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온 세월보다는 달려가야 할 세월이 더 두려운 것은
오가는 바람은 늘 분다.
고난과 시련이라는 바람이 수없이 겹쳐온
지난 세월은 그래도 견딜만하다.
앞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대해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자신이 없어서이다.
달려온 세월만큼 쌓이는 것이 경륜이라고는 하지만
경륜으로 해결할 수 없는 또 다른 삶이 중첩해서 쌓여있기 때문이다.
바람은 한번 불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시는 뒤 돌아보지 않는 것이 바람이기에
바람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롭게 불어오는 바람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에 두려움부터 앞선다.
삶이란 것은 참으로 묘하다.
긴장과 이완의 연속 선상에서 단 한시도 편할 날을 주지 않는다.
혹시라도 자만심으로 인해 방심할까 봐
세심하게 배려한 조물주의 뜻도 한몫하겠지만
삶이 쉬우면 대충 살아갈까 봐
더욱 세밀하게 살피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것 같다.
두꺼운 삶을 얇게 펴나가는 과정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것 같다.
그리고 두꺼운 삶(젊은 시절)일 때는 덜 두렵다가
얇은 삶(노년 시절)일수록 더욱 두려워지는 것 같다.
세월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아니 경륜을 따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유가 생겨나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나이를 먹은 만큼 더 어려운 역경과 고난이 주어지고 있다.
더 쉽고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굳이 돌려보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이에 따라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의 한계를 측정하기 위해서이다.
보기에는 편안하게 보여도
앞으로 달려가야 할 길은 멀기에
그 길은 예측할 수가 없다.
시작과 끝은 늘 한결같은 끝맺음인데
실상은 하나인 듯 둘로 구분되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하나인데
속으로 들어가 보면 둘인 셈이다.
하나가 되었던?
둘이 되었던?
삶이 주어지는 동안은 그래도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점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아니 아름답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에
숭고하고 고귀하기까지 하다.
생은 정면으로 비바람을 맞이해야 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행사이기에
그 길은 더욱 존엄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할지라도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26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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