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유달산(儒達山 228m)
노적봉 대학루(待鶴樓)에서
삼학도(三鶴島)에 건립된 “김대중 기념관”을 내려다보면
목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하나로 연결되어져
산책하기 좋은 공원으로 그 위상이 높아져 있다
날개를 펴면 학익진(鶴翼陣)이 연상될 만큼
세 개의 학섬은 목포의 상징이자 예술혼으로써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노령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천개의 섬 다도해를 껴안고 있는 유달산의 기상은
목포의 혼이자 예향의 마을로써 자리 잡고 있어
삼학도와 함께
유달산의 기개가 강하게 느껴진다
산악지대라 도로의 폭이 좁은 것이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곡선의 미를 살려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있기도 하다
좀 더 넓은 들을 향해
영산강보를 가로질러 무안을 향하다보면
가슴이 트이는 경쾌함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노적봉(盧積峯) 예술 공원을 비롯하여
영달산인 유달산 노적봉 다산나무(多産木)가
출산을 앞둔
여성 특유의 자세로 서있는 것이 인상 깊게 남는다
특히 음기가 발달하여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어
밤마다 여인의 몸으로 바위에 부딪히며 음기를 전해 받고 있기도 하다
유달산(儒達山 228.3m)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있고
노적봉 뒤편으론 새천년을 맞이하여
새천년시민의종(市民鐘閣)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옛 목포기상대 터엔
근대기상 100주년(1904년 3월~2004년 3월 기상청)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그러고 보면
목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유달산과 노적봉, 삼학도와 목포항일 것이다
특히 노적봉은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전술과 강강술래의 전설이 담긴 곳이다
그리고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의 관계일 것이다
“해양관광 중심도시 목포와 김대중”
“민주주의 수호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국민의 정부(1998년 ~ 2003년, 제6공화국의 세 번째 정부)인
대한민국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개관일 : 2013년 6월 15일 위치 : 전남 목포시 삼학로 92번길 98번지(산정동 1454번지))” 을 시작으로
金大中 前 대통령(1924년 1월 6일(전남 신안군) ~ 2009년 8월 18일(향년 85세))의 숨결이
곳곳에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상과 철학을 살펴보면
‘민주주의․인권․평화’, ‘화해와 용서’
‘행동하는 양심’
‘서생적(書生的) 문제의식과 상인적(商人的) 현실감각’ 으로
이시대의 화두를 풀어내기 위해
온몸을 던져 활동한 정치가이자 대통령으로써
국민과 함께
국난극복의 대상
외환위기(Currency Crisis , 外換危機. 발생 : 1997년 11월, 종결 : 2001년 8월 23일)인
국제통화기금(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졸업시킨 분이기도 하다
목포와 무안의 경계점인 목포시 옥암동을 사이에 두고
전남도청(전남 무안군 삼향읍 오룡길 1)과
전남교육청(전남 무안군 삼향읍 어진누리길 10(남악리 1457번지)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또한
국립 목포해양대학 옆으론 목포대교가 설치되어져있고
목포대교 너머론
목포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현대삼호중공업(전남 영암군 삼호읍 대불로 93)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목포항구 쪽엔 바다분수가 설치되어져 있어
밤에는 음악에 맞춰 특이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2015년 4월 기준으로 목포시 인구 현황은 238,465명이다
점심식사는
고창 선운사 부근에 있는 청림정금자할매집에서 풍천장어를 시켜먹었다
항구 쪽엔 각종 카페를 비롯하여 수산시장 및 재래시장이 자리하고 있고
해촌 식당(海村食堂)은 바지락 회무침으로 유명하다
번호표를 받은 후 10분~3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바닷길과 만나는 영산강보(영산강하굿둑)를 바라보거나 산책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뜻 모를 즐거움이 솟아남을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전원주택처럼 주거환경이 좋은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냈다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조카사위가 직접 이불을 펴주며 잠자리에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었다
조카(연구원 및 약사)와 조카사위(교수)랑
고창 청보리밭, 고창 선운사, 목포 유달산을 함께 돌며
