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船橋莊) - 첫 번째
가속 폐달을 밟을수록 신선함이 묻어나는 영동고속국도!
대관령 구비길사이로 펼쳐진 구름을 뚫고 강릉의 명당이자 전국의 명당인
한옥의 신비함을 묶어 세워둔 활래정(活來亭 : 활래정과 연지 및 방지 1816)과 열화당(悅話堂 1815)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상류층 살림집이다. 효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의 11대손인 전주사람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도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
안채·사랑채·행랑채·별당·정자 등 민가로서는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1700년 이전에 건립된 안채는 이내번이 지었으며, 선교장의 건물들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선교장의 대문 두 개는 그 용도가 각기 다르다.
‘선교유거(仙嶠幽居)’라는 현판이 걸린 왼쪽의 솟을대문은 남자와 손님이 출입하는 이 집의 공식 대문이고, 솟을대문이 없는 오른쪽의 평대문은 여자와 가족이 출입하는 대문이라고 한다.”
선교장(船橋莊 : 033-646-3270)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금강송인
노송들의 군락이자 산책로(散策路)로써
밤늦게까지 불빛을 밝히고 있는 한옥의 색다른 체험장이기도 하다.
분명 평면과 입체적인 굴곡을 살려
학익진(鶴翼陣)처럼 펼쳐져 있는 선교장이지만
바람과 물과 구름을 불러들이고
산천초목이 일제히 일어서는 봄의 끝에 서서
우주와 함께 호흡하며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얼마나 더 달려야 알 수 있는가가 아니고
그저 발걸음 하나로 알 수 있는 따뜻함이 배어나오는 곳이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균형을 잡을 줄 알고
한 줄로 달릴 때는 줄지어 다니기도 하고
두 줄로 달릴 때는 손을 잡고 다니기도 하고
여러 줄로 달릴 때는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 달리기도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즐거움인가?
말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곳
눈을 뜨고 귀를 열면
온 사방에서 고요와 묵언으로 달려와
기쁨으로 서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자연이 살고
자연의 배려가 있어야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곳
발끝으로 다가온 느낌은 명상의 장소이자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무심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전통을 훼손할 사람이 없고
사뿐하게 걷는 발걸음은
아침 산책로를 가볍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더구나 활래정을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면
활래정 연지와 활래정 방지의 깊은 여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가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걷는다는 것은 몸을 즐겁게 해주고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세상을 향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로 묶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갖추어야할 것이 다 갖추어진 곳
모자란 부분은 자연이 알아서 채워주고
남은 부분은 사람이 걷어내는 곳이자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깨가 스치지 않도록 배려로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각도를 잡아 한옥의 지붕을 바라볼수록
절제된 건축미에 흠뻑 빠져들어 넋을 놓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든 행복을 실어다주고
말없이 고운자태로 서있을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곳이자
자연과의 동화가 하나로 통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감동스럽고 가슴 뜨거운 일인가?
나그네가 하룻밤 묵어가며 객실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침묵으로 말하고 있는 선교장의 전통이 더 아름다운 것은
세월을 이겨온 역사보다
뼛속 깊이 간직한 통한의 아픔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처럼
서있는 그곳이 명당일지라도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명소들이 없었다면
그 빛은 바랬을지도 모른다.
산나물처럼 담백하고 아담한 방이 있다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수식어를 버리는 대신
단순함의 극치를 알리기 위한 소박함에 있다할 수 있다.
높은 곳에 올라있어도
가장 낮은 곳을 찾아다니는 바람처럼
초가와 기와가 잘 어울리는 곳이자
연못위에 서있는 쌍둥이 정자 활래정이 있기에
선교장을 대표하는 열화당의 운치가 더욱 풍요로워 보인다.
비바람에 노출되어지거나 폭설이 내린다 해도
멀리서 달려온 파도가 경포해수욕장에서
바람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한
달빛에 흔들리지 않도록 월파정은 중심을 잡을 것이고
경포대는 둥글고 환한 보름달을 끌어다 노송에 묶어두며
시인에게는 시를 읊도록 할 것이고
서예가에게는 서예를 펼칠 수 있게 자리를 비워둘 것이고
화가에게는 산과 구름 그리고 바다를 그려 넣고
여백을 남겨두도록 할 것이다.
선교장은 한옥체험 프로그램으로 인해
내실 있는 관리로
더욱 깊이 있는 즐거움을 전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전통을 전통으로만 지켜나가려 한다면
현실과의 벽에 부딪혀 더는 유지할 수 없는
경영난을 겪을 수도 있었겠지만
한옥체험이라는 틈새를 끄집어내어
내부는 창호 문에 새겨 논 한국화로 치장을 해놓음과 동시에
이중창으로 바람을 차단시키며
입체적인 문고리로 안전한 잠자리를 보장하고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질감으로 꾸며진 온돌방은
나무대신 전기로 난방을 대체하고
냉장고와 에어컨까지 준비한 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샤워실과 화장실을 꾸며놓기도 했다.
외부는 한옥의 본래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전통을 읽어낼 수 있도록 해놓았고
안팎으로 한옥에 대한 아늑함과 편리성 그리고 접근성으로 채워놓고 있다.
한옥체험은 저녁 6시부터 아침 9시까지이다.
이러한 시간제약은 관람객을 위한 배려에서 나온 것 같다.
