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순종하는 삶 - 열세 번째(4)

청아당 2013. 12. 15. 22:22

순종하는 삶 - 열세 번째(4)

 

본 교재인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에 기록된

“순종하는 삶” 일부를 발췌해보면 다음과 같다.

현대 교회의 커다란 비극은 믿음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많은데 순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적다는 사실입니다.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공격하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 내는 믿음이 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믿음을 지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님의 일을 적극적으로 감당하려면 예수님을 따라가며 순종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그 분을 쫓아야 합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위한 예수님의 계획과 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며, 자신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예수님께 바치며 그분의 뜻에 복종한다는 의미입니다.

 

순종을 강요하는 것은

반항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하나님의 뜻이요

예수님의 뜻이요

성령님의 뜻이지만

삼위일체와 하나가 된다면

사탄이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삼위일체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안전한 장소인가?

이 얼마나 넉넉하면서도 부드러운 공간인가?

반항한다고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삶의 공간이 아니기에

가끔씩은 자연에 순종하듯이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하늘의 뜻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삶이야말로

오뚝이 정신이자

허공을 향해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기에

우리들의 발걸음이

어느 곳을 향해 달리느냐에 따라

순종하는 삶이 되었다가도

반항하는 삶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순종하며 산다고 말했는가?

우리가 언제 반항하며 산다고 말했는가?

스스로 하늘의 뜻을 어길 때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무언의 압박의 손길은 누구의 손인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각이기에

하나님께 반항하면서도 순종하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압력이

우리들의 뇌를 각성시키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들의 일을 방해하며 나타나기 때문이다.

순종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을 수 있는가?

반항보다 더 연약한 힘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이자 가족이기에

손발을 묶여가면서까지

생각으로

행동으로

침묵으로

수행으로

순종에 대해 고민하며 반항심을 잠재우고 있다.

 

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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