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소쇄원(瀟灑園)3
세월을 잡아둘 수 없는 것은
구름과 바람이 있어서이다.
해마다 예고 없이 노크하는
태풍과 폭설이 있는 한
옛것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은
피와 땀이 묻어나는 관리능력이 없다면
해를 거듭할수록
원형이 변해갈 수밖에 없다.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霽月堂) 툇마루에 걸터앉아
오곡문(五曲門)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를 바라보면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한 채 고목이 되어가거나
태풍으로 인해 쓰러져간 대나무들의 아우성이
귓전에 맴돌며
곳곳에 미적 아름다움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90년대를 기점으로 세 번째 답사를 하고 있지만
갈 때마다 그 모습이
초라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어떤 여행객은 문화재 관광 해설사에게 반문을 시도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신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아름답다”라는 말이 연상이 안 된다며
해설사에게 따지듯 묻는다.
해설사의 말에 귀를 기우려보니
그 원인은 붙잡아 둘 수 없는 세월과 오랜 성상에 의해
소나무와 대나무의 고사로 인해 처음모습보다 많이 변해서
생긴 것이라며 세월 탓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 말에 타당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소쇄원(瀟灑園)의 백미는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霽月堂), 대봉대(待鳳臺) 및
연못 그리고 외나무다리와 오곡문(五曲門)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잠시 홈에 소개된 소쇄원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자.
“1981년 국가 사적 304호로 지정된 한국 민간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1520년 ~ 1530년 경 중종 때의 선비인
소쇄공 양산보의 주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선 최고의 민간정원이자 우리나라 대표적인 원림인
《소쇄원 48영도》를 떠올린다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찾아봐야하겠지만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불타 다시 복원 중수하며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잘 가꾸어오고 있다.”
그러고 보면 역사위에 세워진 또 다른 역사가
겹쳐져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그 의미는 처음과 끝의 모양처럼 변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입구에서 출발하는 주변 환경과 태풍으로 인해
쓰러진 대나무를 제때에 잘라 내지 못하거나
적극적으로 관리를 하지 못한 면도 크게 부각되어짐을 알 수 있다.
사람이나 미물이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애정결핍현상이 생겨나
홀로 설 수 없는 단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두 개의 정자를 보기위해
입장료 1000원을 내야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고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가 빠지듯이
대나무 숲이 조밀하면서도 빽빽하게 차있지 않으면
눈을 즐겁게 해줄 수가 없고
빨라지는 발걸음을 붙잡아둘 수가 없다.
오래도록 머물러야할 눈과 귀
그리고 코끝을 자극할만한
향기가 쏟아져 나와야하는데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앞트임이 없는 소쇄원이자
미로에 갇혀있는 듯 한 형세이다 보니
조금은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럭바위에 앉아
오곡문 담장 밑으로 흐르는 물에 탁족을 즐겨보거나
제월당에 뿌려진 비개인 맑은 하늘에 떠있는 달빛을 살펴보거나
빛과 바람이 날아든 광풍각에 앉아 서책을 즐겨본다면
그 또한 즐거움이 배가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특히 모든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에
그 빼어난 경관을 살펴본다면
그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이다.
아름답다거나 즐겁다는 것은
반드시 우주적인 형상을 갖추어야만 흥이 돋아나거나
기쁨이 되는 일이 아니기에
《소쇄원 48영도》에 나타난 것처럼
잘게 썰어내듯 소쇄원을 세분화시켜 시적감각을 살려가며
사소한 곳에서라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기쁨이자 아름다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 여름날 땀을 식혀가며
우리들의 가슴을 열 수 있다면
그곳이야말로 천혜의 장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자연을 그대로 살려
미적 감각을 높이며 완성된 정자이기에
예향의 고장다운 예술적 감미로움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홈에 소개된 《소쇄원속 48영》을 살펴보자.
