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틈새
소리쳐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면
숲 속에 갇힌 묵언수행과 같다.
한길을 따라 달려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오감으로 감지되는 감각밖에 없다.
지구를 뚫고
우주의 깊은 곳을 향해 머리를 내밀어도
틈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비적인 현상들에 대해선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수없이 외쳐온 진리의 끝이지만
한번 닫힌 우주의 틈새는
산새들을 동원하여 소리쳐 불러도
귀를 닫고 눈을 감는 것으로 대신한다.
망치와 끌을 동원하여 우주의 틈새를 쪼아내도
꽉 막힌 길처럼
무한한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힐 수가 없다.
꿈속에서조차
우주의 틈새를 찾아다니며
흔들리지 않는 바람처럼 달렸건만
돌아오는 것은
고요와 침묵뿐이다.
지구를 흔들고
우주를 흔들 수 있는 것은
명상도 아니고
지혜도 아니고
발로 뛰는 묵언수행이라고 한다.
깊이 더 깊이를 외치며
우주가 만들어 논 원안에 뛰어들어
경계를 넘어보지만
한번 간 길을 되돌아 나올 땐
치매환자처럼 기억을 되살릴 수가 없다.
그리고 우주의 벽사이로 생긴 틈새를 발견해보지만
단단하게 울타리를 쳐놓은 틈새를
파괴시킬 수가 없다.
들어가는 것은 자유이지만
나오는 것은 억류이기에
함부로 드나들 수가 없다.
우리들의 기억은
수많은 우주의 틈새를 기억하고 있지만
우주의 틈새는 우리들의 기억을 하나씩 지워내며
새로운 길로 유도하고 있다.
분명 명상 속에서 발견한 틈새였건만
눈 한번 깜빡거리는 순간 억겁의 세월을 불러들여
전설로 발돋움한 신화처럼
우주의 틈새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본래부터 없었던 형상이었다고
본래부터 없었던 우주적인 현상이었다고
숨조차 죽여 가며
우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선
인간은 기억을 하지 말라고
경고 아닌 경고를 내리고 있다.
그 끝을 본다고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우주의 비밀이지만
스스로 보여줄 때까지
인내와 수행으로 벗을 삼으며
한없이 낮은 자세로 유지하라고 한다.
2011년 5월 8일 일요일
우주의 틈새를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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