 배우는 것이듯이

젊었을 때 아버님 어깨너머로 배웠던

한국화가 새롭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분명 말 한마디 없이

작품에만 열중하시던 분이셨는데

은연중에 배우게 하셨고

은연중에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홀로 선다는 것은

무엇이든 힘들고 외로운 길인 것 같습니다.

 

아버님이 한국화에 몰두하실 때

저는 한시와 현대시에 몰두하였고

글 한 줄이라도 남겨보려고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 몫은 순전히

아버님의 가르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보다 먼저 몸으로 익히는 법을

저에게 가르쳐주신 것 같습니다.

 

그 깊이를 배우게 하셨고

그 넓이를 배우게 하셨고

우주를 품게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말 한마디에

깊이와 넓이를 집어넣어 가르침을 주셨고

자연 속에서 자유로움을 배울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가르침입니까?

이 얼마나 명료한 가르침입니까?

 

저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남모르는 정성을 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저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셨다는 말로 들립니다.

 

이제 더는 배울 수 없는 처지이지만

아버님의 가르침은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그 어떤 분들보다도 더

아버님의 족적이 크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는 불러보지 못할 아버지라는 이름!

땅보다 더 큰 바다를 품고 있는 곳이 통영이라면

우주보다 더 큰 이름은 아버지라는 이름일 것입니다.

 

눈뜨자마자

병원부터 가야하나 생각한 순간

뒤돌아서게 되는 것은 현실 때문입니다.

 

그 깊이가 얼마나 컸으면

그 넓이가 얼마나 넓었으면

바다보다

하늘보다

더 크게 느껴지겠습니까?

 

그 끝이 어디라도 개의치 않고

한걸음에 달려가 만나보고 싶겠습니까?

 

아침․저녁으로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곳에서

잘은 계시는지

편안은 하시는지

몹시도 궁금하여 땅을 치고

하늘을 쳐다보아도 도무지 반응이 없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시면 연락해주신다며

약속하셨건만

또한

미리 가셔서 자리를 잡아놓겠다고 하셨건만

보름이 지나도록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불통입니다.

땅에서만 불통인줄 알았건만

하늘과 땅에서조차 불통은 통하고 있었나봅니다.

 

우리에게 언제 연락을 해주실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혹시라도 연락이 가능하다면 곧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아버지 없는 세상은

온 우주가 허전하듯이

어머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형제자매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우주의 뿌리라는 사실을

아버지가 가족의 최고통수권자라는 사실을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오늘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 뼈마디가 내려앉거나

대들보가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그 무거운 중심을

생전에 어떻게 다 견뎌내셨는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우주의 뿌리이자

어머니의 뿌리이기도합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부부애의 한결같은 마음은 우주에서 출발하였고

생사의 경계에서조차 마음을 풀어놓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힘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몸이 아픈 어머님을

30년 이상 밤낮으로 간호해주신 그 정성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아버님의 손길을

어머님은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미처 담아내지 못한 채

그대로 흘려버리십니다.

 

오실 수 없으면

목소리라도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니면 손길이라도 느낄 수 있게

꿈에서라도 나타나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부디 평안하십시오.

부디 강녕하십시오.

다시 뵐 때까지 천국에서 오래오래 사셔야합니다.

 

저희 가족이 가면 다함께 손잡고 다닐 수 있게

미리미리 준비해놓으셔야 합니다.

 

2016년 2월 23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