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있는 것은 바람이 아니다
홀로 서있는 것은 바람이 아니다.
우리들의 영혼이 흩어지고
바람이 흩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흩어진 형상은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는 볼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까닭이다.
그 누가 우리들의 형상을 복원할 수 있겠는가?
그 누가 우리들의 형상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
이승에서 가족으로 얽힌 사연만으로는
견뎌내기 힘든 일이기에
그 본원을 추적하다보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숱한 사연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것처럼
시인이 되었다가
걸인이 되었다가
철학자가 되었다가
과학자가 되었다가
대통령이 되었다하여도
그 시작과 끝은
늘
한결같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 본래의 모습은
우주에서 시작하여
우주에서 끝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한번 떠난 바람은 되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우리들의 삶과 죽음도
한번 흩어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형상으로 흩어지고 만다.
아!
이 얼마나 서글픈 이야기인가?
지금 서있는 그 자리가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 꿈을 꾸었는데
다시는 볼 수 없는
우주의 형상으로 되돌아간다하니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또 있겠는가?
그것도 그것이지만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바람과 구름이기에
그 누가 산과 바다를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바람이 달려봐야 얼마나 달릴 수 있겠는가?
해와 달이 뜬다하여 얼마나 버티겠는가?
그렇지만
바람은 소리 없이 달려가는 멋이 있어야하고
구름은 빈 여백을 채워나가는 멋이 있어야한다.
그러고 보면
삶을 위해 태어났건만
죽음을 위해 태어났건만
본향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홀로 우주 속에 갇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면
그것처럼 난감한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영혼은
우주의 바람을 타며 달려간다고 했다.
그 끝이 아무리 멀고 험난하다하여도
그 시작이 아무리 가깝고 쉽다하여도
우리들의 비밀은
우리들끼리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람이 아니기에 그렇고
그것은 구름이 아니기에 그렇다.
우리들 곁에는
늘
보이지 않는 손이 있기에 그렇고
우리들 곁에는
더 이상 달려가서는 안 되는 삶과 죽음이 있기에 그렇다.
2016년 3월 5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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