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변수의 달인이다 – 때와 운명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다 갔나싶으면 또다시 가야하는 길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래도 처음 출발보다는 낫기에 달릴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 달려야한다.
시작과 끝은 정해져 있지만 그 과정이 험난한 경우가 많다.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듯이 한번 시작한 것은 끝을 보아야만 안심을 할 수 있기에 그 과정이 힘들어도 아니 그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닥친다할지라도 끝을 보아야하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천천히 달려야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빨리 달려야할 때가 있다. 이것을 우리는 때와 운명이라고 명명한다.
때는 시의 적절하게 흘러가는 것이고 운명은 정해진 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때가 곧 운명이 될 수도 있고 운명이 때가 될 수도 있다. 때를 놓치면 운명을 놓치는 경우가 생겨나고 운명을 놓치면 때를 잃을 수도 있다.
한번 놓친 때는 다시는 붙잡을 수 없기에 곧 운명이 될 수 있고 운명은 정해진 길을 걷다보니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어떤 때는 때를 놓친 것이 운명이 될 수도 있고 운명 때문에 때를 놓친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길을 가다가도 갈림길에서 뒤틀린 삶을 살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장벽에 막혀 되돌아가야하는 길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은 말 그대로 변수가 많다보니 언제 어느 때 장애물이 나타날지 모르기에 이러한 변수는 더욱 심하게 곡선을 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좋은 기운을 받아들인다하여도 그 속에서조차 불행은 발생할 수 있고 아무리 나쁜 기운을 받아들인다하여도 그 속에서조차 행복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존하는 선악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하고 있어 희비가 엇갈리는 묘한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한가하게 잘 달리는 바람이라도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면 거대한 태풍으로 변한다. 산과 바다를 뒤흔드는 파도와 나무들을 잡아채며 회오리바람처럼 하늘을 향해 달리기 때문이다.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그런 바람이 아니다. 언제 어느 때 성난 파도처럼 일어설지 모르기에 숨죽이며 함부로 나서지도 못한다. 그래도 바람은 바람이다. 일상에서 서성이는 바람이기에 손으로 낚아채기도 하고 발아래에서 맴돌며 작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삶은 바람과 많이 닮았다. 단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바람이기에 촉각을 곤두세워 감시망을 세워야하기 때문이다. 바람은 네트워크가 잘 형성되어져 있어 한번 불기시작하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삶은 변수의 달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람은 많은 이름들을 갖고 종횡무진으로 다닌다. 바람이 멈추면 더 이상의 바람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멈춘 그 자리에서조차 바람은 또 다른 곳을 향해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붙인 이름만큼이나 바람의 이름도 매일 새로 새겨진다. 삶의 흔적 따라 역사가 새겨지듯이 바람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선명하게 찍혀가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삶과 바람 이 모든 것들은 우주의 생명력이 살아 숨쉬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변수는 예측하기가 힘들기에 더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잘 나가다가도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로 인해 멈춰야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 나아지려면 바위로 억누르는 힘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그렇지는 않겠지만 예상을 깨는 것이 삶의 변수이다 보니 단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묵묵히 가고 또 가다보면 언젠가는 그 끝이 보이겠지만 힘이 든 것만은 사실이다.
<댓글 & 답변>
청아당
2020.02.17 17:55
순탄하게 가다가도 예기치 않게 막히는 경우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나쁠 때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을 때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또는 기타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때와 운명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를 잘 피해서 행운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그 때를 잘못 만나서 불행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행불행을 떠나서 시작한 일은 끝을 맺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록 험난한 과정이지만 조금씩이나마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에 힘을 얻으며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봅니다.
마무리가 되어가나 싶으면 또 다른 변수가 앞을 가로막아 시간이 지연되기나 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다보면 완성이라는 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묵묵히 한걸음씩 옮겨 놓고자 합니다.
청아당
2020.02.19 23:45
꼭 일이 성사될만하면 고의적으로 방해하고자 나타나는 변수들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삶은 변화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삶은 변수의 달인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나아가려고 해도 나아가 지지 않는 그 어떤 것들이 우리들의 삶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신은 분명 존재하지만 결코 우리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그래도 계속 두들기다 보면 언젠가는 의미 있는 일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보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명상에 깊이 들어가다 보면 느끼는 일이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우주를 움직이는 작용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보여줄 수 있는 것만 보여주고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혹자는 천기누설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분명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 또는 우주신인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님 말씀처럼 결국은 인간의 노력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이 되었든 힘이 되었든 노력이라는 단어가 살아 숨쉴 때 그나마 하늘을 감동시켜 조금이나마 그 혜택을 입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모든 혜택을 다 받고 살아가고 있는듯한 재벌이나 부유층일지라도 남모르는 고충이 따르고 있듯이 어떤 면에서는 비록 고통과 시련이 줄지어 나타나는 삶이 행복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삶이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 것을 보면 고난과 시련이라는 경중을 떠나서 그나마 중심을 잡으며 살아갈 수 있어 좋을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이자 우주 궁극의 문제이지만 보여줄 수만 있다면 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자연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2020년 2월 16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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