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사역하는 삶 - 열세 번째(5)

청아당 2013. 12. 15. 22:32

사역하는 삶 - 열세 번째(5)

 

본 교재인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에 기록된

“사역하는 삶” 일부를 발췌해보면 다음과 같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분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순종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양육은 바로 주님을 위한 우리의 사역으로 그 열매가 나타납니다.

 

아직도 우리 교회에는 자리나 채우고 일주일에 한 번 설교를 듣는 것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의 신앙 자세가 그렇게 수동적인 이유는 제대로 양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양육을 받으면 신앙 자세가 적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양육의 열매는 주를 위한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00년대 종교 개혁이 성경을 평신도에게 돌려주었다면, 앞으로 올 영적 개혁은 사역을 평신도에게 돌려줄 것입니다. 프랜시스 아이래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세례를 받았다면 목사 안수를 받든 안 받든 우리는 이미 사역자입니다.”

 

평신도가 자신도 사역자임을 깨닫고 사역을 감당하려면 다음의 다섯 가지 요소를 이해해야 합니다.

1. 성경적인 교회관

2. 성경적인 평신도관

3. 성경적인 은사관

4. 성경적인 훈련관

5. 성경적인 세계관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를 통해

이미 사역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와 깊은 교제를 통해 삼위일체의 정당성을 배우고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처음부터 평신도가 사역을 담당하기에는 벅찬 일이지만

반드시 성경에 대해 많이 알고

믿음이 깊어야만 사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손발을 위해 뛰거나 걷도록 만들어 놓고

가라!

행하라!

수고하라! 라고

자신을 낮춘 후 겸손해지기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중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뜻을 전해주고 있다.

사역은 세례를 통해 시작되어지고

안수를 통해

좀 더 안정적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배분받고 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리가 가야할 길은 많은데 정작 받아줄 사람들이 없으니

한파가 유리창을 뚫고 스며들듯이

우선 자신부터 한기를 차단할 수 있는

문풍지나 방한장치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더울 때는 선풍기와 에어컨이 필요하고

추울 때는 문풍지와 난방장치가 필요하듯이

때에 따라

계절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사역과 연결되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역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요

스스로 일어나 걷는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예수님의 뜻을 살피고

성령님의 뜻을 살피고 난 후

뒤돌아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역의 대열에 끼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모두가 움직인다고 사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고

바람으로 사역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구름으로 사역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믿음을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이

평신도이자 사역자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보아라!

저 높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라!

저 밑바닥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를

손대지 않고 발로 차는 축구처럼

팀을 이룬 후

축구장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이 있기에

바로 그것이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면서 사역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멈추면서 사역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간편한 일인가?

자신도 모르게 사역이라는 것을 하고 있기에

그 누구하나 사역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야할 길보다는

달려야할 길보다는

자신의 뜻을 살피기보다는

먼저 하늘의 뜻을 살피는 것이

바로 사역하는 사람들의 자세이자 적극적인 참여인 것이다.

사역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은 이목구비로 하는 것이기에

사역에선 손발이 먼저 움직여야

그 다음 행동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역은 전도의 연장선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전도를 잘하면 사역이 되고

사역이 잘되면 전도를 하기 때문이다.

전도와 사역은 한 몸으로 움직여야하는

필연체이자 발로 뛰어다니는 역사인 것이다.

무엇이든지 그렇지만

몸으로 하든

말로 하든

그 진실성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면 바로 그것이 사역인 것이다.

우리에게 언제 사역하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 언제 전도하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스스로 찾아나서는 사역이야말로

스스로 찾아나서는 전도야말로

우리들이 꿈꾸는 세상이자

하나님이 꿈꾸는 세상인 것이다.

세례와 안수도 중요하지만

믿어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네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네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시간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하늘이 내린 명령이자

자연을 장악하고 있는 섭리 때문이기도 하다.

 

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