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달리는 길
겨울을 밀쳐내고 봄을 찾아 떠나는 바람 앞에
내팽개쳐진 세월
숨조차 쉴 수 없는 공간에서
팔다리가 풀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어질 때
세월과 함께해온 날들이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인생무상, 삶의 회의가 강하게 밀려든다.
그래도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은 혹한의 겨울 앞에
산수유가 피어나고
개나리가 피어나고
진달래가 피어나는 봄
산길에 펼쳐진 진풍경이자 봄의 길목에서 만나는
반가움이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안부를 묻는 것은
밤새 안녕이라는 말을 잊지 않아서이다.
세월 앞에 서있는 바람일지라도
어느 순간 세월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기에
기력이 떨어져도
열정과 의욕이 상실되어도
결코 약한 꼴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놓고 싶을 때
그 누구도 모르게 놓아야한다.
놓는다는 것은 채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비우는 것이기에
바람이 잘 다니는 길목에 내려놓아야
안심할 수가 있다.
마음을 비우거나
생각을 비우거나
비운다는 것은 공허함과 더불어 충만함을 불러들이기에
놓음과 잡음이 동시에 이루어져야하며
기쁨과 슬픔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산다는 것은 한순간이자 순간의 연속이기에
죽음과의 대화에서 밀리지 말아야 하며
깊은 바다와 긴 동굴에서
따뜻한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바람이어야한다.
이 얼마나 가벼운 삶인가?
힘을 쓸 수 있는 바람은
새로운 길을 뚫고 나가지만
힘을 쓸 수 없는 바람은
이미 만들어진 길조차 걸을 수가 없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자
유형에서 무형으로 떠나는 마지막 장면이기도하다.
한번 가면 두 번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우주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야할 것은
오류투성이의 종교이자
밑그림이 불투명한 천국과 지옥의 길이다.
그 끝이 아무리 황홀하고 눈을 홀리거나
마음을 유혹하는 길이더라도
가도 가도 끝이 없거나
뒤로 달리는 길이라면
놓는 것도 잡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길 없는 길로 통할 수밖에 없다.
2012년 4월 7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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