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 선연과 악연
만나고 헤어짐의 반복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다가 어디에서 끝이 나는가?
만남이 좋은 경우도 있지만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좋은 인연(善緣)이라 부른다.
우리는 이것을 좋지 못한 인연(惡緣)이라 부른다.
선연(善緣)과 악연(惡緣)은
둥근 원 안에서 한 몸으로 돌고 도니
이것을 인연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선연이든 악연이든
다 인연이라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선연을 더 많이 맺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악연을 더 많이 맺을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연결력에 의해 선연도 되었다가 악연도 되어진다.
이는 행복과 불행의 반복이자
연결 선상에 놓인 삶의 이정표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선연을 선호하지 않겠는가?
누가 악연을 좋아하겠는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이듯
주어진 행실에 따라
아니 삶의 이력에 따라
맺어지는 것이 선연과 악연이다.
이 생의 처음부터 악연으로 맺어질 수도 있고
이 생의 마지막에 선연으로 맺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인연의 인과관계가 되는가?
다시 말하면 연결고리는 무엇인가?
삶의 행적이다.
물론 자신의 의지와는 별도로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해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흘러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뒤돌아보면
선과 악에서 고민하며 살아온 세월 속에
자신의 과오가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숨 막히도록 힘든 과거의 생에서
선택에 대한 과오가 낳은 인연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오고 갈 때 들고 갈 것이 없는 것처럼
생의 마지막에도 들고 갈 것은 없다.
호흡이 끊기면
한 줌 흙으로 되돌아가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멸하니
바람이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그 바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물이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그 물을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인연 따라 생성 소멸하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위한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고 되돌아가는 길에
허공에 새길 수 있는 흔적 하나쯤은
남겨두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그 이름하여 선연이 될 수도 있고
그 이름하여 악연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이 둘이 하나로 섞여 선명하게 남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삶은 허공에서 맴돌며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선연이든 악연이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렇게 돌기를 또다시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연의 또 다른 이름처럼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 인과론이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19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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