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을 달고 과녁에 꽂히는 화살
그런 것 같다.
허공을 문처럼 두드릴 줄 아는 바람이야말로
무소부재의 발걸음이자 그림자 없는 발이다.
사계절을 화살하나에 달고 다니는 바람은 그리 많지 않다.
수없이 허공을 달렸을 바람이라도
수없이 우주를 달렸을 바람이라도
사계절이라는 자연 앞에 서면 그만 주눅이 들어버리는
화살
과녁에 채 꽂히기도 전에
허공에 갇히거나
우주에 갇혀
몸부림을 쳐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는 길
우리들에게 보여 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실존이자 허공이고
눈에 밟히는 우주의 공간이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얼마나 숨죽이며 달려온 날들이었는가?
겨울이 되면 찬바람이 불어 정신을 맑게 하고
봄이 되면 따뜻한 기운이 솟아나 희망을 품게 하고
여름이 되면 소나무에 기대어 백우선을 흔들며 풍류를 즐기게 하고
가을이 되면 풍족한 먹을거리와 볼거리로 금수강산에 수를 놓는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자연이 말하지 않아도
우주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와 안부를 묻는 자연과 우주야말로
우리들의 삶이자 생명이요
우리들의 불행이자 행복이다.
돌고 도는 세상 앞에 서서
세월을 되짚어보거나
사계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의 깊은 뜻을
어디에서 느낄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10차선을 달리며 느끼는 기분과
2차선을 달리며 느끼는 기분은 분명 다르다 말할 수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이자
인생의 굴곡이고
전대미문의 문명 앞에서 한없이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죽음 뒤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삶 앞에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보아도
만져도
느껴도
알 수 없는 사실이 있는가하면
보아도
만져도
느껴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침묵과 고요로 감싸놓은 자연의 품이자
우주의 발걸음이다.
언제든 달려와 소식을 알려주거나
바람으로 알 수 있는 삶의 지표를 보여주거나
하늘과 땅과 사람들이 만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자
호흡으로 말할 수 없는 우주의 침묵이요
자연의 화음이다.
이보다 더 깊은 뜻을 찾기가 어렵고
이보다 더 따뜻한 정을 찾기가 어렵다.
소리 내지 않고 걸음걸이를 옮긴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감동스럽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11년 12월 4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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