지낸 하루였지만 뜻 깊은 시간을 가진 것 같다
둘 다 국내 S대를 졸업하였으며
한사람은 교수가 되었고
또 한사람은 연구원으로 3년간 근무하다가
뜻한바가 있어 4년을 더 공부한 후 약사로 거듭 태어났다
현재는 남편 따라 내려와 맞벌이하며 목포에서 거주하고 있다
오늘은 조카사위 생일이라 다함께 촛불을 끄며 조촐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목포시내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유달산 대학루에서
조카사위가 자진해서
목포의 전경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먼저 현장답사를 끝낸 후
유달산 대학루에서 해설을 들으니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목포시(木浦市)에 의하면
2000년 10월 새천년 시민의 종 종각(시민종각 대통령 김대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외부로 드러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실제로 이 다산나무를 쳐다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그 영향으로 인근지역은 유난히 출산율이 높았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관광객들 사이에는 여자나무(여인목)로 불려지고 있으나 오래전부터 다산목으로 전해져 오고 있으며
수종은 팽나무로 150년이 넘은 어미나무의 뿌리에서 싹이 나와 성장하여 현재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유달산에는 다양한 문화유적이 산재해있다
영달산이라 불리던 목포의 상징 유달산은 노령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 끝인 산이다
영혼이 심판을 받는다하여 이름 붙여진 해발 228m의 일등바위(율동바위)와 심판받은 영혼이 이동한다하여 이름 지어진 이등바위(이동바위)로 나눠진 유달산은 갖가지 기암괴석과 병풍처럼 솟아오른 기암괴석이 첩첩하며 그 옛날 소식을 전하기 위해 봉수를 올렸던 봉수대와 달성사, 반야사 등의 전통사찰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일몰이나 목포항의 야경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노적봉을 비롯하여 노적봉 다산나무, 새천년시민종각, 노적봉 큰바위 얼굴, 충무공이순신장군동상, 오포대, 대학루, 목포의 눈물 노래비, 달선각, 유선각, 관운각, 마당바위, 일등바위, 소요정, 이등바위, 삼등바위, 라이온스동산, 목포시사, 달성사, 달성공원, 특정자생식물원, 난전시관, 조각공원, 어민동산, 봉후샘, 낙조대, 아리랑고개, 수원지뚝방길, 학암사 등이 길을 막고 서있어 꽤 다양한 문화가 유달산 둘레길로 연결되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위키 백과사전에 의하면
목포대교(木浦大橋, Mokpo Bridge)는
대한민국 목포시에 있는 국도 제1호선의 자동차 전용도로 교량으로, 죽교동과 유달동의 고하도, 허사도를 연결한다. 목포신외항과 서해안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목포의 관문으로 2012년 6월 29일에 개통된 다리이다. 대불산업단지 - 고하도, 허사도(목포신외항) - 목포대교 - 목포IC - 죽림 분기점 - 남악IC - 서영암IC - 대불산업단지로 구성된 사실상 목포외곽순환도로의 한 주축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삼학도(三鶴島)
지금은 연륙되어 목포시 영해동에 속한다. 본래 3개의 섬이었으나, 1968~73년에 연륙공사와 간척공사를 실시하여 육지화 되었다. 3마리의 학이 내려앉아 섬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과거에는 목포진의 시지로 이곳에서 목포진에 땔나무를 제공했다. 섬의 최고지점은 73m이었다. 지금은 해운항만청, 해양경찰대, 법무부 출입국 관리사무소 등의 정부기관과 한국냉동·호남제분 등의 공장이 들어서 있으며, 섬 북단의 갓바위 일대는 시민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많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또한 바닷가에는 인위적으로 모래를 옮겨 백사장을 만들어 해수욕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호남선의 지선이 목포역에서 삼학도 해운항만청까지 연결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삼학도(三鶴島)
섬의 모습이 학처럼 보여 삼학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섬에는 무사와 그를 사랑했던 세 처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세 처녀가 그를 기다리다 학이 되었으나, 이를 알지 못한 무사가 쏜 화살을 맞아 모두 죽게 되었고, 학이 떨어진 자리에 세 개의 섬이 솟아나 삼학도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현재 삼학도 자리에는 항만청·해양경찰대·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의 정부기관과 한국냉동·호남제분 등의 기업들이 있으며 1,5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삼학도의 끝자락에는 목포외항이 건설되었으며, 삼학도에서부터 전남도청 일대까지는 1999년에 조성된 하당신시가지가 자리하고 있다.