그나저나 TV에 나오는 ‘적도의 남자’와 ‘해피투게더3’ 드라마를 보다가
새벽 1시에 잠든 후 새벽 6시에 일어났다.
눈을 뜬 순간 아침을 깨우는 산새소리에 놀라 일어나보니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들의 발걸음이 어찌나 분주한지
함께 일어나 밤새 어떻게 변했는지 선교장 곳곳을 방문하며
산책로에 나섰다.
아침기운이 조용하게 내려앉은
활래정과 열화당 그리고 넓은 잔디밭엔
우주적인 기개를 담아내도록 넉넉한 마음을 펼쳐 보이고 있다.
텅 빈 공간은 채움에 있고
채움은 텅 빈 공간에 있듯이
침묵보다 조용한 고요로 목욕을 하고
고요보다 더 깊은 침묵의 바람으로 온몸을 닦아내다보면
이백의 ‘산중문답’ 및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더욱 생각나게 하는 곳이자
한국화의 미(美)인 여백의 미로 군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꽉 채워진 공간보다는 숨통을 틔어놓은 공간이 있었기에
발걸음이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듯이
산책로에서 만나는 곳마다 호흡을 가다듬고
한번이라도 더 가슴에 새겨놓기 위해 발걸음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선교장을 빠져나와 차에 오르면
생육신의 한분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 기념관을 지나
경포대와 경포호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월파정(月波亭)이 있는 경포호수 반대편엔 ‘홍길동전’ 의 저자인
교산 허균(許筠, 1569~1618)의 누이이자
난설헌 허초희(許蘭雪軒, 1563~1589)의 생가와 연결되어져 있어
그 아름다움이 배가되기도 한다.
자칫하면 놓칠 수 있는 허난설헌의 생가이기에
여행을 할 때는 그 주변을 세밀하게 훑어 나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질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오죽헌의 주인이자 한국의 어머니 상인
사임당 신씨(1504(연산군 10)~1551(명종 6). 조선 중기의 예술가)와 그의 아들
율곡 이이(李珥, 1536년 음력 12월 26일~1584년 음력 1월 16일)의 명성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오죽헌이라는 이름이 유언처럼 남아있는지 궁금하면
먼저 대나무 색상을 살필 일이요
그 다음은 오죽헌 뒤로 펼쳐져있는 논밭에서 무리를 지어가며
대나무를 향해 까마귀가 소리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한다.
비록 둘 다 사상은 다르지만 극과 극을 달리는
와중에서 알려진 인물들이기에
경포호를 사이에 두고 경쟁 아닌 경쟁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경포대에서 신사임당 상을 더는 볼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배치로 갈 때마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곳엔 신사임당 상 대신 경포대의 옛 모습이 석벽에 새겨져있어
색다른 과거의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1958년에 기해생(己亥生) 동갑계원 28명이 새 바위에 건립하였다는
월파정위에는 새 모양이 새겨져있어
멀리서보면 재두루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재두루미와 이름 모를 새들이 새 바위에 앉아 상징성을 띄고 있다.
그리고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처럼 달빛이 물결에 흔들리는 고고한 자태는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아름다운 배경이자 중용의 미로 승화되어져있다.
더구나 경포대 진입로에 들어서자마자
청사초롱의 불빛과 함께 벚꽃 길을 수놓고 있어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월파정은 그 아름다움의 극치를 담아내고 있다.
오전 11시에서 밤 8시 30분까지 손님을 맞고 있는 강릉전통음식지정농가이자
배우 배용준과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에서 추천하고 있는
『서지 초가뜰 033-646-4430』에서
못밥과 질밥으로 차려진 한정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후
후식으로 식혜와 강정을 음미하다보면 하루해가 저문다.
본래 소금강에서 오대산 월정사를 향해 오르기 전
진 고개 아래에 위치하며
자연과 벗을 삼고 약수로 세수를 하거나 손을 씻으며
명상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자
7년간 『삼산막국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지만
수년 전 개인사정으로 본래의 주인에게 넘겨주고
오죽헌 뒤에 자리하고 있는 『민속 옹심이와 막국수』 집으로 이전함과 동시에
입소문으로 기존의 단골손님과 더불어 또 다른 손님이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옹심이도 맛있지만 막국수와 감자전이 일품이기도하다.
안다는 것은 멋과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모른다는 것은 지나치는 곳마다 무심의 경지에 드는 것과 같다할 수 있다.
결국 색다른 길은 길 위에서 길을 찾으며 새로운 길을 찾게 하고
막다른 길에서 만나는 길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처럼
끝에서 또 다른 길을 만난다는 것은
삶의 준비이자 죽음의 끝이기도 하다.
즉 새로운 세상은 항상 열려있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관심과 열정 그리고
삶의 풍요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이자
용광로와 같은 안광으로 빛을 바라볼 줄 알아야만
고목에서 새싹을 발견하듯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것 같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과
여행을 통해 자연을 배우고 삶을 배우며
뒤로 가는 인생보다는
앞으로 달리는 인생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참으로 이보다 더 깊은 뜻은 없을 것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아는 일이고
천문과 지리를 아는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시간이 오기 전에
걸을 수 있을 때 걸을 줄 알아야한다고 본다.
2012년 4월 12일 목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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