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채워야 사는 바람(누락)

청아당 2010. 5. 5. 23:05

채워야 사는 바람(누락)

 

이제는 떠나야할 때이다.

앉았다 일어서면

빈혈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한발 한발 내딛으며

바람 부는 곳으로 달려가야만 한다.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모든 것을 다 막아놓고

힘껏 달리라고 한다.

달릴 수 있는 곳은 바람이 부는 곳이다.

채워도 채워도

가슴이 허전한 곳

버려도 버려도 또 다시 가득 채워지는 곳

무엇 때문에 우주를 바라보고

무엇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고

무엇 때문에 삶을 바라보며

바람 부는 데로 달려야만 할까?

발아래 소나무가 있고

발아래 정자가 있고

발아래 인천대교가 있고

발아래 해가지는 아름다운 석양이 있어

저 먼 곳까지 달려가야만 하는 바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단 하나

바람을 가슴으로 안아야한다는 것이다.

바위처럼 든든한 청량산 정상에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바람을 맞다보면

등 뒤로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분다.

얼마나 시원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마를 식혀줄 바람만 불어와준다면

손을 내려놓고

가슴을 내려놓고

영혼까지 내려놓고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멈춰버린 바람조차

흔들어 깨울 수 있다.

흔들린다는 것은 채움이다.

새싹을 흔들고

나무를 흔들고

생명을 흔들 때 다가오는 우주의 생명은

나의 분신이요

나의 영혼이다.

한없이 달릴 수 있는 바다가 있어 즐겁고

한없이 달릴 수 있는 텅 빈 우주가 있어 즐거운 것처럼

채우고 또 채우고

더 이상 채울 수 없을 때까지 바람을 가슴에 담는다.

그리고 우리가 달려온 시간과 공간으로

손뼉 치며 즐거워할 시간만 있다면

온 몸을 던져서라도

바람을 채우고

소리를 채우고

희망을 채워나가야 한다.

어떤 때는 정상에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가

지루하기도 하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혼돈 속에서

손을 잡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길 잃은 바람을 다시 찾은 느낌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다.

버려도

또 다시 채워지는 바람처럼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꿈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살리는

공존하는 선악처럼

서로의 경계에 서서

줄다리기를 할 수 있어야한다.

 

201055일 수요일

 

청량산 정상 용학유정에서 채워야 사는 바람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