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된 하나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도 하나요
너도 하나요
우주도 하나요
깨달음도 하나요
종교도 하나라고 말한다.
하나가 진짜로 하나인지
방편으로써 하나인지
몹시 궁금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깨달음도 저마다 다 다르고
종교도 저마다 다 다르지 않은가?
하물며
우주라고 예외가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마저
그 위상이 흔들리게 되어있다.
분명 하나라서 하나라고 말했는데
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으로 분리되어져 있으니
이 어찌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다.
우리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은
안이 아닌
밖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밖에선
전체에서 하나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안에선
하나에서 전체를 섭렵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오묘하고도 미묘한 차이인가?
밖에서는
아무리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봐야만 알 수 있기에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어야만
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
하지만
안에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에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을 해보아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면
그 누가 목숨을 걸겠는가?
하나는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자들이 말하고 있고
각자들이 말하고 있고
도인들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들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하나는 서로 다르다.
주장하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고
깨달은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종교도 다 다르고
하나님마저도 다 다르다.
그래서
우리들은 말한다.
분명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니라
분산된 하나이다보니
통합된 하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어찌 혼란스러운가?
같은 자식인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심경과도 같기 때문이다.
하나를 하나라고 말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말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더는 묻지 말자!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뿐이다.
2017년 11월 6일 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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