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로봇의 공존시대(로봇이 그리는 미래)
한양대 한재권 교수(버지니아공대 공학박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키로봇챌린지 원격조종부분 2위 및 미국에서 실시한 로봇이 차량에 승차한 후 장애물을 통과하는 <DARPA Robotics Challeng> 대회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강연하는 도중에 시범적으로 물을 마신다. 결코 목이 타서 마시는 물이 아니라고 한다. 보지도 않고 손으로 물컵을 잡은 후 물 한 모금을 마신 것이다. 놀라운 사실이지 않느냐며 참석자에게 되묻는다.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다. 다들 지금껏 그렇게 해온 동작이라 새삼스럽지 않다는 반응들이다.
이 동작을 로봇에게 시킨다면 재앙이 벌어진다고 한다.
먼저 물에 담긴 컵부터 스캔하여 이것이 물인지를 알아야하고 물이라면 컵을 들어 올려야 하는데 어느 선까지 올려야하는지 주춤거린다고 한다. 더구나 컵을 어느 위치에 놓아야하는지를 모르면 물컵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고 한다.
동작 하나하나가 수학적으로 계산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거기에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있어야하고 다양한 과학적 접목이 시도되어져야만 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인간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로봇은 쉽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인간은 자율적으로 스스로 인지하여 힘을 조절해가며 반응해내지만 로봇은 시키는 것만 할 줄 안다고 한다.
알파고가 바둑계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해 보이지만 아직은 인간의 전반적인 기능들을 모두 다 섭렵하려면 갈 길이 먼 것이 로봇의 길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로봇 옆에 가려면 법적으로 제한이 있었다고 한다. 로봇이 힘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해를 입을 수 있기에 전원을 끄거나 안전한 펜스를 설치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은 힘을 조절할 줄 아는 인공지능로봇이 만들어져 있어 법률적으로 옆에 가는 일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로봇이 차를 운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차에 올라타는 것도 쉽지 않지만 차에서 내리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설령 차에 올라타서 차를 운행한다고 해도 장애물에 의해 조금만 유격이 생기면 차안에서 여기저기 부딪혀 난리가 난다고 한다. 차에서 하차할 때쯤에는 로봇의 팔이 꺾이거나 온몸이 온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난다고 한다. 인간은 쉽게 승차하여 운행한 후 하차하는 일이 간단하지만 로봇은 수학적으로 고도의 프로그램이 형성되어져 있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키로봇 같은 경우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이 깃발을 인식하는 일이라고 한다. 인간은 깃발을 쉽게 알아보지만 로봇이 깃발을 알아보려면 1만~10만개 이상의 데이터를 입력하여 학습시켜야만 겨우 인식한다고 한다. 그것도 카메라로 찍어서 빅데이터화 시켜 놓은 상태에서 말하고 있으니 로봇이 가야할 길은 생각보다 멀고도 험난한 길이라고 한다.
스키로봇이 경주할 때 깃발을 인식하지 못하면 펜스 옆으로 빠져나가 산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과거의 로봇은 매우 위험한 존재였지만 현재의 로봇은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부분적으로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로봇뿐만 아니라 자율자행차 등이 완전체가 되려면 융복합시대가 도래해야만 가능할 것 같다. 과학과 의학 그리고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기계가 하지 못하는 감성은 인간이 대신해야하고 인간이 꺼리는 일은 로봇이 대신하는 것으로 휴먼-로봇이 상생하거나 대화형으로 손발을 맞춰나간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결코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좀 더 미래시대에서는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위험을 감수한 상황들이 많다보니 서로에게 장단점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시대에 따라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더 이상의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험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을 감수하거나 인내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인간은 자연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를 지니고 있기에 신의 전유물로 통하던 과거와는 많이 다른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생과 화합은 어디서든 필요한 법이다. 이제는 인간과 기계가 서로 융복합시대를 열어나가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가거나 껴안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우주심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줄곧 강조해온 말인가 보다. 마치 살아 숨쉬는 말이 우주심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21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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