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봄바람 - 20120514

청아당 2012. 4. 29. 16:00

봄바람

 

걷고자 해도 걸을 수 없는 나무들이 있다.

한발을 내딛을 수 없어

혹한의 겨울에 갇혀 사는 나무들

때 되면 걸을 수 있다 해도

지금 당장 걸을 수 없기에

그 꿈은 이상으로 남게 된다.

한없이 가슴을 열어놓아야 된다기에

세월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눈과 귀 그리고 언어까지 잊고 지냈다.

가도 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바람이라고는 하지만

나무에서 출발하여 산길을 걷는 새들이 있을 수 있고

숲에서 출발하여 공중을 나는 새들이 있을 수 있다.

걷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발걸음을 경쾌하게 하는 효과가 있고

마음을 명상으로 이끄는 효과가 있고

바람을 붙잡아 봄의 영역에 묶어두는 효과가 있다.

봄은 생명이 살아나는 계절이자

또 다른 생명이 죽어가는 교차점에 서있다.

분명 작년에 존재했던 고목이나 나무들이 서있었는데

올해는 그 모습이 없어지거나

산길에 누워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하루는 짧고 굵지만

한 달은 길고

일 년은 눈 한번 감았다 떠보면 뒤돌아볼 시간이 없어진다.

깜빡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일이기에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건함이 살아있고

오늘을 살게 하는 새로운 힘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언제든지 죽음과 만날 수 있는 준비 기간이자

경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덫을 놓아 생사여탈을 주관할 수가 있고

바람이 달리면 함께 달리며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것도 봄바람으로

계절의 여왕인 5월과 함께

파도가 멈추지 않는 망망대해처럼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바람처럼

모두가 하나로 통하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끝없이 바람을 불러들이고 있다.

 

2012년 4월 28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