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시여, 효심을 굽어살피소서!
깊은 산속을 헤매다 운무에 가린 낭떠러지 위에 섰다.
갑자기 구름 사이로 푸른빛이 빗발치는 섬광이 쏟아져 내렸다. 낭떠러지 아래로 마을이 보이는데 이처럼 눈부시고 맑고 투명한 것은 처음이었다.
상서로운 기운이 모인 가운데 기분 좋은 새벽꿈이었다.
통증의 미학은 언제 끝날 것인가?
정신이 혼미하고 죽는 날까지 가져가야 할 극심한 통증. 모두의 꿈은 통증을 없애는 일일 것이다. 통증은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혼미한 정신 속을 파고들어 와 질병으로 연결되고 질병은 고통으로 남는다.
고통이 고통이 아닌 것은 고통 속에서조차 삶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눈을 뜨면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고 눈을 감아도 부는 바람 때문에 그렇다.
바람은 늘 분다. 봄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불기도 하고 너무 더운 여름 볕을 식히기 위해서도 분다. 그리고 가을에는 풍성한 풍작을 위해 불기도 하고 겨울을 차갑게 하기 위해 불기도 한다.
바람이 바람으로 부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삶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그 어느 곳에서든 안부를 묻는 습관이 있어서이다. 바람이 바람으로 남는 이유이다.
하늘을 움직일 정성이 없다면 하나의 상념으로 남을 것이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데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 효심이다. 경의를 표할 만큼 지극한 효심이다.
하늘이시여, 효심을 굽어살피소서!
스스로 일어서도록 하소서!
고통과 시련이 줄지어 다가오더라도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되겠는가? 삶에 대한 중심철학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정도를 걷고자 자신의 고통보다는 남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고 삶을 초월하여 존재하고자 하는 마음은 효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른한 삶보다는 고통 속에서 행복을 맛보게 하소서!
고통이 곧 행복이 되게 하소서!
2020년 4월 14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오늘 올린 詩』 > 『오늘 올린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라 쓰고 ‘그리움’이라 읽는다 (0) | 2020.04.17 |
---|---|
바람은 몸으로 기억한다 (0) | 2020.04.16 |
시간으로 흔들다 (0) | 2020.04.03 |
삶은 변수의 달인이다 – 때와 운명 (0) | 2020.02.16 |
인간-로봇의 공존시대(로봇이 그리는 미래) (0) | 2020.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