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숨쉬기 위해 오르는 산

청아당 2012. 10. 20. 22:55

숨쉬기 위해 오르는 산

 

산을 오른다는 것은

숨을 쉬기 위한 것이다.

흥륜사 뒷길에 나있는 길목에

“사람이 숨을 쉬어야

자연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글귀가 푯말에 새겨져 있다.

호흡을 고르는 일도

숨을 쉬는 일이기에

피부호흡이든

일상호흡이든

숨만 쉴 수 있다면

자연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걸음 한걸음 발끝에 와 닿는 느낌으로

산을 오르고

흙먼지 풀풀 날리며

명상 아닌 명상을 하며 호젓한 오솔길을 걷는다.

청량산 정상에 오르기 전

흥륜사 쉼터에서 호흡을 가다듬다보면

숲과 어울려서 좋고

경관이 아름다워서 좋고

또 다른 감동이 손짓하고 있어 좋다.

그렇다.

흥륜사 쉼터에 걸터앉아 서해를 바라보면

눈이 즐겁고

코가 즐겁고

귀가 즐겁고

입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서해의 명당 정토원이 있어 그렇고

생사의 경계에서 생사를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눈빛으로

침묵으로

석양으로

송도신도시와 인천대교를 바라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감동이 다가온다.

개혁이 무엇인지

쇄신이 무엇인지

변화가 어떠한 것인지 알려주고 있는 송도신도시가 있기에

아암도를 메우고 송도신도시에 흙을 퍼 날리던 덤프차에서

세월은 한꺼번에 흘러가는 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하루하루가 가야 세월이 모인다는 법도 알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게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는가하면

송도신도시를 연결 짓는 다리가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도로가 생겨나고 기반시설이 갖추어지면서

새로 신설된 편의시설에 몸을 의탁하기도 한다.

그건 그렇고

또다시 한 호흡을 가다듬고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계단을 밟으며 경인방송 송신소를 향해 오르게 되고

정상에 서있는 커다란 바위에 위치한

용학유정을 지나

‘볼라벤’ 태풍에 날아가 버린

지붕 없는 노아의 방주 배 카페에 오르다보면

한 호흡 한 호흡이 소중하고 귀중하게 느껴진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들이 모여 산을 이루고 있듯이

바위와 소나무 그리고 정자가 어울리는 청량산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구름을 부르면 구름이 다가오고

바람을 부르면 바람이 다가오고

샛길로 빠져나갈 구멍하나 없이

사방으로 오르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오늘도 쉬지 않고 오르고 있다.

건강을 위해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명상을 위해 오르는 사람이 있고

가족을 위해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홀로 바람이 잘 다니는 길목에 서 있다 보면

송도신도시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기도 하고

인천대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기도 하고

1376년 나옹화상이 개찰한 사찰인

흥륜사(최초 청량사) 법당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기도 한다.

발끝이 가볍다는 것은

몸이 가볍다는 것과 같고

머리가 맑아진다는 것은

마음이 편하다는 것과 같다.

세속에서 이것저것에 시달리다보면

스트레스로 인한 고질적인 질병이나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털어버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삶의 질을 높여줌과 동시에

새로운 하루를

거뜬하게 보낼 수 있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움직이고

멈추면서

앞을 향해 달리는 일은

생명을 연장하는 지름길이자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바람을 향해 달리는 일은

괴롭고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눈뜨자마자

하루를 맞이하는 일은 성스러운 일이요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일이기에

삶에 대해 말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요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기에

계절의 끝에서 손을 흔들며

바람 따라 움직이고 있다.

뒤돌아보면

이것이 인생이고

이것이 하늘의 뜻이기에

침묵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묵언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발걸음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세월로 달려가기도 한다.

 

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