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된 바람
숲 속을 헤쳐 바람이 잘 다니는 곳을 찾아
걸었다.
침묵으로 걷기도 하고
고요로 걷기도 하고
눈을 감고 우주를 향해 걷기도 했다.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치욕이자
굴욕이다.
부채를 꺼내들어 바람을 일으켜보지만
깊게 잠든 바람은
정지된 바람처럼
움직일 줄을 모른다.
밤낮으로 달렸거나
사계절을 향해 달렸던 바람이
여름을 맞이하여
숨죽이듯 서있다는 것은
새롭게 펼쳐질 대자연에 대한 결례이자
우주에 대한 무례이다.
바쁜 와중에 잠깐 쉴 수 있는 것은
망중한(忙中閑)이다.
그렇지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달릴 수 없는 바람이 있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치욕으로 다가선다.
무엇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지
자연을 불러다 물어보고
우주를 불러다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하나같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 이상 달린다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고
미래를 왜곡하고
현실까지도 왜곡당하고 있기에
밤낮으로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가야할 길이 정해져있는데도
갈 수 없는 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은
완성된 삶보다는
미완의 삶을 더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한번 와서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있듯이
꿈도 버리고
희망도 버린 채
정지된 바람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한 삶인지도 모른다.
등에 진 모든 짐을 내려놓거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내려놓는 것으로
서로 상쇄하며
자연을 향해 달리는 것으로
우주를 향해 달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언제 우리들 가슴에 평안이 있었던가?
언제 우리들 마음에 평온이 깃들었던가?
그저 서있는 대로 웃을 수만 있다면
그저 달리는 대로 웃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영혼은 계속해서 하늘을 향하고
땅을 향하고
우주를 향해 달려가는 것으로
그 모든 것을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꿈도 하나요,
희망도 하나이듯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가슴으로 안고
마음으로 보듬는 여유하나만 있다면
빈손이 되어도 좋다.
한번 왔다가 조용히 가야할 인생길이기에
숨 한번 크게 쉰 후
자연을 향해 달려갈 수만 있다면
우주를 향해 달려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다.
2011년 5월 17일 화요일
정지된 바람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