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성자와 도인

청아당 2006. 4. 20. 12:54

성자와 도인

 

천년을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사람이 성자라면

오고감이 없는 세월을 내다보려는 사람이 도인이다

 

성자들이 살아가는 방식

숨 막히도록 정교한 인생설계도를 그려놓고

귀족적인 품위로 서민들의 삶을 간섭하려는 사람들

가장 고결하고 가장 이상적인 삶을 요구하는 사람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만 안심하는 사람들

격식과 형식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신의를 목숨보다 중요시하는 사람들

천하를 뒤흔들며 자신이 법이요 자신의 뜻대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

하지마라, 하면 안 된다, 해서는 안 된다라며

악보다는 선을 강조하는 사람들

사려가 깊은 대신 행동은 적고 말이 많은 사람들

완벽한 삶을 살다간 사람처럼 보여 지는 사람들

 

도인들이 살아가는 방식

자연을 벗 삼아 바람처럼 물처럼 걸림 없이 걷고자하는 사람들

틀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틀을 파괴해버리는 사람들

처음과 끝을 하나로 연결하여

침묵으로 대화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있는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학식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움직이기 전에 느낌하나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

 

성자들이 어머니처럼 섬세하다면

도인들은 아버지처럼 담대하다

성자들이 차분하고 조리 있게 설득한다면

도인들은 허를 찌르기를 좋아한다

성자들이 절대자에 대해 복종을 가르친다면

도인들은 절대자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되 의지하기보다는 홀로걷기를 바란다

 

홀로서기에 성공하여

함께 걷는 길이지만

가고자하는 방향이 서로 다른 사람들

사람위에 사람 없듯이

성자도

도인도

범인도

모두 다 한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나를 바라볼 때는

나를 중심으로 모든 일이 일어나지만

한 길을 걸을 때는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비우며

서로가 한 몸으로 움직여야

함께 길을 걸을 수가 있다

그렇지 않고

앞을 다투며 서로 잘났다고 해봐야

허공을 흔드는

빈 메아리밖에는 안 된다

 

홀가분한 상태에 있다 보면

자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모두 법이요

절도와 규범을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생활에서는 

한낱 공염불이요

생존을 위협하는 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인간적인 재미나 생활에 대한 기쁨도 없이

홀로서기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현실보다는 이상적인 꿈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규범과 절제된 생활만을 강조하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긴 탓도 있지만

마음은 누구에게 얽매어 사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에

기계적으로 생산되는 인간상품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개성이 강한 맞춤형 인간이 되고자 한다

 

성자나 도인들이

자신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있을 때

범인들은 경계 없는 틀 속에서

마음껏 헤엄쳐 다니며

자신의 뜻을 펼쳐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재미는

하지 말라고 하는 데에 더 매력이 있듯이

적당하게 자신을 절제하며

삶을 꾸려나간다면

성자나 도인들의 말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아름다운 삶을 꾸려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은

서로가 가지고 있기에

이루지 못한 사랑처럼

서로의 위치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

다 알고 나면 실망을 하거나 허탈해 하는 것처럼

조금 모자란 듯한 부족함이 있어야

나머지를 채우기 위해 열정적인 삶을 영위해나가듯이

부족함은 나무랄 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권장할만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자리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면서

더불어 살아 나가는 것

누가 가장 낫다고 추켜세우거나

겸손을 가장한 교만을 떠는 것보다

범인들이 있어야 성자들도 있고

도인들도 있듯이

서로를 버리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한솥밥 먹는 심정으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더욱 인간적인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인 삶을 설계하는 일보다

생존을 위한 삶이 우선이듯이

 

2006419일 수요일

 

성자나 도인들의 말일지라도 충분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한 그 어떠한 화려한 말이나 설득이라도 무시되듯이 행동보다 허공에 뜬 이상적인 말로 세상을 끌어나가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남발되어지고 있는 유사한 배경과 서로 다른 사후세계로 성자들이 겁을 주고 협박을 하거나 직접적으로 내려온 하느님의 말씀이라도 당당하게 거부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기에 내일 당장 종말이 온다하더라도 마음먹은 데로 세상을 끌고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범인들이 생각한데로 꾸려져 나가게 되어져있다.

어떻게 보면 성자나 도인들보다 한발 앞서 있는 것이 범인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감성과 결단력에 있어서는 성자나 도인들을 앞서는 기개와 용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성자나 도인들의 허구적인 말장난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해 헤쳐 나가는 아름다운 투쟁인지도 모른다.

 

만약에 한솥밥을 먹으면서 석가와 예수의 말을 따른다면 아침에는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해야하고 저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또는 주여! 주여!’”하며 기도를 드려야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배경으로 이루어진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누구의 말을 따라야할지 곤란한 처지에 처하게 될 것이다.

성자들도 둘 이상 모이면 그 근본은 하나일지언정 자신만의 개성으로 똘똘 뭉쳐 있듯이 참으로 보기에도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로 비쳐지게 된다.

 

홀가분한 상태에 있다 보면 폐부를 찌르는 좋은 말들이 저절로 나오지만 남에게 강요하여 반감을 일으키기보다는 가랑비에 젖듯이 젖어오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살다보면 성자들이 주장한 이상적인 세계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판에 박힌 말보다는 빈틈만 보이면 언제든 파고들려는 강대국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야욕 그리고 고품격의 생활과 격조 높은 편리함을 원하고 있는 한 자유를 향한 삶의 방식을 더 선호하듯이 사람들은 틀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자신의 뜻을 한없이 표출해낼 수 있는 자유분방함을 더 좋아하기에 한발 물러서서 서로를 위해 함께 살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고 본다.

 

공존하는 선악 속에서 구분을 짓는 일이 어려운 일처럼 절도와 규범을 생각하기 전에 생존을 위한 삶이 우선이듯이 삶의 방식은 절도와 규범을 이상으로 그리면서 생존을 위한 삶이 우선시되어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아당 엄 상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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