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관법(內觀法) - 내관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내관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그 다음 단계는 어떻게 진행되어지는가?
내관법의 목적은 모든 우주적인 현상들을 경험한 후 고요의 가장 안쪽인 궁극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이다. 소위 깨달음의 세계라 말하는 지고지순의 세계이자 더 이상 나아갈 데도 물러설 데도 없는 고요의 극점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온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지이며 고요의 극점을 찾아들어가는 경지이다.
내관법이 필요한 것은 기를 운용한 호흡법에 따라 심파를 최대한 가라앉히고 고요의 극점을 향해 더욱 깊은 침묵에 드는 일이다.
안으로 안으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상황까지 도달해야만 지극함에 이를 수 있고 지극함에 이르러서야 멈출 줄 아는 지혜가 생겨나기에 내관법은 고요의 끝점을 연결해주는 도화선 역할을 해준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내관법의 완성은 침묵을 흔들 줄 아는 직관력과 집중력으로 이루어지고 고요의 극점을 찾아들어가는 것처럼 모든 우주적인 현상들을 경험하고 그 끝에 이르러야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흔들리지 않는 차원을 떠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우주적인 현상들을 경험하고 기가 빛으로 빛이 초고밀도의 단으로 형성된 상태에서 고요의 가장 안쪽인 극점에 도달하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우주적인 현상이나 온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지라고 하면 참으로 요원하고 어려운 세계로만 인식되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련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상태에 들게 되는 것이 공통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어쩌면 수련초기에도 이러한 세계는 경험할 수 있지만 그 깊이 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차별화를 두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면 기의 퇴적층에 따라 감동하는 느낌이 다르게 전해오듯이 기의 퇴적층이 보다 농밀해지고 기가 빛으로 빛이 초고밀도의 단을 형성하면서 가장 안쪽에 자리하게 되면 확연히 느끼게 되는 그런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면 태양을 둘러싸고 있는 홍염을 지나 가장 안쪽인 백색의 밝은 빛을 뜻하는 것이 고요의 극점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기의 퇴적층에 따라 수련 중에 자연스럽게 와 닿는 경험적 현상이기도 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편의 詩를 감상해보자.
고요의 극점이란? - 청아당 엄 상 호 詩(2018. 11. 30.)
평범을 깨뜨리면 신비가 쏟아져 나오듯이
단순히 진공성에 갇힌 고요의 극점이 아니다.
진공도
작은 의미의 진공이 있고
큰 의미의 진공이 있다.
어떤 특정된 진공성이 아니고
진공성으로 얼어붙은 우주를 비롯하여
우주의 가장 안쪽이 바로 고요의 극점이다.
온 우주가 빛으로 충만하고
그 안으로 파고든 마지막 관문이
고요의 극점이다.
별안간 섬광처럼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고
진공성인 고요의 극점은
깨달음의 세계를 뛰어넘은 초월적인 현상을 말한다.
물론 명상이나 선을 통해서도 이룰 수는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고요의 극점은
기의 퇴적층과도 같은
보다 단단하고 깊은 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초월적인 현상을 말하고 있다.
이곳은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시·공간을 초월하기도 하며
자기성과 전기성이 충만한 곳을 의미하기도 하고
전자기성을 초월하기도 하며
운명과 숙명을 의미하기도 하고
운명과 숙명을 초월한 곳이기도 하다.
시작과 끝을 의미하기도 하고
시작과 끝을 초월한 곳이기도 하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우주만이 지닌
가장 자유로운 공간이자
벽조차도 경계가 사라진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논의 자체가 필요 없는
그야말로 태초 이전의 공간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속에서
신의 간섭을 벗어나 홀가분하게 얼어붙어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공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움직임조차 숨을 끊고
고요함마저 숨을 멎는 곳이
바로 고요의 극점이다.
2019년 7월 9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