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휴정(晩休亭)
해 질 무렵 정자에서 쉬는 맛도 아름다울 것 같다.
숲과 새소리가 들리는 폭포수를 배경으로
긴 통나무다리를 놓고 건너는 맛도 좋을 것 같다.
폭포수가 지나가는 산비탈에 지어진 만휴정(晩休亭)이다.
계곡과 산 사이에 두 개의 폭포와 바위가 있어
만휴정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가 더욱 아늑하다.
정자에 담장을 지은 것이 좀 특이하다.
정자라기보다는 원룸처럼 생활하기 위해 지어진 아담한 정자인 것 같다.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은
청백리로 뽑힐 만큼 청렴한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연산군의 폭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낙향하여 지은 것이 만휴정이다.
독서와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자리인 것 같다.
거기에다 명상까지 즐길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정자이기도 하다.
널따란 바위까지 겸상처럼 갖추어져 있으니
물소리, 새소리, 나무 소리에 취해
바람과 구름을 벗 삼아 詩를 읊고 노래한다면
더없이 좋을 빼어난 경관을 갖추고 있다.
첫 번째 폭포인 용소골을 향해 비스듬한 바위면 위에 새겨져 있는 글귀가 눈에 띈다.
吾家無寶物(오가무보물) : 우리 집에 보물은 없다
寶物惟淸白(보물유청백) : 보물은 청백이다
“우리 집엔 보물은 없지만, 보물로 여기는 것은 청렴과 결백뿐이라네”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에 등장한 이후 많은 인파로 붐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탁족을 즐기는 멋 또한 괜찮다고 본다.
연인들의 성지로 꼽아도 좋을 만큼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다.
도착한 후 만휴정과 폭포 주변을 돌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간다.
말 그대로 해 질 무렵까지 정자에서 푹 쉬었다 가는 느낌이 든다.
만휴정으로 올라오는 입구엔 묵계서원(默溪書院)이 있어 홀로 외롭지 않을 것 같다.
2019년 10월 9일 수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
출처 :
만휴정(晩休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3호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이 건물은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조선 연산군(燕山君) 6년(1500)에 지은 정자이다. 김계행은 문신으로 청백리에 뽑혔던 분이다. 안동 소산에서 태어나 성균관에 입학하여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과 교유하였다. 50세가 넘어 과거에 급제한 선생은 대사성(大司成), 대사간(大司諫), 홍문관(弘文館) 부제학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 연산군의 폭정을 만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이 정자를 짓고 ‘쌍청헌’이라 하였다가 나중에 ‘만휴정’으로 바꾸었다.
만휴정은 보백당 김계행(寶白堂 金係行)공의 정자이다.1500년(연산군 6)에 건립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중수를 거치면서 변형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부만 조선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김계행은 조선 초의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연산군 폭정을 만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땅으로 낙향했다. 그 후 설못(현 소산2리)가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으나 길 옆인 관계로 더욱 조용한 장소를 찾아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길안면 묵계서원에서 개울건너 산곡 간에 들어서면 웅장한 계곡에 반석위로 폭포를 동반한 곡간수(谷澗水)가 흐르는 절경을 이루는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남향으로 자리한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앞쪽은 3면이 개방된 누마루 형식으로 개방하여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누각 주위 3면에는 계자각 난간을 돌렸다. 전면 쪽을 고스란히 개방하여 툇마루로 구성한 예는 흔하지 않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八作)으로 처마앙곡과 안허리가 매우 날카로워 정자의 맛을 더욱 살리고 있다.
미스터션사인
신미양요(1871년) 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 미스터션사인 촬영장소입니다.
만휴정은 조선 중기 보백당 김계행 선생이 홍문관 주제학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 연산군의 폭정을 만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곳에 정자를 지어 독서와 사색을 하던 곳으로 특히 청백리로 알려져 있다.
출연진 : 이병헌, 김태리, 유연석, 김연정, 변요한 등
묵계서원(默溪書院)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9호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이 서원은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과 응계(凝溪) 옥고(玉沽)를 봉향하는 곳으로 조선 숙종(肅宗) 13년(1687)에 처음 건립되었다. 보백당은 성종(成宗) 때 대제학을 지냈고 응계는 세종(世宗) 때 사헌부 장령을 지냈다.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는데, 강당과 읍청루, 진덕문, 동재, 사당을 복원하고 복설하였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3칸에 마루를 두었고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왼쪽에는 정면 6칸, 측면 5칸의 ‘口’ 자형 주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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