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낙산 다래헌(洛山 茶來軒) - 침묵으로 서있는 의상대

청아당 2012. 11. 14. 00:24

낙산 다래헌(洛山 茶來軒) - 침묵으로 서있는 의상대

 

노송을 세워놓고 계단에 새겨진 "길에서 길을 묻다"를 발견하거나

사진촬영을 위해 계단에 서 있다 보면

의상대를 향해 달려오는 파도를 맞이할 수가 있다.

달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알아서 달리고

멈추라고 한 적도 없는데 알아서 멈추고

가슴을 열게 하는 저 파도는 누구를 위한 발걸음인가?

말없이 서있는 침묵의 의미는

파도와 싸워온 바위들의 함성으로 들리기도 하고

저 멀리서 불을 이고 달려오는

화마와도 같은 모습으로 달려오기도 한다.

분명 우리들의 기억엔 파도와 바위뿐인데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걸며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늦가을에 선 없는 선에서 선율을 밟고 서 있다 보면

저 멀리서 하얀 거품으로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파도를 만날 수가 있다.

분명 파도는 말이 없지만

자연은 말을 한다.

그렇다.

크고 넓은 찻잔에 담겨진 대추차를 음미하며

창밖으로 명상을 하다보면

제일 먼저 바위 사이에 세워진

법당 밑으로 철썩거리는 홍련암으로 달려가고

그 다음엔 의상대로 달려간다.

그렇다.

선 없는 수평선을 맞이하며

문 없는 방에 갇혀

우주와 하나 되는 초월적 긴장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기회를 맞기도 한다.

그렇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그 의미와 뜻은 달라도

한마음 한뜻으로

부분에서 전체로 달려갔던 욕망과 번뇌를 던져버리며

잠시 고요의 극점에 도달하여

꿈도 희망도 없는 궁극의 점에서 눈을 감게 된다.

그렇다.

참으로 오랜만에 푸른 바다를

가슴에 담을 수 있는 순간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너와 나를 구분하거나

깨달음과 번뇌가 충돌하는 경험 속에서

누구나 참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무언의 경지에 이르거나

창 넓은 다래헌에서 세한도를 연상시키는

의상대의 해송을 가슴에 불러들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림자 없는 바람처럼

다리 없는 구름처럼

직선과 곡선의 미학으로 서있는

금강송인 노송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노송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 참된 것인지

무엇이 거짓된 것인지

분별할 마음조차 사라진 자리에서

세차게 바위를 철썩거리는 자연의 매력을 느껴가며

우주와 통하는 한 줄기 통로를 발견하기만하면 된다.

그것이 죽음 속에서 발견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삶속에서 발견하는 것일지라도 

그러니까 일상의 도에서

하늘을 파헤치는 도까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소리치며

소리 없는 낮은 자세로 자신을 발견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도의 경지에 이른 것이고

잡아도 흔들린다면

대중의 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끝은 하나지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우주의 느낌만 확실하다면

그 모든 것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깨달음의 경지에서

손을 흔들고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

더 이상 나아갈 수도

더 이상 멈출 수도 없는

그곳에서 심장을 멈추게 하는 감동만이 살아 숨 쉬듯이

죽음보다 더한 삶속에서 희열을 느끼면 그만인 것이다.

 

2012년 11월 2일 금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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