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역사와 종교는 하나이다

청아당 2012. 10. 15. 20:14

역사와 종교는 하나이다

 

하늘을 깨우는 굉음 속에는

역사가 있고

종교가 있고

철학이 있고

정치가 있고

문명을 대변하는 문화와 삶이 있다.

그 누구든

한번은 흔들어 깨워야

달릴 수 있는 바람이기에

텅 빈 공간은 역사가 담긴 공간이 아니다.

비워있다고

그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과 같다.

역사가 되기 위해선 발로 뛰어야하고

최첨단의 막강한 화력과 공격력이 갖추어져 있어야하고

외교적 능력이 뛰어나야하고

천문학과 지리학에 밝아야하고

탁월한 전략적 지략이 갖추어져있어야 한다.

이는 만고불변의 법칙이자

국가와 국가 간의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기도하다.

그렇다.

역사가 되기 위해선 우선 살아남아야하고

역사가 되기 위해선 죽음을 불사하여야만 한다.

그동안 숱한 국가가 세월과 함께 묻혀버리거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국가가 많지만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있는 국가라면

언제든지 유비무환의 자세로 임해야하고

철통같은 경계심과 무너질 수 없는 강한 국가로 서있어야 한다.

어떤 나라는 비열한 행동을 통해 모략과 술수를 바탕으로

다른 국가를 넘보기도 하고

어떤 나라는 영토의 크기와 인구밀도로

위협을 가하기도하고

어떤 나라는 첩보전쟁으로

국가와 국가끼리 연합하여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렇다.

홀로 선다는 것은 자신을 강하게 키우고

국가를 강하게 일으켜 세워야한다는 뜻과 같다.

역사는 말로 하는 역사가 아니다.

행동하는 역사만이 기록되어지고 살아남을 수 있듯이

비무장지대를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노크해온 귀순병사가 생겨나거나

포격사건으로 연평도 사람들이 커다란 상처를 입거나

천안함이 이유 없이 두 동강이 나거나

수시로 서해북방한계선을 침범해오는 북한군이나

한국의 해역을 침범해오는

쇠꼬챙이로 무장한

중국어선의 무모한 행동들이 생겨나는 것은

국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국민들의 책임이요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통수권자의 책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군대를 보여주겠다던 국방장관은

뒤늦게 약한 군대를 위로하거나 호통 치며

더욱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기억에서 사라진 국가나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가 아니고

기록된 역사만이 역사라고 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역사는 홀로 서있는 것이 아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연결된 우주적인 기운처럼

수직과 수평으로 엮어진 그물과도 같고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바람과도 같고

손을 내민 따뜻한 정과도 같고

들리지 않는 숨소리로 호흡을 가다듬거나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가슴을 여는 것과도 같다.

그렇다.

세월이 흐르지 않는다고

역사가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멈춰도 흐르는 것이 역사이듯이

천년이 흘러도 지금 이 순간이고

만년이 흘러도 지금 이 순간이고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지금 이 순간이다.

그만큼 역사에 대한 정의는 선을 그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활동하며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의식을 갖고 서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줄 없는 거문고위에 서있는 것과 같고

바람 없는 숲 속에 서 있는 것과 같고

우주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고요의 극점에 서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묶어 세워둔 기둥과도 같고

지금 이 순간은

우주와 통하는 지름길이자 경계선이기도하다.

지금 이 순간에 서있다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고 땅의 축복이고 우주의 축복이기도하다.

그렇다.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은 공허한 하늘과도 같지만

공허한 공간에서조차 존재의 흔적은 남기에

지금의 나로 존재하고 있고

우주와 연결된 줄처럼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생각과 행동이 하나로 일치되는 공간이자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역사의 흐름으로 남기도 한다.

그렇다.

역사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고

역사란 세월이 모여 있는 바람과도 같고

역사란 삶의 진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에센스이기도하다.

그만큼 뜨거운 열정이 없다면 역사는 생겨나지 않고

역사가 있는 곳엔

사람이 있고

자연이 있고

하늘이 있고

『역사의 연구』 저자인 아놀드 조셉 토인비의 표현대로

‘공허한 공상’을 품고 있는 철학과 종교이기도하다.

그렇다.

종교가 있기에 삶이 있듯이

종교가 없다면 역사도 없다.

