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걷고자 해도 걸을 수 없는 나무들이 있다.
한발을 내딛을 수 없어
혹한의 겨울에 갇혀 사는 나무들
때 되면 걸을 수 있다 해도
지금 당장 걸을 수 없기에
그 꿈은 이상으로 남게 된다.
한없이 가슴을 열어놓아야 된다기에
세월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눈과 귀 그리고 언어까지 잊고 지냈다.
가도 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바람이라고는 하지만
나무에서 출발하여 산길을 걷는 새들이 있을 수 있고
숲에서 출발하여 공중을 나는 새들이 있을 수 있다.
걷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발걸음을 경쾌하게 하는 효과가 있고
마음을 명상으로 이끄는 효과가 있고
바람을 붙잡아 봄의 영역에 묶어두는 효과가 있다.
봄은 생명이 살아나는 계절이자
또 다른 생명이 죽어가는 교차점에 서있다.
분명 작년에 존재했던 고목이나 나무들이 서있었는데
올해는 그 모습이 없어지거나
산길에 누워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하루는 짧고 굵지만
한 달은 길고
일 년은 눈 한번 감았다 떠보면 뒤돌아볼 시간이 없어진다.
깜빡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일이기에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건함이 살아있고
오늘을 살게 하는 새로운 힘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언제든지 죽음과 만날 수 있는 준비 기간이자
경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덫을 놓아 생사여탈을 주관할 수가 있고
바람이 달리면 함께 달리며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것도 봄바람으로
계절의 여왕인 5월과 함께
파도가 멈추지 않는 망망대해처럼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바람처럼
모두가 하나로 통하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끝없이 바람을 불러들이고 있다.
2012년 4월 28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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