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비움에 대한 미학

청아당 2011. 5. 9. 14:51

비움에 대한 미학

 

앞뒤로 막혀있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숨통이 막혀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채우고 또 채워도

늘 가슴이 허전하다.

이삿짐을 몽땅 들어낸 빈방처럼

처음부터 없었던 손길이다.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망망대해를 걷거나

달려보아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섬에 갇혀있는 듯

너만 세월을 밟고 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들의 가슴엔 우주보다 더 큰

구멍이 뚫려있다고 말해도

하늘은 그보다 더한 상황이 많다며 묵묵부답이다.

침묵은 침묵할 때가 가장 아름답듯이

고요도 고요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비운다고 비워지면 그것은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다.

한없이 비우고 또 비워도

숲 속에 있는 바위하나조차도 들어낼 수가 없다.

움직인다는 것은

본원(本源)이 움직이기에

비운다고 비워지면

그것은 하늘에서 내린 신들이 사는 동네이거나

가상의 우주세계이다.

우리들은 비울 수도 채울 수도 없는 중간에서

하늘을 향해 원망 아닌 원망을 늘어놓으며

채우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

비움과 채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하는 것이요

하늘이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야한다.

채운다고 채워지거나

비운다고 비워지면

그것은 자연도 아니요

하늘도 아닌 것이다.

우리들 깊은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침묵과 고요가 없었다면

우리들이 서야할 자리 또한 없어진다.

그래서 하늘은 공평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든지 하늘의 품에 안길 사람들은

허공 속에 자신을 던져

명상으로 승화시킨 후 한걸음에 달려가

진리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된다.

비움은 열려있는 채움의 다른 말이다.

채움 또한 닫혀있는 비움의 다른 말이다.

비우고 채우다보면

자신의 위치가 정해지고

하늘과 연결되어져 묵언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비우지 않고 채우거나

채우지 않고 비우면

하늘의 뜻이 곧바로 전달되어져

새로운 명령체계로 움직이게 된다.

하늘은 처음부터

비움을 채워놓았거나

채움을 비워놓지 않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비워진 것처럼 느꼈을 뿐이고

채워진 것처럼 느꼈을 뿐이다.

이보다 더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하늘과 사람이 손을 잡고 움직이면

땅은 저절로

춤사위에 젖어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게 하여

편안하게 살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원하게 된다.

비움 때문에 채움이 따라나서고

채움 때문에 비움이 따라나서는

그런 장면들이 아니라

가만히 눈을 감고 서있으면

그것으로 사람의 마음이 전해지고

하늘의 마음이 전해지고

자연의 마음이 전해지게 된다.

 

2011년 5월 9일 월요일

 

비움에 대한 미학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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