종교는 삶의 근원이자 최후의 의지처이기에

구르고 또 구르다보면

흩어진 생명체가 한 몸으로 붙어 자석처럼 되거나

전체에서 하나로 귀의하는

무소부재의 힘으로 변화되기도 한다.

그렇다.

일본은 한국을 알고 있지만

한국은 일본을 모르고 있다.

중국은 한국을 알고 있지만

한국은 중국을 모르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을 알고 있지만

한국은 러시아를 모르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알고 있지만

한국은 미국을 모르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야망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져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반도의 지리적 여건과 군사, 경제적 여건이

최적의 위치를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한반도에 대한 매력을

강하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힘의 상징인 국가 간의 권력구도가 작동하여

강약의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바람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국가 간의 권력구도이기도하다.

그렇다.

안다는 것은 지피지기요

모른다는 것은 패자의 불행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굴욕의 역사로 살아갈 것인지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더욱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물론 강대국들의 흥망성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 간의 대결구도가

팽팽하게 대치되거나 긴장되어져있을 때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자나 깨나 나라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반만년역사를 지켜온 금강석 같은 민족이지만

우주를 품고도 남을

포용력과 한국인 특유의 정 문화 때문에

강자나 약자를 가리지 않고 용서하거나 배려하면서까지

굴욕을 감내한 초월적 우주심만 아니었더라면

기마민족의 대명사인 고구려의 기상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고 인내하며 살아온 우리네들이기에

우주적인 가슴으로

인고의 끝에 서서 침묵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일본은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만

한국은 일본을 우습게보거나

아직까지도 얕보는 습관이 남아있다.

이미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당시에 신라를 도와

일본해적인 왜구들을 소탕하거나

1419년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세종대왕 시절 때

대마도를 군신관계로 접수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일본이 살아남기 위해

왜곡된 사무라이 정신을 앞세우며

서구열강의 종교와 최신무기를 받아들이면서까지

한국을 침범하기도 했다.

그렇다.

일본이 얼마나 치밀한지는

임진왜란을 통해 알 수 있고

한일합방을 통해 역사와 문화, 창씨개명과 언어

그리고 한글까지 말살시키려는

비열한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단순한 침략이라기보다는

세계를 넘보려는 대담함까지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큰 인물이 나오지 못하도록

명산과 명당에 못을 박아놓거나

산허리를 끊어버릴 정도로 철저한 일본이기도하다.

한번 꾼 꿈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가슴에 담고 있듯이

언젠가는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을 위해

신사참배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반성의 기미보다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역사마저 왜곡시켜가며

스스로 식물인간처럼

의식 없는 나라로 인식되어지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극히 일부이지만

지각 있는 일본인들의 반성이 없었더라면

패륜아라 불리 울 정도로

저급한 행동과 저급한 주장들로 수장될

일본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지만 조금은 용서를 받고 있기도 하다.

위안부 사건이나 생체실험인 마루타 등

온갖 핍박과 갖은 고문 등을 통해 용서받지 못할 일을 했으면

잘못을 빌어야하지만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가며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에 전전긍긍한 채

반성의 기미도 없이 악의 축을 즐기기를 더 원하고 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제3의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할 뿐이다.

그것도 포석을 통해 연결시키려는 바둑처럼

한 치의 양보나

단점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분리해놓은

총 19개의 문명 중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21개의 문명국으로 정의해놓은 것을 보더라도

세계문명사에서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나라들의 대열에 끼어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들의 의식이 높다는 것을 증명한 일일 것이다.

아무쪼록 국격에 걸맞은 행동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고

지금이라도 자성과 성찰을 통해

깊이 있는 사과와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며

품격 높은 나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렇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남부러울 것 없이 가질 만큼 가진 일본이지만

무엇이 부족한지 끊임없이 한국의 땅 독도를 탐내고 있다.

독도가 어떤 땅인가?

한국의 땅이자 민족의 혼이 담긴 땅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가 일본을 모르면 한국은 그만큼 힘들어지고

우리가 일본을 알면 한국은 그만큼 국력이 신장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중국 또한 고구려의 영토와 발해의 역사를 부정한 채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한국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바꿔놓는 것을 보면

일본보다 더 비열한 짓을 행하고 있는

중국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강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고

강한 자나 강한 국가만이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들의 가슴에

또 다른 비수를 꽂고 있다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역사는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는 나라만이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고

영토와 문화 그리고 종교와 정치를 통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역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외교전 또한 정치, 경제, 문화를 뒤흔들 수 있는 일이지만

생색내기를 위한 외교전이나

국가원수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분을 통한 국가의 분열이다.

