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적과 묵시적인 해석
단계가 올라갈수록 말이 없어진다.
기초단계에서는 많은 말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시켜줘야 하지만
중급단계에서부터는 말이 적어진다.
고급단계에서는 눈빛만 주고받아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된다.
명시적인 것은 말이 많아지지만
묵시적인 것은 말이 적어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깨달음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초급단계에서는 각종 방법과 술수에 얽매여
이론적 배경을 찾아 헤매느라고
정작 깨달음의 세계에는 근처에도 못 간다.
그 하나의 세계에 접근하려고 많은 고행과 공부를 하지만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러서는 오직 침묵만이 그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그만큼 감동과 울림이 클 수밖에 없다.
말로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있는 우주적인 혜안과 통찰력으로
감동과 울림을 받는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처럼
스스로 존재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자연을 접하는 많은 사람이 뒤늦게 수선을 떨며 자연을 예찬하지만
자연은 처음부터 못 들은 척하며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하다.
감동과 울림은 스스로 터져 나와야만 진정한 뜻이 전해지기에
말로 전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겨있는 우주적인 뜻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침묵을 흔들 줄 아는 자만이
자연을 이해하고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
2025년 4월 8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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