제1영 작은 정자의 난간에 의지해
제2영 시냇가의 글방에서
제3영 높직한 바위에 펼쳐 흐르는 물
제4영 산을 등지고 있는 거북바위
제5영 위험한 돌길을 더위잡아 오르며
제6영 작은 연못에 고기떼 놀고
제7영 나무 홈통을 뚫고 흐르는 물
제8영 물보라 일으키는 물방아
제9영 통나무대로 걸쳐 놓은 높직한 다리
제10영 대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제11영 못 가 언덕에서 더위를 식히며
제12영 매대에서의 달맞이
제13영 넓은 바위에 누워 달을 보며
제14영 담장 밑구멍을 뚫고 흐르는 물
제15영 살구나무 그늘 아래 굽이도는 물
제16영 석가산의 풀과 나무들
제17영 천연의 소나무와 바윗돌
제18영 바윗돌에 두루 덮인 푸른 이끼
제19영 평상바위에 조용히 앉아
제20영 맑은 물가에서 거문고 비껴 안고
제21영 빙빙 도는 물살에 술잔 띄워 보내며
제22영 평상바위에서 바둑을 두며
제23영 긴 섬돌을 거닐며
제24영 홰나무가 바위에 기대어 졸며
제25영 조담에서 미역을 감고
제26영 다리 너머의 두 그루 소나무
제27영 낭떠러지에 흩어져 자라는 소나무와 국화
제28영 받침대 위의 매화
제29영 좁은 길가의 밋밋한 대나무들
제30영 바위틈에 흩어져 뻗은 대 뿌리
제31영 낭떠러지에 집 짓고 사는 새
제32영 저물어 대밭에 날아드는 새
제33영 산골 물가에서 졸고 있는 오리
제34영 세차게 흐르는 여울물가의 창포
제35영 빗긴 처마 곁에 핀 사계화
제36영 복숭아 언덕에서 맞는 봄 새벽
제37영 오동나무 언덕에 드리운 여름 그늘
제38영 오동나무 녹음 아래 쏟아지는 폭포
제39영 버드나무 물가에서의 손님맞이
제40영 골짜기 건너편 연꽃
제41영 연못에 흩어져 있는 순채 싹
제42영 산골 물 가까운 곳에 핀 백일홍
제43영 빗방울 떨어지는 파초 잎
제44영 골짜기에 비치는 단풍
제45영 평원에 깔려 있는 눈
제46영 눈에 덮인 붉은 치자
제47영 애양단의 겨울 낮 맞이
제48영 긴 담에 써 붙인 소쇄원 제영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얼마든지 세분화시켜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처럼
이름 없는 풀일지 망정
시인의 손에 의해 이름이 붙여진다면
살아 숨 쉬는 생명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류중의 오류가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또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눈에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낮추는 일이자 현명하지 못한 처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있는 곳엔
남다른 관심과 이목이 있기에
또 다른 눈으로 살펴보는 것 또한 잊지말아야할 곳이
바로 소쇄원의 숨은 뜻이자
소쇄원만이 지니고 있는 장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전체적인 주변을 살펴보면
광주 댐의 물줄기가 경호를 자처하며
식영정을 지나도록 길을 터놓고 있고
작은 물줄기이지만 오곡문을 지나
대나무 숲이 우거진 입구 쪽을 향해
광주호로 흘러나가고 있다.
큰 테두리는 광풍각과 제월당에 있다하지만
소쇄원의 주요 조경 수목을 살펴보면
대나무와 매화, 오동나무, 동백나무, 배롱나무,
산사나무, 측백나무, 치자, 살구, 산수유 등이
주변의 풍광을 사로잡지 못한 채
사라져가고 있기에
참으로 가슴 아픈 일로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소쇄원의 위상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원인을 살펴보면
천재지변과 관리소홀로 인한 인재에 있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관광객들도 한몫을 하고 있지만
그 뜻을 오래도록 간직하지 못한 채
그 빛이 바래가는 일은
우리들의 잘못도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5월 18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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