막대한 영토를 확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당연합을 통해 무너져버린 백제가 그렇고

고구려가 그렇다.

그러고 보면 위대한 영웅이나 위대한 통수권자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어야하지만

대물림을 통해 연결되어질 수 없는

위대한 지도자의 부재는

그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치열한 고민으로 해석되어지고 있다.

지금 세계경제가 어려운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것이 한국경제이다.

실업률에 자살률까지 겹쳐있고

국가부채와 가계부채의 증가는

IMF보다 더 어려운 하루를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점진적인 조건으로 증세를 요구하거나

삶의 바닥으로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면

그것보다 더 위험한 행위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학문이나 정치 공학적

이상세계를 그리는 국가 지도자보다는

실전에 능한 국가 지도자가 필요할 때이다.

그리고 내공이 강한 것은 좋으나

오만불손하거나 배려와 겸손을 모르는 독불장군은

한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국가 지도자가

이상세계를 향해 노래하였는가?

결국 꿈으로 끝나버린 이상세계가 아니었는가?

우리가 꿈꾸는 것은 평범한 것이지

고매하거나 현학적인 정치가 아니다.

간단할수록 심금을 울리듯이

거창한 구호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국가 지도자가 필요할 때이다.

그리고 사람 사는 일은 만족을 모르고 달리는 바람과도 같아

우리가 원하는 새 세상이 이루어진다 해도

새로운 꿈을 향해 계속해서 달릴 수밖에 없다.

마치 신비의 세계가 평범의 세계로 묻혀버리듯

또 다른 신비로움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예측할 수 없는 우주의 구멍이자

우리들의 꿈이기에

우주를 흔들 수 있을 때까지 흔들어야만

직성이 풀리기도 한다.

지금 미국경제가 흔들리고

유럽경제가 흔들리고

일본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괴로운 시간으로 각인되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역사가 역사한테 말하고 있듯이

국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내분과 혼란의 중심에 서있다는 말과 통하고 있듯이

독단적인 행동이나 국민과 소통할 줄 모르면

그것처럼 위험하고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남보다 부지런하게 뛰어다니며

국가를 위해 외교전을 펼치는 것은 좋으나

마치 세계여행을 못해본 사람처럼

질보다는 양적인 외교전을 통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소비하거나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면

그것처럼 위험하고 통탄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예부터 물을 다스리는 치수를 중요시하는 것은 좋으나

임기 내에 완성하기위해 비밀스럽게 진행하며

청계천 복원사업처럼 밀어붙이기식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둘러 완성된 4대강은

전에 없던 이상 현상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

소통보다는 불통으로 통하고 있는

국가 지도자로 낙인찍힌 사람한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말하지 않아도 밑그림이 투명하게 드러나게 되어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이다.

감춘다고 감추어지겠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생각보다는

차라리 모든 것을 오픈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물론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한다면

경제적 타당성은 뒤로 미루더라도

대형 국가 프로젝트 사업을 유치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국민들이 그렇게 꿈꾸어왔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송도신도시에 ‘유엔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일 것이다.

특히 GCF 유치에 한몫을 한 송영길 인천시장의 유창한 영어 실력도

괄목할만한 수준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렇다.

눈을 즐겁게 하거나 무리수를 둔 사치와 불필요한 치적은

국민들이 원하지 않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르네상스적 꿈을 그리는 것은 좋은 일이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행하는 일은

국민들에게 독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안다면

자중하고 또 자중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펴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처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국적인 국가사업이나 지방 사업을 유지시키기 위한

유지관리비가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충당하여야 한다는 사실은

국민들의 허리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들의 삶은 처음부터 우주적인 공간에서

우주적인 운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우주적인 운명으로 가득한

자연의 삶이자

죽음위에 서있는 삶으로

역사를 알기 전에

종교부터 먼저 살펴보아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

역사는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며 앞으로 나아가지만

철학보다 앞선 종교는

인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신중의 신이자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진

유일신인 하나님을 향하여

의지의 대상으로 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주종관계로 맺어진 수직적인 고등종교보다는

수평적인 역사가 더 고귀하고 넓어 보이지만

환난과 굴욕의 삶을 지탱하며 살아가는 데

종교보다 더 나은 것은 없기에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신과의 적절한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친밀감을 느끼게 하고

가족이자 형제애로 굳어진

삶의 위안으로 연결되어지기도 한다.

