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그릇
사람도 늙어 가면 유리그릇이 되어간다.
언제 깨어지거나
언제 떠나야할지 모르는 시간이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뜻과 같다.
앞을 향해 달려온 시간들을 뒤로 하며 떠난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가야할 때를 알거나
떠나야할 때를 알 때는
경건하고도 엄숙한 의식으로 맞이해야한다.
얼마나 달려온 세월인가?
절대 권력자가 내린
수명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서거나
스스로 수명을 단축하려든다면
하늘이 용서치 않고
세상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염두에 두고 달려야하는 뼈아픈 사랑이자
자신을 극복해 내야하는 일이기에
달려야할 때는 달려야하고
멈춰야할 때는 멈추면서 살아가야한다.
첫걸음을 뗀 후
80이 넘어서면
귀로 듣는 시간보다
눈으로 보는 시간보다
몸으로 듣는 시간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느낀다는 것은
아직도 신경세포가 살아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고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기에
앉아있는 시간으로도 느낄 수가 있고
서있는 시간으로도 느낄 수가 있고
달려가는 시간으로도 느낄 수가 있다.
한편으론 조영술로
혈관검사를 하다보면 발견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피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심장과 신장이 악화되어져간다면
하늘이 내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거나
홀로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시간을 더욱 길게 갖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뒤돌아보면서
담백하고도 맛깔스런 산나물처럼
『채근담』을 읊거나 명상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처럼 마음 든든한 일도 없을 것이다.
유불선을 하나로 묶어
일상에서 고요의 극점까지 널리 퍼져있는
우주적인 말씀이기에
그 뜻은 하늘이기도하고
그 뜻은 바다이기도하고
그 뜻은 땅이기도 하면서
삶의 길목에서
삶을 응집시켜놓은 바람과도 같은 말씀이자
씹을수록 담백한 맛이 우러나는 그런 말씀으로
가슴에 품거나
마음에 품어
우주와 통하는 안목으로
앞을 내다보며 살아간다면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이다.
2012년 5월 22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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