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산이 좋아 발걸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폭포와 절이 있어
발걸음이 움직인다
마음을 풀어놓은 곳이
절이라면
산과 계곡은 반야심경이요
속세와 우주로 통하는 문은 팔만대장경이라 말할 수 있다
본래부터 있던 자리를 안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듯이
이미 마음속에 있으면서
마음을 찾으려는 일이 어리석은 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하나에서 전체로 나가다보면
엉킨 실처럼 복잡해진다
본연의 마음을 찾는 일은
전체에서 하나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그네가 길을 떠난다
믿음을 떠나서
명당자리에서 흘러나오는 편안한 기운을 따라 걷다보면
걸음걸음마다
닿는 곳이 배움이요 깨달음이다
낙산사 의상대에 서면
놓을 마음조차 없어진다
몸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배워진다
마이산 탑사에 들어서면
지극한 정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절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공부가 되어지는 곳이다
긴 여정 끝에
영동고속도로 횡성(소사) 휴게소에서
스님 한 분이
커피를 마시고난 후
깊은 명상에 잠겨있다
홀로 설 때는
때와 장소를 가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2006년 4월 22일 토요일
낙산사 일주문 사이로 5톤 트럭이 소나무를 싣고 낙산사 복원을 위해 오르고 있다. 그 뒤를 따르며 함께 오르다 작년에 작은 정성이지만 복원을 위해 기와불사 10,000원을 했던 생각이 난다.
차량 통행금지라는 푯말까지 오르다 차를 돌렸다.
뒤돌아보면 전국의 크고 작은 유명사찰들을 답사했던 기억이 새롭다.
조계사를 비롯하여 송도 청량산 흥륜사, 강화 전등사, 강화 보문사, 덕종산 수덕사, 태화산 마곡사, 마이산 탑사, 두륜산 대흥사, 선운산 선운사, 조계산 송광사, 조계산 선암사, 지리산 화엄사, 가야산 해인사, 영취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주흘산 혜국사,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신흥사, 낙산 낙산사, 토함산 불국사, 천축산 불영사, 도비산 부석사 등 크고 작은 유명사찰들을 밟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절을 찾아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여행길에 절을 거쳐 다니곤 하던 습관 때문에 절과의 인연은 알게 모르게 깊어진 것 같다.
천년의 숲길을 간직한 절을 찾다보면 여름을 식히는 탁족이나 탁신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 좋거니와 또 겨울에는 설죽을 옆에 끼고 빙판을 걸으며 올라가는 맛도 괜찮은 것 같다.
이렇게 전국의 절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 절이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편안한 기운을 받으며 저절로 공부되는 힘이 있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아 다녔던 것 같다.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