비록 전체에서 하나로 몰입해나가는 종교이지만

언제든지 그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포용성도 지니고 있기에

힘들 때마다

너도나도 종교 속에 파묻혀

위안을 삼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누가 종교를 알지 못하면

역사도 알 수 없다는 필연성에 귀를 기우리며

인간이 갖추어야할 성역과 신성함을 최고로 치는 종교로

의식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강요보다는 자발적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강요하는 종교보다는

자발적인 종교가 생명력이 길듯이

우리들은 종교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 무신론자이자 현실주의자인데도 불구하고

급하면 하나님부터 먼저 찾게 되는 것을 보면

상식을 뛰어넘어

비현상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역사보다 종교와 함께 호흡하며

자매결연 맺기를 더 원하기도 한다.

그렇다.

그 누가 두 손 모아 기도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도

서로 먼저 가슴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절실한 심정으로

오늘을 위해 기도하고

내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도만하면

그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고

우주 신을 모셔왔지만

어떤 때는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가장 높은 허공위에 올려놓고 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주 신인 하나님일지라도

오감이 모자랄 정도로

모래알보다도 더 작은 별과 인간을 관리하다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에 젖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하나님이기에

어떤 때는 머리를 비우게 하고

어떤 때는 마음을 비우게 하고

어떤 때는 두 손을 비우게 하며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쥐어주며 위로를 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역사를 말하기 전에

종교를 알아야한다고 말하고 있고

종교를 알기 전에

철학을 알아야한다고 말하고 있고

문명을 발현시키는 삶의 패턴과 삶의 구조를 알아야

역사를 알 수 있다고

일침을 놓으며 귀띔을 해주기도 한다.

그렇다.

눈만 뜨면 하루를 어떻게 지내야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머리가 텅 비어 수족이 묶이고

가슴이 닫혀버리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한 태도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일축하며

묵언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찾아내듯

10대가 걸어야할 길을 만들어놓고

20대가 걸어야할 길을 만들어놓고

30~40대가 걸어야할 길을 따로 만들어놓고 있다.

이렇게 삶의 눈높이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50대를 지나야 알 수 있는 길이 있고

60대를 지나야 알 수 있는 길이 있고

70~80대가 되어야 알 수 있는 길이 따로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들이 알아야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는 사실만큼은

거듭 확인하며 살아가야할 것 같다.

그리고 애석한 일이지만

바람이 잘 통하는 길목에서조차

알 수 없는 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행동하는 발걸음이지

멈춰 서서 바라보는 눈이 아니기에

역사를 알려면 종교부터 알아야하고

역사와 종교가 하나로 일치되어지거나

역사와 종교가 벗이 될 때까지

산을 향해 달리거나

바다를 향해 달려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역사는 종교를 품어야만 살 수 있고

종교는 역사와 철학을 품어야만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은 항상 처음에서 출발했고

그 처음은

끝에서 되돌아온다는 사실만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세월은 우리들을 품어주지 않아도

역사와 종교를 품고 있기에

자연 속에는 사람이 있고

바람이 있고

구름이 있고

바다가 있고

산과 함께 하나로 연결되어져 있기도 하다.

사실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누워서 떡 먹는 일보다 더 쉬운 일이지만

눕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연조차 비바람을 뿌려가며 인간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그렇다.

역사란?

종교요, 정치요, 경제요, 철학이요, 문화이자

거대한 문명 속에서 국가 간에

서로 이질적인 환경을 순화시켜가며

동질적인 환경으로 바꾸고자

자연을 불러들여 벗과 함께

그림자 없는 그림자로 달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주적인 시야로

우주적인 가슴으로

우주적인 발걸음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 달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역사가 흘러가는 길목에서

종교가 흘러가는 길목에서

자연이 흘러가는 길목에서

역사와 종교는 하나이자

우리들의 벗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그럴 때마다 색다른 화두를 던져놓고

깊은 명상 속에서

새로운 삶의 시스템을 찾아낼 때까지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을 잊지 말라고

끝을 잊지 말라고

역사와 종교는 처음과 끝에 서서 회전하고 있다며

세월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

우리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2012년 10월 13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