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東九陵) - 세계유산 조선왕릉(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역사적인 족적은
우리들을 놀라게 하거나
600년 세월로 달려와 위압감을 주기도 한다.
서쪽엔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에 안장된 서오릉이 있다면
동쪽엔 구리시 동구릉로에 안장된 동구릉이 있다.
서오릉엔 능이 아닌 희빈 장옥정 대빈묘가 제19대 숙종 명릉의 곁에 묻혀있고
동구릉엔 태종이 태조의 고향 함경도 영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 푸른 잔디 대신 봉분에 심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봉분 중에서 참으로 희귀한 광경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세자와 관련된 영조, 임진왜란과 관련된 선조, 인조반정을 비롯하여 권력분쟁으로 인한 병자호란과 관련된 인조 등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에 있다는 것은 사후에도 여전히 아름답지 못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영웅이 탄생하거나 충직한 신하가 곁에 있었다는 것은 하늘의 뜻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죽어서조차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인연이 깊을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왕도 하늘이 내린 사람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듯이
왕릉 또한 하늘이 맺어준 인연에 따라 묻힐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동구릉 안내책자에 기록된 내용을 발췌해보면 다음과 같다.
519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조상에 대한 존경과 숭모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 조선은 역대 왕과 왕비의 능을 엄격히 관리했다. 그리하여 42기 능 어느 하나도 훼손되거나 인멸되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완전하게 보존되었다.
조선 왕릉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600여 년 전의 제례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의 능으로 쓰이기 시작한 뒤 조선시대를 통하여 가족 능을 이루고 있는 왕릉군이다. 동구릉이란 도성의 동쪽에 있는 9개의 능이란 의미로, 능이 생길 때마다 동오릉ㆍ동칠릉이라 불렀는데 1855년(철종 6)에 수릉이 옮겨진 이후 동구릉으로 굳어졌다.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을 주축으로 펼쳐진 아홉 기 안에는
왕들의 무덤이 타원형을 그려가며 서있다.
현릉(顯陵)은 조선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으로
목릉(穆陵)은 조선 제14대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능으로
휘릉(徽陵)은 조선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으로
숭릉(崇陵)은 조선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으로
혜릉(惠陵)은 조선 제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의 능으로
원릉(元陵)은 조선 제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으로
경릉(景陵)은 조선 제24대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능으로
수릉(綏陵)은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능으로
문조(文祖 : 익종(翼宗) 1809~1830)는 제23대 순조의 아들로 효명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하였다. 1834년(순조 34)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익종으로 추대되고 고종 때 문조로 추존되었다.
신정왕후(神貞王后 : 1808~1890)는 풍은 부원군 조만영의 딸로 1819(순조 19) 효명세자(문조)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1834년 부군인 효명세자가 익종으로 추존되자 왕대비가 되었다.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대원군의 차남 고종을 왕위에 올린 후 수렴청정 하였다. 83세까지 천수를 누리며 조선 후기 정국을 주도했다.
무덤이나 왕릉을 대하다보면
죽음 뒤에 또 다른 죽음이 존재하고
죽음 뒤에 또 다른 삶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그 끝에 이르면 또 다른 세계가 보이는 것처럼
이름 없는 일반 묘이든
한 국가를 책임졌던 왕릉이든
여름의 태양을 받아 윤택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봉분이 있다면
죽음너머에 서있는 새로운 생명력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의 혈 자리에 서있는 왕이나 왕비가 안장되어있다면
그 기운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 여력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능과 능 사이에 수로가 흐르는 곳이라면
그 여운은 무더운 여름을 식히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죽어서조차 엄숙함을 유지해야하는 정숙한 곳이기에
시끄럽지 않게 흐르고 있는 물소리가 소나무와 어울리며
서로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손을 잡으며
평상에 누워보기도 하고
명상에 젖어보기도 하고
임금이 선대왕의 왕릉을 참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던 길
어도(御道)를 걸어보기도 하고
숲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오솔길을 걸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저 옆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있는 사람들이
역사를 알아야한다며
60~70대로 보이는 친구들이 함께 손을 잡고 걷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예나지금이나 왕들의 산책로를
왕들만이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함께 산책을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3년 7월 5일 금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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