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극점
눈을 감아도 빛이 보인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것도 태양처럼 활활 타오르는 빛처럼
단전에서 불기둥을 안고 생겨난 빛으로
회전시켜
명문에서 대추로
백회에서 하단전으로 내보낸다면
그 뜨거움은 온 우주를 태우고도 남게 될 것이다.
눈을 감으면 어둠이 떠오르는 것은
내면에 숨겨져 있는
빛을 발견하지 못해 생겨난 안타까운 불행이다.
호흡을 고르고 또 고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난 빛이
자신을 밝히고
온 우주를 밝히는 불기둥으로 일어나
인간이 왜, 소우주인지를 알게 해준다.
살아생전
깨달음의 세계가 왜, 빛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지
빛의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땅을 치고 후회할
안타까운 일로 기억되어질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를 얻기 위해선
죽음의 경계에서
생사를 넘나들 줄 알아야하고
심안(心眼)의 세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내면의 세계를 살필 줄 알아야한다.
자신을 덮고 있는 빛이 온 우주로 확대되어
참 나를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어
억겁의 세월을 찰나에 다녀올 수 있고
우주의 품이
얼마나 따뜻하고 평온한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고요의 극점에 도달한다는 것은
도의 세계를 알고
깨달음의 세계를 알고
지구를 밟고 서있는 별들의 고향까지 알 수 있는
광활한 우주의 세계를 넘나드는 수준에 이르게 됨을 말한다.
맨송맨송한 화두만 붙잡고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을 때가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도시적인 문명을 극복해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깨달음의 세계는
호흡을 고르고
명상을 하고
화두를 붙잡고 서 있다 보면
맹자 3천 독에 한꺼번에 터지는 문맥처럼
우주적인 깨우침을 얻게 된다.
가도 가도 끝없는 황야처럼
가도 가도 끝없는 바다처럼
하늘에 매달린 끈을 붙잡아 날아서라도
이 한 몸 던져 끝없는 빛을 찾아 나선다면
태초 이전의 세계에 도달하여
꿈도 희망도 필요하지 않은
오직 티끌조차 몸에 닿지 않는 곳에서
침묵의 잠에 빠져들게 된다.
이보다 더한 아름다운 세계가 있었던가?
이보다 더한 아름다운 공간이 있었던가?
시공을 초월한 상태에서 누릴 수 있는
침묵은 고요로 이어지고
끝과 시작점을 알리는 중심에서
고요의 극점에 든다는 것은
온 우주를 다주어도 바꾸지 않을 만큼
금강석보다 더 강하고
다이아몬드보다 더 아름다운
고요의 극점만이 누릴 수 있는
우주적인 행복이다.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우주처럼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바람처럼
끝없이 펼쳐질 깨달음의 멍석을 펴놓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얻고
우리가 걸어야할 길을 얻고
우주의 지도를 해독해가며
한발 한발 다가가서
꿈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꿈보다 아름다운
희망보다 아름다운
우주적인 깨우침은
침묵을 잠들게 하고
고요를 잠들게 하여
그 어느 곳에서도 자신을 찾을 수 없도록
기억을 지워버리는 일로 매듭을 짓는다.
다시는 지구상에 나타나지도 않고
다시는 우주상에 나타나지도 않고
오직 침묵으로 베개 삼고 고요로 이불삼아
우주의 가장 안쪽인 안방에서
그동안 목숨을 걸고 달려오느라 힘들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꿈의 세계에서 잠드는 것으로
그 모든 것을 대신한다.
2011년 5월 10일 화요일
불기 2555년 석가탄신일(부처님 오신 날)에 빛의 세계를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