본래 목포진의 시지(柴地)로서 목포진에 땔감나무를 제공하던 섬이었다. 유달산과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명승지였으나 지금은 옛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목포 문화관광,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의하면
삼학도(三鶴島)
* 목포의 역사와 전설이 있는 섬, 삼학도 *
지금은 매립되어 육지가 되었으나 삼학도는 유달산과 함께 목포 사람들의 꿈이었고 미래였다. 망망대해로 낭군을 떠나보낸 아낙들의 외로움이 녹아있고, 고깃배를 기다리는 상인들의 희망이 달려있으며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건너는 망자들의 한이 녹아있는 곳이다. 이렇듯 삼학도는 목포사람들의 희로애락과 함께 산 시민의 서러움이 엉켜있는 곳이다. 1872년 ‘무안목포진’에 표시된 삼학가 처음으로 지도에 그려졌다. 이유는 군사요충지 목포진은 세종 1439년 설치되었고, 성이 완성된 것은 1502년. 목포진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땔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삼학도는 땔나무를 제공했던 중요한 장소였다. 이러한 중요한 삼학도가 1895년 일본인에게 불법으로 판매된 사건이 있었다. 일본인 삽곡용랑은 옛 목포 관리 ‘김득추’를 이용해서 삼학도를 매입했다. 개항 2년 전 (개항: 1897년 )인데, 개항 후 밝혀져 처벌하고 환수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결국 1910년 한일합방이 되면서 삼학도와 고하도는 일본인 땅이 되고 말았는데 이 사건은 ‘삼학도 토지암매사건’으로 일본인이 목포 토지를 침탈한 대표적인 예이다.
* 세 마리 학의 섬, 삼학도의 전설과 유래 *
삼학도에는 섬의 내력을 밝히는 수십 개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는데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 유달산에 한 젊은 장수가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는데, 그 늠름한 기개에 반해 마을의 세 처녀가 수시로 드나들어서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젊은 무사는 세 처녀를 불러 "나 역시 그대들을 사랑하나, 공부에 방해가 되니 공부가 끝날 때까지 이곳을 떠나 다른 섬에서 기다려 주오"하고 청했다. 그 말대로 가서 기다리던 세 처녀는 무사를 기다리다 그리움에 사무쳐 식음을 전폐하다가 죽었으나 세 마리 학으로 환생해서 유달산 주위를 돌며 구슬피 울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모르는 무사는 세 마리 학을 향해 활시위를 당겨 쏘았다. 화살들이 명중하여 학들은 모두 유달산 앞바다에 떨어져 죽게 된다. 그 후 학이 떨어진 자리에 세 개의 섬이 솟으니 사람들은 그 섬을 세 마리 학의 섬이란 뜻의 '삼학도'라 불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목포항(木浦港)
지리적으로 국토의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1897년 10월에 개항되어 개항 100주년이 지난 유서 깊은 항만이다. 자연적인 조건과 입지적인 여건이 양호한 목포항은 중국 및 동남아시아로의 진출을 위한 거점항만으로서 서남권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는 대불공업단지, 영암국가공업단지, 삼호지방공업단지 등 공업단지의 항만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홍도·흑산도 등의 해양 및 도서관광과 여객 및 화물수송 중심 항으로서의 기능하고 있으며, 중국 및 동북아 지역과의 교역이 증대됨에 따라 서해안 시대에 중추항구로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
부두별로 기능수행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부두별 기능을 특화하였다. 내·외항은 삼학도 복원화사업과 연계하고 있으며, 어선 전용부두인 북항, 항만 친수공간인 남항, 대불부두, 용당부두, 목포신항 등으로 기능분화를 실시하였다. 목포신항은 영암국가산업단지 조성과 삼호지방산업단지 지원 및 세력권내 화물량 처리를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이었으며2000년에는 한반도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햇볕정책을 통한남북한의 화해·협력관계 발전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는 민주주의·인권·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었습니다.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불의에 항거하며한국 현대사 격동기의 중심에서 '행동하는 양심'의 삶을 실천했습니다.또한 자신을 탄압하고 모함했던 이들과 화해하고 용서함으로서진정으로 용기 있는 자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목포 삼학도에 건립하게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년시절부터 정계에 입문하기 까지 활동한 곳이 목포이며 그의 철학과 신념은 목포에서 활동하며 태동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삼학도는 목포의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목포시민들의 꿈과 희망이 함께하는 곳입니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통해 민주주의·인권·평화의 의미와 가치를 전하며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까지의 모습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객관적 사실과 사료에 의거해체험적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상설 및 기획전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과 교육과정을 통해 많은 시민들이'민주주의·인권·평화', '화해와 용서'로 대표되는 김대중 정신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며이를 통해 국가와 민족 그리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 일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5년 5월 10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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